반달
홍혜숙
유난히 밝게 빛나는 반달
반쪽을 잃어버린 달에게
별들이 놀러와
위로하나 보다
홍혜숙 시인의 시, 「반달」을 읽습니다. 홍혜숙 시인의 「반달」을 읽으면 우선 짧은 시 형식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읽기가 편합니다. 그리고 홍혜숙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시심詩心은 동심童心이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아이의 마음으로 사물을 대한다는 의미이겠죠. 아이의 마음은 꾸밈이 업습니다. 모든 대상을 처음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보는 대상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으로 상상합니다. 이것이 시인의 마음입니다. 그 상상력이 바로 창조이지요. 시인의 눈은 육신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대상을 보는 것입니다.
이 시의 첫 연이자 첫 행인 “유난히 밝게 빛나는 반달”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닙니다. 객관적인 눈, 즉 육신의 눈으로 보면 당연히 ‘반달’보다는 ‘온달(보름달)’이 더욱 밝겠지요. 그런데 시인은 그 ‘반달’을 ‘유난히 밝게 빛’난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눈(心眼)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만의 눈으로 대상을 해석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지요.
다음 연에서 시인이 ‘반달’에서 발견한 새로운 세계가 나타납니다. 즉 “반쪽을 잃어버린 달에게/별들이 놀러와/위로하”는 것입니다. ‘반달’은 온전한 ‘온달’이 아니라 반을 상실한 부족하고 모자라는 존재인 것입니다. 부족하기에 더욱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부족한 존재 약한 존재를 만나면 애틋하지요. 불쌍하지요. 이런 감정을 연민의 정이라 이르지요. 인간 세상이 삭막하다고 하지만 약한 자, 부족한 자, 실패한 자에 대한 연민의 정이 있는 한 살만한 세상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고 자비가 아니겠습니까. ‘빈쪽을 가지지 못한 반달’을 위로하는 ‘별들’도 빛납니다.
첫댓글 하늘에 같이 떠 있다고
그러나 봅니다
교수님
고운 글과 해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