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이 있는 풍경, 서양화가 ‘김규헌’ 글 / 김하리(시인)
서양화가 김규헌의 작품은 무척 독특하다. 거칠고 강한 유화에 우리나라 전통적인 민화를 접목시켜 탄생한 그림을 보면서 어릴 때부터 봐왔던 작품처럼 느껴서인지 전혀 어색함을 느낄 수 없다. 김규헌 화백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한 기법이다.
김규헌 화백을 처음 만난 건 6월 중순 전시회에서였다. 그의 첫 인상은 청렴한 공무원같은 모습이었다. 명함대신 받은 한 장짜리 작은 팜플렛 속에 있는 그림을 보면서 동양화를 전공했나보다 생각하고 뒷장의 프로필을 보았다. ‘홍대 서양화과 졸업.’ 동양화도 전공했나? 해서 약력을 살펴보았으나 서양화 전공이었다. “서양화에서 이런 작품을 그릴 수 있을까?’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들이 그리는 작품은 대충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몹시 궁금했다. 언제 전시회 하느냐는 나의 물음에 인사동 ‘신상갤러리’에서 7월 6일부터 일주일 간 전시한다고 했다. 김화백의 작품이 궁금해서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놓았다. 그리고 첫 날 전시장에 갔다.
김규헌 화백의 작품은 날 것이었다. 순전한 우리 것이었다. ‘김규헌’만의 것이었다. 크로키를 포함해서 23점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 젊지도, 늙지도 않은 꼬장꼬장한 김화백의 모습처럼 그의 작품도 당당했다. 물 샐 틈 없는 탄탄한 작품을 보면서 오랜만에 희열을 느꼈다.
‘미술의 해’로 지정 받았던 1995년부터 몇 년간, 화가 탐방 기사를 써왔던 나로서는 긴 공백을 깨고 오랜 만에 만난 김화백의 작품은 특별한 충만함이었다.
솔직히 그 동안 만났던 작품 중에 가장 정직한 작품이었고, 독특했으며 이야기 거리가 많았다. 김화백은 “단지 그리는 것이 아닌, 나만의 작품을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작품을 만난 나는 흥에 겨워 기꺼이 뒤풀이 자리까지 함께 하면서 술기에 젖은 김화백의 작품을 더 탐색하고 싶어졌다.
작품은 작가의 모습이고, 작가는 작품을 대변하는 소리이자 몸짓이기 때문이다. “제 작품을 세상이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사가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도 저는 제 작품을 그릴 것입니다.”
한 쪽 눈이 실명 위기에 처해 있어 바라보는 세상이 흐리지만 아름다운 것을 꿈꾸는 작업은 멈출 수 없다는 김화백이 새삼 더 위대해 보였다. 정직한 그의 이야기를 유심히 보아주고 들어 주는 사람이 없는 세상으로 인해 그는 가난하다.
인터넷에서 툭툭 튀어 나오는 김화백의 또 다른 작품들 역시 그의 가치관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작품들이었다. 사진을 찍어 두고 몇 번이고 감상했다. 인간의 내면을 깊고 넓은 無言으로 표현되어 있었으며, 동화 같은 이야기들이 수런거리고 있었다. 살고 싶은 열망이 강렬하게 숨 쉬고 있었다.
김화백은 잠을 자지 않고 꿈을 꾸고, 꿈을 그렸다. 밤낮으로 해와 달과 산과 새들과 나무들과 산과 바다를 만나고 있었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즐거움, 사랑, 희망이 사방팔방 오방색 깃발로 나부끼고 있었다.
그의 그림을 탐색하면서 정상까지 올라가고 내려오면서 텅 빈 공간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가 길을 낸 길가마다 애틋한 精과 설레이는 그리움과 사랑과 꿈과 희망이 풍성하게 펼쳐 있었다.
김화백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점은 우리나라의 음양오행이라는 점이었다. 신부가 시집갈 때 찍는 연지곤지, 아기들이 돌날에 입는 색동저고리가 떠올랐고,
우리나라 태극기와 꿈틀거리는 붉은 부적이 떠올랐으며, 네팔과 부탄에서 만났던 빨강, 파랑, 하양, 황색, 검정의 오방색 깃발이 가슴속에서 나부꼈다.
오방색을 섞으면 중간색이 된다. 중간색은 무한하다. 무한은 생성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이 중간색인 황토색이 천지만물의 색으로 여긴다.
그의 작품은 몽환적이면서도 해학이 담겨 있으며, 생성과 계절을 아낌없이 묘사해놓았다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디 그 뿐이랴, 세상을 타들어가게 하는 강렬한 태양과 한편으로는 마음을 쉬게 하는 평화로운 달이 오롯이 떠 있는 점이 부각되었다. 밤낮으로 해가 뜨고 달이 뜨는 아래 오악도가 버팀목처럼 우뚝 서있었다.
동쪽으로는 금강산, 서쪽의 묘향산, 남쪽의 지리산, 북쪽의 백두산이 있고, 중앙에는 삼각산이 있다. 산 아래에는 인간들이 행복과 희망을 추구하고 있는 풍경 속에 들어가 함께 즐길 수 있었다.
김규헌 화백의 세상에는 밤낮없이 해와 달이 뜨고 있었다. *2016.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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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디어세상 정대감 원문보기 글쓴이: 정대감
첫댓글 화가 김규헌님이 아닌 화백으로 불리워야 할 분입니다.
김화백님에 대한 자세한 해설 주신 김시인님께 고마움 전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화백으로 썼습니다. 대우 해드릴만한 작품이니까요. 제목은 화가로 쓰는 것이 더 어울리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