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들 / 박경대
과음으로 늦게 일어난 아침, 식탁에는 아내가 솜씨를 발휘한 시원한 콩나물국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 기분이 좋다.
휑한 오전의 LP카페,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들으며 혼자 마시는 에스프레소의 그윽한 향은 나를 즐겁게 한다.
손자와 함께 들린 소아과에서 주사를 맞으며 서럽게 울고 있는 젖먹이를 보면 사랑스러움에 미소가 지어진다.
두 다리를 들고 버둥대던 ‘준현’이가 뒤집기를 성공했을 때 나의 입에선 탄성이 나왔고 손은 박수를 치고 있었다.
무거운 쌀부대를 옮겨 달라고 아내가 부탁을 할 때는 나의 힘이 아직 쓸 만한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진다.
빈 뒤주에 쌀을 부을 때 들리는 쏴아~ 하는 소리는 왠지 부자가 되는 것 같아 듣기 좋다.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의 씩씩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릴 때 기분이 좋아 소주 생각이 난다.
가끔 먹는 라면이 아직 맛있다고 느껴지는 나의 식욕에 감사한다.
소시라는 말이 ‘소녀시대’라는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라는 것을 인터넷 검색으로 알았을 때 십 년이 젊어진 듯 가슴은 환희로 찼었다.
늦깎이로 시작한 블로그에 낯선 이름의 선플이 달려 있는 것을 보는 순간 신기하고 기뻤다.
석 달간 다니던 치과에서 “이제 끝났습니다.”고 이야기하던 의사의 말이 너무 반갑다.
어느 날 오후 동네 목욕탕에 갔다가 손님이 나 혼자 뿐 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왠지 웃음이 나왔다.
운전 중 무심코 튼 라디오에서 학창시절 좋아하던 음악이 나오면 당시의 추억이 떠올라 콧등이 시큰할 정도의 기분이었다.
작으나마 아파트를 장만했다는 아이의 말을 들었을 때 그 아이가 태어났을 때처럼 내 심장은 두근거렸다.
어저께 시골집에서 따온 홍시를 이웃에게 나누어줄 때도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아 즐거웠다.
마음에 드는 옷을 사온 아내가 전신거울이 있는 딸아이 방에서 나올 줄 모르고 혼자서 패션쇼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막걸리잔과 빈대떡을 사이에 두고 나의 눈을 보고 있는 벗의 모습이 정겨웠다.
하룻밤에 두 번이나 백점을 맞아 노래방 비용을 부담한 그날 밤은 아직 죽지 않은 나를 확인하여 즐거웠다.
부부모임에서 돌아오는 길, 차 속에서 “그곳에서 당신이 제일 멋있더라.”는 아내의 싱거운 소리에 헛기침이 났지만 흐뭇하였다.
밤늦게 도착한 아파트, 통로 입구에 주차공간이 마침 비어있어 행복하였다.
좋은 일 좋은날들이 많아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