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제는 도로 표지판 1.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분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사제들에게 신자들은 큰 기대를 걸고 많은 요청을 합니다. 그 요청을 요약하면 한마디로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가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작성된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상’에서 제일 첫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침묵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제’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를 흔히 착한 목자에 비유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착한 목자에 비유하셨기 때문입니다.(요한 10,7-16)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에 흔히 볼 수 있는 양치는 목자를 비유로 삼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고 예수님과는 다른 문화권에 사는 우리에게 목자라는 직업이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사제에 대해서 목자 외에 다른 비유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하나의 시도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로 안내 표지판에 비유해서 오늘의 사제상을 생각해 봅니다.
자동차 운전을 하는 사람이면 다 느끼는 바지만, 평소에 자주 다니는 길에 있는 도로 표지판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낯선 길을 운전해 갈 때에는 도로 표지판이 아주 유용하고 요긴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표지판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백지 상태에서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커 가면서는 선생님이나 존경하는 분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서서히 찾게 됩니다.
인생에서만이 아니라 신앙생활에서도 이런 표지판이 필요합니다. 물론 신앙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하고 영원한 표지판이지만, 그분을 각 시대와 상황에 맞게 드러내 주는 작은 표지판들도 필요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이글어 가는 사제가 바로 이런 작은 표지판의 역하을 해야 합니다.
첫째, 도로 표지판은 운전자가 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위와 잘 구별되는 장소에 세워지고 뚜렷한 색깔로 표시됩니다. 이와 유사하게 성직자는 일반 사람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갑니다. 복음 삼덕의 삶, 즉 순명, 청빈, 정결의 삶이 바로 그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점점 더 자기 자신의 힘과 능력에만 의존하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사제는 순명의 삶을 통해서 사람은 무엇보다도 하느님 뜻이 이루이지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마태 6,10)을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사셨는데, 그런 삶의 원동력은 바로 아버지 하느님에 대한 온전한 순명이었습니다. 사제도 하느님께 온전히 순명할 때 참된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현대도 갈수록 경제가 우선적인 관심사가 되고, 돈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부모와 가족, 인륜과 도덕까지도 저버리는 배금주의가 만연해 갑니다. 이에 대해서 사제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돈이 아닌 하느님 나라와 의로움을 찾는 것(마태 6,33)임을 증거하기 위해 청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비록 교구 사제는 수도자와는 달리 청빈 서원을 하지 않지만, 청빈이 의도하는 삶, 곧 재물에 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제는 많이 갖고도 행복하지 못한 현대인들에게 적게 소유하고서도 만족하고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성性이 잡지, 비디오, 영화, 인터넷 등을 통해서 드러나게, 혹은 광고를 통해서 암암리에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이로 인해 모든 것을 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늘고 있습니다. 인간의 성은 분명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그것이 절대화되어 우상처럼 숭배되면, 오히려 인간에게 해를 끼칩니다. 현대 세계의 큰 위험인 성의 우상화를 반대해서 성이 인간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선포하는 것이 정결의 삶인 독신 생활입니다. 사제는 독신 생활을 통해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성적인 시각이 아니라 형제자매로 대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마르 3,35)를 증거합니다.
이렇게 사제는 복음 삼덕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과 돈 그리고 성을 우상으로 만들어서 거기에 자신을 묶어 두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 주는 표지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씩 흙탕물로 뒤덮여서 제대로 식별이 어려운 표지판을 만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들도 나태함, 혹은 인간적인 나약 때문에 이런저런 유혹에 떨어져 잘못을 범함으로써 표지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못하고 실수했다면 스스로 그 흙탕물을 닦아 내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표지판을 깨끗하게 청소하듯이 동료 성직자들이나 신자들의 기도와 도움, 충고에 힘입어서 자신을 오염시킨 잘못과 허물을 닦아 낼 수도 있습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사제들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