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는 도로 표지판 2.
둘째, 도로 표지판의 본질적인 역할은 방향 제시입니다. 사제 역시 신자들에게 신앙인이 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합니다. 이는 우선적으로 말씀 선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 사명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하는 동시에 사회의 흐름과 변화를 예의 주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복음의 빛에 비추어서 세상사를 주님의 뜻에 맞게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말씀 선포를 통해서 신앙의 방향을 제시하는 사제는 특히 강론을 성실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와 묵상, 공부를 통해 잘 준비되어 정신을 일깨워 주고 마음을 적셔 주는 강론은 신자들에게 일주일을 살아갈 풍요로운 영적 음식이 됩니다. 좋은 어머니는 항상 자기 가족에게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식탁에서 가족들이 누리는 기쁨을 보면서 그동안의 수고를 잊고 자신도 기쁨에 충만하게 됩니다. 이런 어머니처럼 사제도 신자들에게 풍요로운 영적 양식을 마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 양식을 먹고 힘을 얻는 신자들의 모습은 수고를 잊게 하고 사제직을 보람과 기쁨으로 체험하게 해 줄 것입니다.
셋째, 도로 표지판은 밝고 빛나는 색깔로 칠해 놓습니다. 왜냐하면 어두운 밤에도 운전자가 표지판을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도 밝고 빛나는 색깔의 삶, 다시 말해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살려면 하느님께 자신과 자신의 미래, 그야말로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자신에 대한 집착, 돈에 대한 욕심, 사람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러면 진정 자유롭고 기쁘게 살면서 이웃에게 환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경건하고 열심히 산다고 해서, 또는 불의한 세상에 대해서 정의를 부르짖고 실천한다고 해서 늘 침울하고 어두운 얼굴로 살아가서는 곤란합니다. 어느 누가 열심히 기도하고 즐겨 희생한다고 하더라도, 항상 심각하고 찡그린 얼굴을 하며 모든 것을 어둡고 부정적으로 본다면, 이 사람은 거의 틀림없이 병든 신앙의 소유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을 들들 볶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과 두려움을 안겨 줍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복음,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제는 말로써만이 아니라 삶으로 그 기쁨과 평화를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사제는, 인간의 죄와 잘못으로 점점 더 어둠이 짙게 드리워 가는 세상 한가운데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복음과 희망의 빛을 던져 주는 사람, 그래서 그 빛을 보고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제는 빛이며 희망 자체이신 예수님을 닮아서, 어두운 세상 안에서 작은 빛과 희망의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넷째, 도로 표지판은 굳건히 땅에 박혀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표지판인 사제도 기도를 통해서 교회의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성적으로 깊이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식사할 틈도 없이 바쁘시면서도 틈틈이 기도하시고 또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라는 땅에 깊이 뿌리박지 못한다면, 세찬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는 표지판처럼 세파에 시달려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 직접 교육을 받은 베드로 사도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하는 잘못을 범할 정도로 세상의 저항은 거셉니다. 그래서 사제는 늘 기도하시던 예수님을 본받아 늘 기도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도로 표지판은 단지 목적지를 가리키는 표지판일 뿐 목적지는 아닙니다. 비유로 말한다면, 표지판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 달 자체는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사제 자신도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도구일 뿐 그리스도 자신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매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제는 자신을 통해서 전해지는 하느님 말씀과 자신이 집전하는 성사에서 힘과 위로를 얻는 신자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면 그만입니다. 그들이 얻은 은총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지 사제 자신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제는 주인이 아니라 일꾼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신자들이 반드시 자신을 잘 대우해 주고 받들어 주기를 바라고, 그렇지 않을 때 짜증이나 화를 낸다면 그것은 자기 분수를 모르는 ‘문제 사제’입니다. 이런 사제는 복잡하게 그려져서 방향 제시는커녕 혼란만 가중시키는 잘못된 표지판과 같습니다.
물론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고 알아 주는 데에서 삶의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사제도 사람이기에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남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데에 집착하거나 명예심에 매이는 것은 금물입니다. 우리가 남에게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였다면, 이는 하느님의 은총이 먼저 있었기에 그렇게 된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일을 다하고 나서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라고 고백하는 충실한 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제들의 모범이신 예수님께서는 항상 자신보다는 아버지 하느님을 내세우시고, 마지막까지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셨습니다.(마르 14,36) 이런 예수님을 자주 바라보면서 그분께 도움을 청함으로써만 인간의 마음에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명예심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존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고 혼란이 가중되어서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삶의 길을 제시하는 표지판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불신과 유혹이 늘어가는 험한 세상에서 이런 표지판이 되는 것은 물론 표지판으로 머무르는 것도 힘겨운 일입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겨운 만큼 보람도 크고 많습니다. 보통이 아닌 역할은 보통을 넘는 수고를 요구하지만, 또한 보통을 넘는 특별한 기쁨과 보람을 줍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