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도 못 다듬는 여자
파주에 사는 친지 한 분이 어느 날 신문지에 둘둘 만 뭉텅이 하나를 말없이 던져 주고 가셨다. 펼쳐보니 갓 캐낸 냉이다. 양이 수월찮게 많았다.
봄에 입맛 돋우라고 일부러 갖다 주신 모양인데 그 모양새를 보니 감사한 마음은 잠깐이고 이걸 어쩌나 싶어 난감해졌다.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도무지 엄두가 안 났다. 마구 엉겨서 어디가 이파리고 어디가 뿌리며 어떤 것을 골라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짧은 시간에 다듬기는 어려울 것 같아 다시 신문지에 싸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누가 냉이를 캐다 주었는데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몰라 그냥 넣어두었는데 어쩌까?”
부끄럽지만 살림 잘하는 이웃에게 도움을 청했다.
“다듬을 것도 없어, 물에 넣고 휘휘 씻다가 떨어져 나간 것만 골라내면 돼”
“뿌리는 어떻게 해? 잘라 내?”
한심한 질문인 줄 알았지만 기왕 물어볼 바에는 끝까지 다 물어볼 일. 냉이를 뿌리째 먹어본 것 같기는 한데 하도 지저분해서 떼어내야 할 것만 같았다.
보다 못해, 아니 듣다 못해 그녀가 걸려들었다.
“가져와 내가 해 줄게”
이 무슨 복음인가. 내심 기다렸던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냉큼 냉이뭉치를 넘겨 버렸다. 평소에도 살림에 관한 한 소소한 도움을 많이 받고 살았어도 미안한 척은 매번 빼놓지 않는다.
다음날 그녀의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싱크대 위에는 갓 삶아낸 냉이가 언제 그렇게 마구 얼크러졌던가 싶게 깨끗한 푸른빛을 띠고 소쿠리에 소담하게 담겨져 있었다.
큰 대접에 옮겨 담더니 그녀는 된장과 갖은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치기 시작했다. 감기 때문에 둔해진 후각에도 구수하고 향긋한 냄새가 느껴졌다.
나물 반찬 해서 새로 지은 밥까지 잘 얻어먹고 따로 싸주는 것도 챙겨와 다음날까지 잘 먹었다. 순전히 남의 덕에 봄의 미각을 맛보게 된 셈이다.
오랜 동안 직장생활만 하느라고 살림은 겨우 시늉만 해왔다. 내 손을 필요로 하는 가족까지 없다보니 소꿉놀이 하듯 살아와서 급기야 냉이 하나 못 다듬는 무능한 여자가 되고 만 것이다.
봄이면 여기저기서 들리는 봄나물 이야기가 막 돋아나기 시작하는 나물만큼이나 새록새록 싱그럽고 즐겁다. 나물 캐러 가자고 바람을 잡는 이웃도 더러 있다. 모두 도시생활에 익숙해 있어도 어린 시절, 봄이면 나물 캐던 추억이 되살아나 마음속이 근질근질해지는 모양이다.
내게도 나물을 캐던 어린 시절이 물론 있었다. 그런 것도 나물을 캤다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나 이때나 매사가 어설펐던 사람이 나물인들 잘 캤을까. 당연히 그 일도 서툴기는 마찬가지. 아마 언니가 하도 똑떨어지고 영악하다 보니 나는 상대적으로 주눅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려서 이른 봄이면 나물 캐러가는 언니를 쫓아 집 근처 논두렁이나 언덕배기를 훑고 다녔다. 나물 이름도 모르고 먹는 나물인지 풀인지 분별도 못하니 언니 하는 대로 따라서 했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어도 내 소쿠리에는 나물 양이 늘어날 줄을 몰랐다. 반면에 언니의 소쿠리에는 쑥부쟁이며 냉이들이 수북하게 쌓여 밖으로 넘칠 지경이었다.
그뿐인가? 내가 캐낸 나물은 시들시들 볼품없이 착 가라앉아 있고 언니 소쿠리의 나물은 마치 공기라도 불어넣은 양 싱싱하게 살아있어 서슬이 푸르렀다. 그때 생각에는 내 손에 나물의 풀기를 죽이는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았다.
언니의 모습을 지켜봤다. 가볍게 뿌리 부근에 칼을 집어넣어 쏙쏙 깨끗하게 캐내는데 이파리는 거의 건들지 않는 듯. 언니는 나물 캐기에 여념이 없어서 쪼그리고 앉은 다리가 아픈 지도 모르는 것 같다. 아주 신바람이 나서 집에 돌아갈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나는 어떤가. 나물 이파리를 쥐고 어렵게 뿌리를 뽑아내다 보니 아예 주물러 터트린 것과 다름없었다. 이미 시르죽어버린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신명이 안나 다리도 아프고 힘들기만 했다. 재미가 없어진 나는 나물보다 먼 경치에 마음을 빼앗겨 한눈을 팔았다. 갈아엎은 들판은 보습 자국마다 검붉은 윤기가 흘렀다. 막 땅기운이 솟기 시작하는 들판에는 모락모락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아른아른 베일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평생을 먼산바라기로 살게 된 것도 어쩌면 그때부터였을까. 정체 모를 그리움에 현실은 언제나 낯설었다.
결국 내 소쿠리의 나물은 보잘 것 없이 시든 채 들판에 버려지고 그날 상에 오른 것은 언니가 뜯어온 나물이었다.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나물 캐는 일 말고도 매사가 서툴고 어설픈 탓에 내 삶의 밥상에 차려놓을 것은 별로 없는데 마음은 중뿔나게 보이지 않는 먼 곳에 가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다사로운 햇볕을 등허리 가득 받으며 엎드려 나물 한 번 캐보고 싶은 것은, 봄이면 한바탕씩 유년의 뜨락을 헤매는 아직도 어린 마음 탓이리라.
첫댓글 카!
냉이를 캔 저보다 냉이 다듬는 것도 서툰 선생님 수필이 더 깊고 진하네요
우와~~
두 분 덕분에 향긋한 봄입니다.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