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가꾸는 남자
강철수
반바지에 배낭을 멘 채 욕실에서 선크림을 바르는 K씨, 왼손바닥에 강낭콩만큼 짜놓고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얼굴에 골고루 바르기 시작한다. 콧등엔 한 겹 더 칠한다. 돌출부여서 등산 후에는 그곳이 산수유 열매처럼 발갛게 익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도 두어 시간 후 스틱 선크림을 다시 한번 덧칠한다. 일행 중 선크림을 바르는 남자는 오직 K씨뿐이다. 그렇다고 흰 눈으로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젊어서는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이고자 했던 그가 노령이 되면서 혹여 우윳빛 얼굴이고자 하는 걸까. 천만에! 그건 아닐 것이다. 직사광선이 피부암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의사들의 경고에 겁먹어서? 그 또한 아닐 것이다. 햇볕에 타 거무칙칙해진 얼굴에 저승꽃이라는 검버섯이 만발한다면 정말 볼썽사나워질 게 아닌가. 아마 그걸 피하고자 함이지 싶다.
그는 얼굴뿐만 아니라 머리칼에도 적잖이 신경을 쓴다. 머리숱이 듬성듬성하면 겉늙어 보인다 싶어서일 것이다. 탈모 방지 샴푸는 기본이고 가끔 자식들이 갖다준 모발 영양제도 뿌려준다. 아침저녁으로는 헤어브러시로 두피 전체를 톡톡 두드려 모근이 단단해지도록 자극을 준다. 이발관에도 자주 들른다. 이래라저래라하지 않아도 단골 이발사는 알아서 척척 커트하고 염색도 한다. 갈색이 조금 들어간 자연색 염색은 감쪽같다. 이리 정성을 들여서인지 실내 모임에서 모자를 벗어도 좋을 만큼 머리숱이 수북하다.
연만한 나이의 K씨가 어째서 기생오라비처럼 외모에 저리 마음을 쓰는 걸까. 그에게는 모임이 많다. 스무 명이 넘는 대가족의 잦은 모임 말고도 이런저런 모임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적게는 네 사람부터 시작해 일곱, 열 몇, 스물 몇…. 백 명이 넘는 전국구 모임도 서너 개나 된다.
푸른 기가 남아 있을 때는 데면데면 나가다 말다 했는데, 친구들이 하나둘 하늘의 별이 되는 나이가 되면서 종손 기제사 챙기듯 꼬박꼬박 얼굴을 내민다. 그뿐만 아니라 옛 인연을 찾아내어 새로운 모임을 만들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모임이 중요하다고 했다. 사람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다 보면 무거웠던 마음이 풀어지고 삶의 의욕이 새롭게 돋는다고 했다. 하지만 꾀죄죄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누가 선뜻 손을 내밀겠는가. 기를 쓰고 외모 치장에 공을 들이는 연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K씨는 매일 샤워나 목욕을 한다. 아무리 뻔쩍뻔쩍 치장해도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면 누가 가까이 오겠는가, 모임이 있는 날은 더욱 살뜰히 몸을 씻는다. 면도하고 드라이어로 머리칼까지 곱게 다듬는다. 옷장을 열어 새하얀 셔츠에 분홍색 넥타이를 매고, 칼주름 바지에다 브라운 체크무늬 콤비를 걸친다.
마지막 점검, 전신거울 앞에서 자신 모습을 요모조모 살핀 후 ‘엄지척!’을 날린다. 그 엄지척에는 유구한(?) 역사가 있다. 그가 이십여 년 전 활동했던 어느 심신 수련단체에서는, 하루 한 번 이상 거울 속 자신을 향해 ‘잘 생겼다!’라며 엄지척을 날리라고 했다. 날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천하제일 외모라는 자신감이 붙는다고 했다. 그 자신감은 건강에 도움이 되고 사회생활에도 활력이 생겨, 휘파람을 불며 하루하루를 맞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K씨 외모 가꾸기의 시원은 오래전인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키 170에 몸무게 66, 검은 머리칼에 윤기 나는 얼굴 그리고 꼿꼿한 허리와 당당한 걸음새, K씨는 모임 장소에 들어서면 인사받기에 바쁘다.
“신수가 훤합니다.”
“더 젊어진 것 같습니다.”
“70대인 것 같습니다.”
입꼬리가 귀밑으로 올라붙는 K씨.
“고맙소!”
“감사합니다.”
인사치레 덕담이 아니라 참말일지도 모른다 싶은 K씨, 상대의 손을 맞잡아 흔들고 어깨를 감싸 안거나 등을 토닥여주면서 고마움을 표시한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데는 칭찬만큼 좋은 약도 흔치 않을 것이다. 스무 해를 툭 잘라 70대로 보인다는데 어찌 무덤덤하겠는가. 속으로 덩실덩실 열두 번도 더 춤추었을 것이다.
조롱조롱 모임이 많아 행복한 K씨, 오늘도 내일도 말끔한 품새, 외모 가꾸기는 계속될 것이다.
첫댓글 共感 합니다.공감하면서도 실천을 못하는 게으름이 부끄럽네요 .대단하신 회장님 존경합니다.
경희샘,
늘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
선생님 멋집니다.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늘 청년처럼 보였습니다. ^^
승원샘 고맙습니다.
내일 뵙시다.
넵. 내일 뵙겠습니다.
저도 거울 단디보고 갈게요. 😀
회장님 얼굴에 하얀 선크림,....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지요.
자기관리에 철저하신 모습
노년의 롤모델이십니다.
자신을 사랑하시는 일이기도 하구요.
브라보, 브라비시모!!!
복희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