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는 여행 가이드 2.
해외 성지 순례를 하다 보면 이동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때로는 버스를 타고 몇 시간씩 움직이게 됩니다. 물론 그 시간에 잠도 자면서 피로를 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두 시간 자고 나면 잠도 더 이상 오지 않습니다. 이동 시간이 길다 보면 자칫 지루해지기 쉽습니다. 좋은 가이드는 이 시간을 이용해서 다음 성지에 대한 설명을 하거나, 기도를 하도록 인도합니다. 또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서 가끔 재미있는 이야기도 풀어놓습니다. 자신의 체험담이나 농담을 적절히 섞어서 피곤으로 지친 순례자들의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 줍니다.
사제 역시 좋은 가이드처럼 기회를 잘 살려서 신자들에게 신앙 지식을 전하기도 하고, 때에 맞게 기도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또한 신앙 공부와 기도를 따분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서 가끔은 이야기보따리도 풀고 유머도 발휘하면 좋을 것입니다. 요즘 세상은 너무 재미와 흥미 위주로 흘러서 신앙마저도 자칫하면 재미와 흥미 본위로 나갈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위험은 분명히 경계해야 합니다. 교리 교육과 미사 강론은 오락 프로그램이 아니기에 항상 재미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을 좀 더 잘 받아들이도록,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적절한 예화와 유머도 필요합니다. 마치 음식의 양념처럼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제는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나 사람들의 관심사에도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20세기 프로테스탄트 신학계의 거장인 스위스 출신의 신학자 카를 바르트(+1968)는 사목자들에게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있으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습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해외 성지 순례는 보통 이삼십 명이 함께 그룹을 이루어서 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 성지 순례를 통해서 신앙을 새롭게 해 보겠다는 선한 지향을 갖고 오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각자의 성격과 개성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어떤 이들은 가이드의 설명을 귀 담아 듣고 스스로 기도하면서 제대로 성지 순례를 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식사가 시원치 않다’, ‘호텔 잠자리가 불편하다’, ‘함께 방을 쓰는 사람이 싫으니 방을 바꿔 달라’, ‘순례 프로그램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등등의 불평을 합니다.
심지어는 ‘순례를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엄포를 놓는 사람도 가끔 있다고 합니다. 좋은 가이드는 이런 사람들에게 인내를 갖고 순례를 계속하도록 설득합니다. 때로는 이치에 맞지 않게 너무 불평을 늘어놓아 전체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에게는 약간의 ‘압력’을 가해서라도 그 기세를 가라앉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좋은 가이드는 자신에게 맡겨진 순례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인도해서 모두가 성지 순례를 무사히 마치도록 도와줍니다.
사제 역시 하느님 나라를 향해 순례하는 다양한 신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혜롭게 도와주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신자답게 성실하게 사는 이들에게는 계속 그렇게 하도록 격려해 주고,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거나 성당 다니는 것을 버거워하는 이들에게는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유감스럽게 교회 내에도 사사건건 불평불만을 하면서 신자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는 이들, 심지어는 툭 하면 ‘성당에 안 다닌다’, ‘냉담하겠다’, ‘교무금 환불해 달라’고 큰소리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이들을 상대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제는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신 예수님을 본받고 그분의 지혜를 빌려서 이런 이들을 현명한 방법으로 설득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분명하게 경고해서 이런 이들도 함께 하느님 나라를 향해 순례하도록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가이드는 순례자들이 순례를 마치고 만족해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과 기쁨을 누립니다. 어떤 이들은 돌아가면서 가이드에게 진심으로 ‘수고했어요’, ‘고마워요’라는 말을 남깁니다. 가이드는 자신이 안내했던 이들의 밝은 모습,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순례 동안의 고생이나 우여곡절이 한순간에 다 사라지고 마음이 뿌듯해질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제도 자신이 행한 말씀 선포와 성사 거행을 통해서 신자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과 보람을 누립니다. 또한 인생 여정을 다 마치고 신앙 안에서 편안하게 하느님의 품에 안기는 신자들을 보면서 가슴 뿌듯함을 느낄 것입니다. 사제가 예수님을 닮아 신자들에게 진정 봉사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할 때, 신자들은 사제의 그런 노력을 잘 알아보고 기도로써, 격려와 응원으로써 응답할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