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살리는 곳에서 병드는 조리 노동자
50명 식사 2명 담당…10시간 서서 소음 고통·만성 관절염과 고투
요양병원의 조리사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고령화와 함께 인력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무관심 속에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산재 신청은 해봤지만, 결국 치료받을 시간도 여유도 없어서 포기했어요."
강원특별자치도 한 요양병원에서 근무중인 조리사 정모(71·여)씨의 말이다. 정씨는 매일 10시간 이상 서서 일하며 생긴 만성 관절염이나 시력 저하에 일상이 불편하지만 치료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
정씨가 근무하는 요양병원의 환자는 50명 규모. 이 50명의 하루 세끼를 담당하는 조리사는 정씨를 포함, 단 2명이다. 새벽 5시 20분에 일을 시작, 오후 5시 20분경에 퇴근하는 정씨는 서류상 12시간 근무 중에 "세 끼의 식사 준비·배식·청소·기기 세척까지” 마쳐야 한다, 오전 9시~10시, 오후 1시 30분~3시에 있는 2시간 반의 휴식시간을 제외하곤 계속 서서 말이다. 정씨는 "식사를 몇인분이나 준비해야 하는지 인원수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게 문제"라며 고강도 노동 현장의 어려움을 전했다.
이런 열악한 근무 환경은 낮은 임금과 맞물려 인력난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원인이 되고 있지만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시니어들의 요양을 돕는 조리사들이 정작 자신들은 병들어 갈 수밖에 없는, 물리적으로 열악한 주방의 환경도 문제다.
정씨는 근무 중에 배기팬(후황)이나 대형 조리기기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계속 노출돼야 한다. "후황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고막이 망가질 정도"라는 정씨의 말은 단순한 엄살이 아니다. 이들 기기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소음성 난청 기준인 평균 85dB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다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KOSHA)의 기존 발표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과 시행규칙은 분진·소음 등 유해 요인에 노출되는 근로자에 대해 사업주가 특수건강진단을 정기적으로 실시할 것을 의무화 하고 있다. 1일 8시간 기준 85데시벨 이상 소음이 발생하는 작업을 ‘소음작업’으로 보고, 이 수준 이상에 장기간 노출되는 노동자를 소음성 난청 위험군으로 분류하여 특수건강진단 대상으로 관리토록 한 것이다.
그러나 정씨에 따르면, 이 요양원 조리사들은 그런 정기 검진조차 받지 못한 채 “각자 알아서 개인별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무화된 조리사의 특수건강검진이 유명무실하게 운영중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정씨와 같은 조리사들은 소음에만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가스나 음식의 매운 냄새 때문에 목이 따갑고 아프다"는 정씨. 그녀를 괴롭히는 냄새는 조리흄에 포함된 알데히드, 다환방향족탄화수소 등 유해 성분으로부터 비롯된다.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기와 연무, 이른바 ‘조리흄’은 병원 조리실 노동자의 주 위험 요인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한국 직업 및 환경위생학회지(Journal of Korean Society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Hygiene)에 지난해 실린 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고온 기름 조리 시 발생하는 조리흄에는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2급 발암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와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 등 다양한 유해물질이 포함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성분들은 호흡기를 직접 자극하는데 이런 환경에서 10년 근무한 정씨의 경우, 만성 기관지염을 앓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정씨가 장기간 노출돼 있는 이 물질들은 장기적으로는 폐암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학교 급식실 종사자의 폐암이 최초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이후, 최근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공단 연구진과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학교 급식 종사자 폐암 건강진단 실시 기준을 만들고, 55세 이상 또는 경력 10년 이상 급식종사자를 대상으로 저선량 폐 CT 검사를 시행했다. 같은 맥락에서 고용노동부와 교육부는 「학교 급식 조리실 표준 환기 가이드」를 공동 개발, 학교 조리실 환기설비 용량·배치 기준과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과 작업장 환경 기준은 학교 급식실을 대상으로 설계돼, 병원·요양병원 조리실은 별도의 환기·안전 매뉴얼이나 건강검진 프로그램 없이 사실상 관리 체계 밖에 놓여 있다.
국제암연구소와 국내 직업환경보건 연구자들은 이미 조리흄·소음·분진의 위험성을 인전하고 있다. 따라서, 병원 조리실을 집단급식소 관리 체계 안으로 편입, 보다 강력한 조리사 안전 보장 기준들이 마련되고 실현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혜린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