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 시에 장을 담그다
조성례
농촌은 아직도 세시풍속을 지키고 있다.. 더구나 우리 집은 일세기를 넘나드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니 모든 것이 더욱 철저하다. 첫 정월에는 특히나 지켜야 할 세시풍속이 많다. 정월 차사를 올리고 나면 세시풍속은 아니지만 부처님 전에 정월기도 가야 하고 정월 열나흘 날 오곡잡곡밥에서 보름날 아침은 찰밥, 조상과 터에 일 년을 잘 지내게 해달라고 정월 보름떡, 정월보름 날 아침에 부스럼 깨물기, 귀 밝기술, 정월 열 나흗날은 귀신 달군다고 밤새 불을 켜놓고 첫 정월달에 설 명절과 제사가 두 번, 먼저 한 음식을 치울 새 없이 또다시 장만해야 한다. 게다가 정월 장까지 담으려니 죽으려도 죽을 새가 없다는 말이 내게 해당되는 말이다.
농가에서는 음력 정월에 장을 담는 것을 큰 행사로 치고 있다. 정월 장을 담아야 날씨가 추워 소금이 덜 풀려 짜기도 덜 하지만 한 가정의 길흉사를 점친다고 첫 정월에 장을 담는 것을 큰 행사로 치고 있다. 가리는 것이 많은 노모는 굳이 정월 장을 못 담을 때는 다음 달에 담지만 8일이 들어가는 날은 우환이 들고 2일과 7일이 들어가는 날은 장에 가시가 낀다고 메주를 끌이지도 못하고 담그지도 못하게 한다. 언제나 오(午) 일 즉 말날에 담가야 장이 맑다고 시집온 지 근 오십 년이 다되어가도 노모의 말씀을 따라 말날에 담근다. 오(午) 일도 병오(丙午) 일은 잡을 병자지만 병환이 생길 수 있는 날이라고 담그지 못하게 한다. 정월 초닷새는 세수 물이나 설거지물도 논둑 터진다고 마당에 확 내다 버리지 못하고 살며시 붓는다. 빨래도 초닷새 날은 밖에 널지를 못한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그런 게 어디 있어하고 시어머니에게 반발하는 마음에 설거지물을 밖의 마당에다 냅다 집어던지듯 버렸더니 그 해에 수도 없이 논둑이 터져서 초닷새 날 설거지물을 함부로 버려서 그런가? 뉘우치는 일도 있었다. 어떤 때는 성가셔서 마음대로 장을 담그고 싶어도 오래 단 솥이 음식 맛이 좋다고 나도 모르게 답습되어 온 습관과 혹시 좋지 않은 일이 생길까? 노모의 마음에 드는 날 장을 담는다.
첫 오(午) 일이 드는 날, 장을 담으려니 극심하게 추워서 담지를 못했다. 다음 오(午) 일은 8자가 들어가는 날이라 또 못 담았다. 열이틀이 지난 내일 이월 첫 갑오(甲午) 일에 담으려고 세 번째 계획을 세우고 낮에 따뜻한 햇살 있을 때 소금물을 풀어놓았다. 들어와 일기도를 보니 내일 오후에 눈이 온다고 되어있어 아침에 일찍 소금물을 퍼부어야겠다 생각했다. 늦은 잠을 자려고 누워 습관처럼 스마트폰의 일기도를 여니 현재 눈이 내린다. 날 궂는 날 장을 담그면 궂은일에 먹는다는 속설도 있고 소금물에 눈이 앉을까 기절을 하고 나가보니 구름사이로 달빛이 내리고 있다. 다행이라고 하늘을 바라보다 혹시 몰라 소금물을 달빛 내리는 항아리에 퍼부었다. 아들을 기원하는 붉은 고추와 많은 자식을 비는 참깨와 숯은 날이 새면 넣기로 하고 들어왔다.
들어와서 스마트폰을 여니 한시가 한참 넘었다. 언 손발을 이불속에서 녹이며 백수가 가까운 노모와 살면서 수세기 전부터 하늘에 빌고 땅에 비는 토속 신앙에 젖은 생활방법이 장 담는 것조차 힘이 드는 것이 좀 야속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알지도 못하는 가림새, 그러나 나쁘다는 것을 기어이 할 필요도 없다고 50년 가깝게 살아온 노모의 생활철학을 나도 모르게 답습하게 되었다. 노모는 젊어서는 첫새벽 남이 밟지 않은 길로 담 밖에 있는 우물에 첫물을 달과 함께 떠온다더니 나는 달과 함께 장을 담았다.
살면서 첫 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니 너무 아낀다. 이것도 물론 시어머니에게서 답습되어 온 습관이지만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 첫 에 무슨 주문이 걸렸기에 그리 아끼는지? 작은 아들이 김장을 하면서 첫아들이 아니라는 데서 온 차별대우를 불만처럼 토해낸다. 할머니는 뭐든지 형, 형, 형~만 안다고, 약간 말을 더듬는 말투는 흥분되면 같은 단어를 연속으로 말한다. 할머니와 대처에 나가서 공부할 때 심지어 냉장고에 있는 과일 하나를 학교에서 돌아와 먹으려면 할머니가 형 오면 함께 먹으라고 해 다시 냉장고에 넣어놓고 돌아서면 늦게 학교에서 돌아온 형은 혼자 다 먹어치우고 없다고 하면서 할머니는 나는 형과 먹으라고 하고 형은 왜 동생과 먹으라는 소리를 안 하냐고 둘째의 서러움을 이야기한다. 요즘의 엄마들은 다산을 하지 않으니 첫 과 둘의 구분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가부장 제도를 벗어나지 못한 노인들은 그 첫이 가문을 잊고 봉제사를 받들고 부모들의 노후를 책임진다고 생각을 한다. 더구나 청상 우리 시어머니는 첫아들이 남편의 값만큼 소중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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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처녀님 정말 반갑습니다. 오랜만이세요.
아직도 어디서 괴산 하면 반갑고 목도강도 생각납니다.
내림으로 집안대소사를 빠짐없이 하셔야 하는 삶이 선생님은 힙드실텐데
저는 왜 그렇게 부럽지요? 요즘와서 옛낳 일들, 방식들이 새록새록 정다워 그립습니다.
어머님이 백세를 사시는군요. 자부의 정성이 있어 그리 사실 수 있나봐요..
하늘곰님도 잘 사시는지, 유랑인은 충청도 유구로 이사가서 잘 삽니다.
자주 좀 오세요. 하도 반가워서 글이 길어졌네요. 건강하시지요?
노을님이시죠?
하 오래되어 닉도 가물 하네요
홈에 가끔 들어와 이복희선생님의 글을 도강을 합니다
하늘곰은 안사람이 건강이 안좋아 공기좋은 속초로 내려가 있습니다
유랑인도 보고싶네요
반갑습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