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글마루 문학회 여러분!
지난 6월 25일에는 글마루의 밤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날은 장효정 시인, 임 지나 수필가, 이진수 시인께서 참여하셨습니다.
장효정시인은 <다림질> 외 총 8편의 시를 낭송, 실크로드와 중국양자강 지대를 여행하며 깨달은 생의 의미와 우주적 자아를 깊은 시어를 담아 전달해 주셨습니다.
임지나 수필가는 돌아가신 오빠에 대한 추모와 감사, 미안한 마음을 진실로 엮은 감동의 수필을 들려주셨습니다.
김진수 시인은 <어머니의 송편> 외 총 7편을 낭송, 전쟁의 경험을 담은 시와 생명의 귀중함에 대한 깨달음, 어머니에 대한 사랑에 관한 시편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활자 속에 갇힌 시어를 낭송을 통해 독자들에게 더욱 깊이 다가가는 문학의 밤,
세 작가 분들을 전하는 문학과 감동, 공감하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래는 낭송회에서 낭송되어진 작품입니다.
1. 다림질
장효정
꼬깃꼬깃한 마음의 주름살
팽팽히 펴주고 싶은 날
다림질을 한다
눌러도 눌러도
꼿꼿이 고개 처들고 올라오는
욕심같은 보푸라기들
고열 스윗치로 온전히 지져 없애고
떨어지기 직전인 단추들
놓치기 싫은 희망처럼
단단히 붙들어 꿰맨 후
후끈후끈 달구어 준다
그래
이순의 옷자락에 핀 저 얼룩들은
고성능 스팀으로 서서히 적셔 내는 거야
그리고
마음의 불씨 몇줌도 꺼내
삶의 아픈 뼈 마디마디에 박힌 옹이들
자근자근 지져 줄꺼야
2. 집 수 리
장 효 정
어디 하나 성한 데 없이
헐대로 헐은 몸둥아리
드르륵 세월의 문을 열고
응축된 삷을 해체한다
낡은 기왓장들은
아픈 이처럼 층층이 들썩거리고
조심조심 걸어도
숱한 몸속의 상처들이
신음소리를 내는 마루
위장처럼 헐어 쉰내를 풍기고 있다
등휘는 삶의 무게
무너지지 않겠다고 버튕기던 나날들
숨기고 싶은 세윌이 아픈가
기울어진 벽에는
셀 수 없는 금이 가고 있었다
골다공증에 걸린 늑골부터
탕탕 찍어내자
뜨거웠든 날들이
하나 둘씩 허물어진다
어긋난 관절은 볼트로 조여주고
상처난 살점들은 정성껏 싸매주니
망각의 창살 뒤로 서서히 깨어나는 집
새로 끼운 열쇠구멍에서
반짝 불꽃이 튄다
3. 막고굴 속의 자유
장효정
수 천년 세월이 접혀있는
고요에 닿는 막다른 길
해탈도 없이 시간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살아서 앓던 마음의 번뇌
돌부처가 되어 가슴을 닫고
열반에 든 수많은 막고굴* 속의 부처들
나비 한 마리
시간의 벽을 뚫고 나와
삶의 출구와 꿈의 입구를 날으는 소리
풀지 못한 깨달음만
경문을 읽고 지나간다
나도 내 안의 수 많은 길 찿을 수 없어
아득한 기억 저편의 시간 속
하나의 막고굴에 나를 봉인한다
나갈 수가 없어
비로소 자유로워 지는 나
*막고굴: 중국 실크로드선상 돈황에 있는 수백개의 석굴들.
이 굴 속에는 각양 각색의 부처들이 있는데
여기서 신라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 되었다
4. 미이라
장효정
타클라마칸사막 아스타나 고분 속
켜켜히 쌓인 세월의 두께를 깔고
익을대로 익어 흘러내리는 마지막 울음과
비틀어진 웃음 하나 입에 물고
수 천년의 어둠을 걷어내며
위그르족 여인이 지금 막 잠에서 깨어난다
고요한 얼굴 속엔
마를수록 펄럭이던 생
떠나간 시간의 마른 혈관 자국과
오랜 고뇌까지 꼼꼼히 그려져 있고
모래알에 닦여 윤기마저 감도는 치아들
사이사이 박혀있던 생이
아득한 세월 속을 나비처럼 날아오른다
시간의 지문마다 닫혀있던 화두를 들고
다시 한번 자신을 풀어내며
환하게 비상을 꿈꾸는 저 여인
나의 생을 어느 사막에 묻으면
저런 부활이 되는가
지친 발목을 모래 속에 묻으며
나의 사막에 깊은 동굴을 판다.
-중국 씰크로드 여행기 -
5. 역광
장 효 정
안으로 휘듯 웅크리고 앉아
어둠의 비늘들을 털어내고 있는
쪼그라든 노인
어둠이 간절히 빛을 꿈꾸었든가
구부린 등뒤로 갑자기
쟁쟁한 햇살의 그물이 얹힌다
폭죽을 터트린 듯
날아 오르는
빛의 파편들
일제히 어깨 위로 내려앉아
반짝반짝 금빛 소리를 내며
외로움으로부터 젖지 않게
가만가만 등을 두드리며
노인을 말리고 있다
눈부신 한계 였을까
저 햇살 그의 앞가슴에 와 닿기 까지는
얼마만큼의 서늘한 공간을 날아야
하얗게 센 더듬이로
저 튀는 빛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까
가슴 밑 바닥에선
여전히 쩔렁거리는 차디찬 외로움
퍼렇게 담금질을 하고 있다
6. 모래시계
장 효 정
젊음과 희망
헐겁게 새어나가고
파장만 남기며 흘러내리는
까슬까슬한 시간들
섣부르게 끝난 축제 뒤의 고요 같은
허무 쌓이는 소리
머리카락 빠지는 소리처럼
서늘한 소리
생의 끝자락에 매달린 시간은
왜 이리 가볍고 적막한가
추억으로 가는 길마저 막힐 것 같은 날
빠져나간 세월의 두께
존재와 소멸의 함량에 대해 생각하며
함부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남은 시간들을 살찌우고 싶다
7. 사 막의 밤
장 효 정
모래바람
허공을 할퀴다가 눕는 밤
맘 속 깊이 패인 파문같은
모래주름 위로
갖난아기 숨소리 같은 달이 뜨고
별처럼 내밀한 촉수로
오슬오슬 돋아나는 소금 꽃들
시간은 어두움을 더 끌어당길 뿐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적막
기억의 새 한 마리 마저
외로운 발톱으로
제가 흘린 울음을 뒤적이다 날아가고 나면
내 안은 섬뜩한 공허로 남는다
Death Vally 에서
8.시지푸스의 돌
-골프와 인생
장효정
짜릿한 성취감과 어이없는
낭패감에
반반씩 행운을 걸고
초록 들판위에 펼치는
공놀이 한마당
홀과 나사이 드리운
직선 이 엄청난 줄타기
정갈한 침묵으로 시퍼렇게
날세워 굴려 보지만
잡힐 듯 비껴가는
행운의 여신처럼
칼날만큼 스쳐 지나가는
시행착오의 연속
언제나 뉘우침보다
앞서가는
과대한 욕심을 비웃으며
희망이 빗나갈 때마다
비늘처럼 일어서는
또 다른 욕망
때로는 들뜨고 때로는
한숨짖지만
몸서리치도록 상쾌한
샷 한 방
솔래솔래 꽁지를 흔들며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
땡그렁 금속성 소리와
함께 날려버리는
우리들의 스트레스
이 스릴있어 곧추서는
팽이처럼
오늘도 인내와 겸손을
되뇌이며
휘청거리는 세월을
굴리고 있다
우주의 무게만큼 큰
공의 무게
이제 됐다 싶으면
다시 미끄러져 내리는
피눈물 나는 우리
인생
아 시지푸스* 의 돌이여!
*시지푸스 : 희랍신화에 나오는 시지푸스는 제우스신을 여러번 속인 죄로 신의
노여움을 사서 코카사스 산중에서 바위돌을 언덕 위까지 굴려
올리면 다시 미끄러져 내려 이 작업을 계속하게 하는 형벌을 받음
<오빠> -임지나
오빠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오빠 생각이 날 때마다 늘 후회가 앞선다. 살아 있을 때 잘해 주지 못한 것, 오빠가 좋아하던 것을 챙겨주지 못한 자책감이다.
오빠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걸리는 간암이었다. 두 달 가까이 시름시름 앓았지만 감기라는 주치의의 오진 때문에 그나마 손 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원래 암이 생명의 불꽃이 재가 되는 마지막 순간에 바다의 해일처럼 몰려온다지 않는가. 뒤늦은 전문의의 진단은 길어야 6 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무표정하게 내렸다. 오빠는 그 6 개월도 다 채우지를 못 했다.
누구나 나름의 애절한 사연이 있겠지만 오빠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워낙 내성적이고 소심 했던 그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간혹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도 언제나 남의 얘기를 듣기만 할 분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거나 하진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아들이 사람들 앞에 우뚝 서기를 바랐다. 허나 학교에서도 일등은커녕 꼴찌를 겨우 면한 오빠였다. 반장은커녕 분단장도 한번 하지 못하는 아들을 아버지는 남 앞에 세우려 무던한 억지를 부렸다. 숫기도 없는데다 마음마저 꽃잎처럼 여린 오빠는 아버지의 강압에 점점 기가 죽었다. 어린 시절 거의 날마다 아버지 앞에 꿇어 엎드려 모질게 당하던 오빠를 지금도 기억한다. 물론 우리 집에서 호된 꾸지람으로 엎드려뻗친 사람이 오빠만은 아니었다. 나와 동생도 아버지 앞에 서면 다리가 후들거리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집안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딸에, 공부를 조금 잘해서 동생은 막내라는 프리미엄으로 나사를 조금 풀어준 것뿐이었다.
그러나 맡 아들로 동생들 앞에서 길가의 잡초처럼 밟히는 오빠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을까? 시합 중 흠씬 두들겨 맞아 뻗은 권투선수 같았다. 철이 없는 우리는 오빠 말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그것이 버릇처럼 익숙해져 버렸다.
오빠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우뚝 서기를 바라는 것은 아버지의 절대적인 이기심 이었다. 아버지의 깨진 꿈을 이루고 싶은 기대! 별로 내놓을 것 없는 집안을 일으키려는 욕심,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헛된 욕망 때문이었다. 이런 것이 보통 부모들의 바람일까? 물론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들이 대신 해 준다면 얼마나 대견할까, 그것을 바라는 마음이야 간절하지 않을 수 없지만.......
아버지는 예고 없이 오빠의 학업 테스트를 자주 했다. 그때 답이 틀리면 아버지의 주먹이 사정없이 오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오빠는 늘 불안에 떨며 아버지의 기침소리에도 주눅이 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의 실망과 비례해 오빠의 대인 기피증도 커져만 갔다. 아버지는 그런 오빠를 칠칠치 못한 자식이라며 포기해버렸다. 허나 오빠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미련하거나 칠칠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없는 여러 가지 손재주를 가졌고 기억력과 창의력도 좋았다. 아버지의 지나친 관심에 공부에 흥미를 잃고 내 몰린 억압에 자신감을 잃은 것 같았다. 고등학교를 가까스로 마친 오빠는 대학을 갈 수 없었다. 아버지의 기대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됐을 때 오빠가 결혼을 했다. 아버지가 고른 처녀와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올린 결혼식이었다.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그나마 불효를 더는 일이라 생각해서였을까? 결혼 후 오빠는 딸만 셋을 낳았다. 두 째 손녀까지 참아주던 아버지가 셋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추운 겨울날 오빠 네를 집에서 쫓아냈다. 그날 나는 뒤뜰에서 아버지 욕을, 원 없이 해대는 어머니를 붙들고 엉엉 울었다.
오빠가 떠나버린 우리 집은 겨울 내내 삭풍이 불었다. 북극 같은 겨울이 계속되었다. 봄이 오든 가든, 우리 집과는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첩첩히 쌓인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어머니의 늘어진 눈꺼풀이 더 깊숙한 골을 쳤다. 언제나 열려 있는 대문이 부딪치는 바람에 떨커덩 거리고 그 위에 어머니의 한숨이 눈처럼 내려앉았다.
오빠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은 네 번째로 아들을 낳고서다. 집을 떠난 지 4년 만이었다. 오직 아들만이 집안의 기둥이라고 믿는 아버지가 못 이긴 척 오빠 네를 받아들였다. 돌아온 오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아버지를 지극히 받들었다. 나는 차마 오빠에게 집 나갔던 4 년에 대한 것을 물어보지 못했다.
어머니가 갑자기 뇌출혈로 돌아가신 뒤 아버지가 병석에 누웠다. 암이라고 했다. 오빠가 시골에서 아버지의 수발을 들고 마지막 가는 길을 홀로 지켰다.
내 초청으로 오빠가 미국으로 이민을 온 것은 중년을 넘긴 나이였다. 친구도 별로 없고 남들이 다 치는 골프도 치지 않는 오빠가 유일하게 좋아한 것이 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라스베이거스 여행이었다. 바스토우를 지나 고개를 몇 개 넘으면 주 경계선인, 스테이트라인이 나온다고 신이 나 했다. 거기 가는 길을 오빠네 골목길처럼 외고 있었다. 우린 오빠에게 “카지노 박사” 란 별명을 달아주기도 했다. 라스베이거스를 갈 때, 출발부터 오빠의 콧노래가 시작 됐다. 그 때만은 지독한 음치인 오빠가 흥얼거리며 수많은 작사 작곡을 멋대로 해 냈다. 풍족한 살림이 아니어서 조금 가지고 간 돈을 금새 다 잃어도 기죽지 않고 카지노 훈수를 해주곤 했다. 언제나 맨 먼저 돈을 잃는 오빠에게 “박사님.” 훈수는 반대로 하라고 놀려댔다. 늘 내 곁에서 즐겁게 훈수를 했는데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다면, 그 때 백 불짜리 몇 장 덥석 쥐어 드렸더라면 오빠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후회가 된다. 그 돈을 받아 들고 환한 얼굴로 게임을 하며 짧은 시간이나마 많이도 행복해 했을 텐데! 참으로 인색하고 생각이 모자란 동생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2개월 전, 라스베이거스 여행을 했다. 마지막 여행 때,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콧노래도, 가는 길 설명도, 훈수도 그리고 작사 작곡도 없었다. 몸이 아파서였겠지만 그 역시 마지막 여행인 줄을 느낌으로 알았을까!
오빠와 자주 여행을 다니지 못했던 게 많이 후회스럽다. 지금쯤 오빠는 남들의 지도자로 우뚝 서는 짐을 내려놓고 하늘나라에서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을까? 아버지도 이미 오빠가 누구 앞에 내 놔도 부끄럽지 않는 아들이란 사실을 잘 아셨을 것이다. 언제나 내 곁에서 웃으며 카지노 훈수를 해 주던 오빠가 오늘 따라 더욱 그리워진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