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을 성직으로 여긴다 1.
성소聖召, 즉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하면 대개는 사제 성소와 수도 성소를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제가 되면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기 위한 소명을 받고, 수도자가 되면 복음삼덕(청빈, 정결, 순명)의 생활로 세상에서 하느님을 증거하는 소명을 받습니다. 하지만 사제나 수도자만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신자가 되는 것, 그것 또한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태어났고,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서의 저자는 주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는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 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원하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존속할 수 있었으며 당신께서 부르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겠습니까?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지혜 11,24-26)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분의 사랑 속에 태어나서 그분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 인간은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소명을 지닙니다. 흔히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자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물론 사람은 모두 다소 자기 중심적인 성향이 있어서 자신을 위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탐탁지 않게 여길 때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기대치에 실제 자신의 모습이 못 미치기 때문에, 혹은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 나는 공부를 못할까? 나는 왜 딴 사람처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나는 저 사람처럼 잘생기지 못했나? 날씬해지고 싶은데, 왜 이리 뚱뚱한가? 내 성격은 왜 이렇게 모가 났을까? 난 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까? 왜 나는 남들처럼 눈에 띄는 재주가 없을까?’ 하고 불만을 갖고 열등감에 빠지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불만과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인간 모두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사람들 각자에게 다른 이가 갖지 못한 좋은 점, 독특한 점 하나 정도는 다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부질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데에 시간과 신경을 쏟지 말고 먼저 하느님께서 나에게 선물로 주신 좋은 점이 무엇인지, 나의 특성과 재능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계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죽은 다음에 하느님을 뵙게 되면, 그분께서는 ‘너는 왜 아무개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했느냐, 누구처럼 유능한 사람이 되지 못했느냐?’고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대신에 “베드로야, 너는 과연 네가 되었느냐? 내가 네게 준 것을 제대로 살렸느냐? 마리아야, 너는 고유한 너 자신이 되어 살았느냐?” 하고 물으실 것입니다.
장미꽃은 그 아름다움으로 모든 이에게 기쁨을 줍니다. 장미꽃에 비해 호박꽃은 꽃도 아니라고 할 만큼 못난 꽃입니다. 하지만 호박이라는 열매를 맺어서 인간에게 줍니다. 꽃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그 사람에게만 있는 고유함과 특성이 있습니다. 다양한 꽃들이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화단을 이루듯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고유함을 가꾸어야 합니다.
자신의 고유함을 발견해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괜히 이 사람 저 사람 기웃거리면서 샘내거나 질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와 넉넉함을 갖게 됩니다. 반면 자신의 고유함을 찾지 못한 사람일수록 다른 이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질투와 시기도 많이 하고, 심하면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괴롭히기까지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하느님께서 나에게만 심어 주신 ‘꽃씨’가 무엇인지를 찾아서 아름답게 키워야 할 것입니다.
2001년 3월, 서울 홍제동 연립 주택 화재 현장에서 진화 작업을 하던 소방관들이 한꺼번에 순직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죽기 전에 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것,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것인가? 그래서 나는 이 직업을 성직(聖職)으로 여긴다네.”
이 소방관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꽃씨를 찾아서 아름답게 꽃피운 사람입니다.
나의 고유함을 찾아서 잘 살린다면, 그래서 내가 보람을 느끼고, 남에게 유익이 된다면, 그것이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반대로 나의 고유함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남의 것만 바라보고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삶을 산다면,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드리는 것이 아닐까요? 마치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아프듯이 말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속에 태어난 우리는 각자 자신의 고유함을 찾아 내어 가꾸고 다듬어서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 안에서 온통 모난 구석만 보이고 좋고 아름다운 것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아서 실망하고 낙담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에게도 분명 좋은 면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것을 발견할 눈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첫댓글 자신의 고유함을 발견해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괜히 이 사람 저 사람 기웃거리면서 샘내거나 질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와 넉넉함을 갖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만 심어 주신 ‘꽃씨’가 무엇인지를 찾아서 아름답게 키워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속에 태어난 우리는 각자 자신의 고유함을 찾아 내어 가꾸고 다듬어서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저의 하느님! 부족하고 나약한 제가 하느님께서 제게 심어주신 꽃씨를 하느님의 눈으로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 꽃씨를 주님의 도우심으로 활짝 피워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사람이 되게 저를 도우소서.
제게 주신 모든것이 주님을 찬양하는데 쓰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나이다.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