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을 성직으로 여긴다 2.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안에는 유명한 예술품이 많은데 그 중에서 미켈란젤로의 작품 피에타가 있습니다. 성모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의 시신을 품에 안고 비통해하시는 모습을 조각한 것인데 걸작 중의 걸작으로 손꼽힙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어느 날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가게 앞을 지나고 있는데, 그곳에는 아주 볼품없게 생긴 커다란 대리석 하나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가게 주인에게 그 대리석의 가격을 물으니 주인은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그냥 가져가세요. 지난 십 년간 이것을 팔려고 해 보았지만,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더군요. 쓸모도 없이 큰 돌이 괜히 공간만 많이 차지해서 귀찮았는데, 잘됐네요. 필요하면 그냥 가져가세요.” 미켈란젤로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그 대리석을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대리석 가게 주인을 집으로 초대해서 자신이 공짜로 얻은 대리석으로 만든 작품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작품은 바로 그 유명한 피에타상이었습니다. 가게 주인은 깜짝 놀라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아니, 어떻게 그렇게 볼품없는 대리석으로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가 있었습니까?”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대리석을 보았을 때 단지 불필요한 부분만을 쪼아 낸다면 아주 멋진 작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을 뿐입니다.”
비록 자신이 쓸모없게 여겨지더라도 그 안에는 정말로 값진 무엇이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그것을 발견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서라도 찾아내야 합니다.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섣불리 단정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내 안에 마련해 주신 고유하고 귀중한 선물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삶의 보람을 느끼고, 남에게도 기쁨과 유익함을 주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소명입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되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아들딸로 선택되어 그에 합당하게 살도록 부르심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서 드러나듯이 하느님 아버지는 당신 자녀들을 극진히 보살펴 주십니다.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 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마태 7,9-11)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하느님의 극진한 보살핌에 감사드리면서 그분의 자녀답게 살아야 하는 소명을 받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대로 ‘세상의 소금과 빛’(마태 5,13-14)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길이란 믿지 않은 이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마태 5,16)하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착한 행실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실천하신 것을 본받아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게 되면 세상과는 대조적인 삶의 모습을 지니게 됨으로써 사람들은 세상과는 다른 삶을 사는 우리를 보고서 하느님을 찾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상황에 비추어서 두 가지만 예로 들어 봅니다.
첫째로, 정직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는 거짓이 횡행해서 사람들 사이에 믿음과 신뢰가 점점 더 사라져 간다는 것입니다. 불신이 너무 깊어져서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고 항상 그 이면을 살피게 됩니다. ‘이 사람이 정말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를 항상 따져 봅니다. 이것은 인간관계를 아주 피곤하고 힘들게 만듭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니까 뭘 사러 가서도 상점 주인이 말하는 물건 값을 그대로 믿기가 어렵습니다. 주인이 부르는 대로 돈을 내고 나면 꼭 속은 기분이 듭니다.
사회가 이렇게 되면 참으로 살기가 힘들고 피곤합니다. 그런데 이런 불신 사회에서 예수님 말씀대로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마태 5,37) 정직하게 말함으로써 가식과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사람들,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 줄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길입니다. 신자들이 그렇게 산다면 불신의 흙탕물로 혼탁해진 사회의 한 구석에서 솟아 나오는 맑은 샘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손해 보고 이용당하기 십상이라고 반박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전에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하느님을 위해서 재산, 명예, 심지어는 목숨까지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그 후손인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 작은 손해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행스럽게도 정직하다고 해서 항상 손해 보고 이용만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1990년대 초반에 노량진 수산 시장에서 장사하는 신자들이 신자답게 살기 위해 한 가지를 결정했습니다. 생선에 물감을 칠해서 싱싱하게 보이게 하는 그동안의 관행을 더 이상 따르지 않기로 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생선이 싱싱해 보이지 않자 고객이 줄어 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단골손님들이 그 이유를 알게 되면서 신자 상인들을 신뢰하게 되어 오히려 장사가 더 잘됐다고 합니다. 또 다른 예도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방송사에서 양심 점포를 찾아내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컴퓨터 내부의 연결선을 일부러 끊어 놓고 수리를 부탁했더니, 백여 개의 수리점에서는 하나같이 큰 고장이라고 많은 수리비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딱 한 군데에서만 연결선을 바로 끼워 주고 수리비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 점포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수리점이었습니다.
빛과 소금이 되는 또 다른 길은 돈보다는 사람을 우선에 두는 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경제적 이익을 우선에 두고서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으로 여기는 경제 제일주의에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 앞에는 인륜도 무너지기 일쑤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잘살아 보려는 노력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의식주가 어느 정도는 해결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끼니를 이어 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나라 전체를 두고 볼 때 한 세대 전보다는 경제적으로 훨씬 더 잘살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전화, 냉장고 있는 집이 드물었지만, 이제는 집집마다 그 정도는 다 갖추고 자가용마저도 없는 집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은 좋은데, 돈맛을 알게 되어서 어느새 돈이 우상이 되었습니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덤빕니다. 돈 앞에는 부모도 친척도 친구도 소용없는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돈만 아는 것이 문제입니다. 돈 앞에는 인륜도 없다고 세상을 탓하지만 자신부터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수도권 지역에서 보육원을 운영하는 어느 수녀님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보육원은 국가와 시 당국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그 액수가 많지 않아서 후원자의 도움 없이는 운영되기 어렵다고 합니다. 후원자 중에 보육원 근처에서 주로 대학생들을 상대로 작은 커피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그는 매일 저녁 커피를 판매한 금액의 십 분의 일을 새 돈으로 바꾸어서 저금통에 넣어 두었다가 매일 말일에 저금통을 통째로 보육원에 가져와서 후원금으로 바친다는 것입니다. 그 후원자는 경제 사정이 그리 넉넉지는 않지만, 몇 년째 이런 방식으로 후원을 하면서 보람과 기쁨을 누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을 본받아 착하게 살아가면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려고 노력할 때 하느님 아버지게 효도하는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세상, 따뜻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스도교 신자 모두는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신자로서 자신의 성소에 충실하게 살아갈 때 그런 가정에서는 사제 성소, 수도 성소가 꽃피게 될 것입니다. 마치 좋은 밭에서 좋은 나무가 자라나 좋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각자는 한 인간으로서, 세례받은 신자로서 자신의 성소를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좋은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좋은 밭을 일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첫댓글 ‘세상의 소금과 빛’(마태 5,13-14)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