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 1.
언젠가 한 개신교에 몸담고 있는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교회에 대해 지니고 있는 생각을 전해 주면서, 답변을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대부분 가톨릭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의 나열이었습니다.
‘가톨릭은 예수님보다 성모 마리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교황이 하나님보다 우선한다’,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사제를 통해서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해성사와 관련해서)’ 등등.
이중에서 특별히 마리아 공경은 자주 가톨릭과 개신교의 단골 논쟁거리가 되어 왔습니다. 아마도 가톨릭의 마리아 공경에 대한 개신교 신자들의 이해 부족,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가톨릭교회 내의 과장된 마리아 공경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마리아를 공경해 왔습니다. 하지만 개신교 일각에서 주장하듯이 마리아를 숭배하지는 않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숭배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숭배라는 말 대신에 ‘흠숭(欽崇)’이란 단어를 쓰는데, 이 표현은 하느님께만 사용합니다. 가톨릭은 마리아를 흠숭하는 것이 아니라 공경할 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최상의 공경, 즉 상경(上敬)의 예로써 마리아를 대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에도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예수님께는,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성모님께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가톨릭교회는 오해와 비난을 받아 가면서도 왜 마리아를 공경할까요? 왜냐하면 하느님의 충만한 은총을 받아(루카 1,30)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과 그분이 죽고 부활하신 예루살렘을 성지(聖地)라고 부른다면, 그분을 잉태하고 낳아서 기르신 성모님은 성지 중의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성모님이 단지 육신적으로 예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분을 공경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왕조 시대에 대비(大妃)가 왕을 낳은 어머니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신 것은 하느님의 은총에 믿음으로 응답하였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구세주가 세상에 오실 수 있도록 단지 피동적으로 자신의 몸을 빌려 드린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함으로써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마리아도 처녀의 몸으로 구세주를 잉태할 것이라는 천사의 말에 믿음으로 순종함으로써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신 것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바로 이런 믿음으로 인해서 마리아는 친척 엘리사벳에게 칭송을 받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루카 1,45)
가톨릭교회는 엘리사벳의 칭송을 이어받아 성모님이 복되신 분이라고 공경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구세주를 잉태할 때 보였던 그 믿음과 순종을 계속 견지하였습니다. 비록 자신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랬습니다. 성모님은 열두 살의 예수님을 예루살렘에서 잃어버렸다가 사흘 만에 다시 찾았을 때,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라는 아들의 대답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습니다.(루카 2,50-51) 아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보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의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성모님이 예수님에게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그럼에도 성모님은 시중을 드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하고 당부하십니다.
여기서 성모님은 비록 아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도 그 아들을 굳건히 믿고 신뢰한 분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점에서 성모님은 신앙인의 탁월한 모범이 되십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면 하느님을 원망하고 의심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이런 순간에도 아들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굳건히 믿고 신뢰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런 굳은 신뢰를 간직하셨던 성모님은 아들의 십자가 죽음을 지켜보면서 시메온이 예언한 대로 “영혼이 칼로 꿰찔리는”(루카 2,35) 고통을 당하십니다. 믿는 사람들이라면 예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고통을 당하거나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존경심을 갖고 우러러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곁에서 그분의 고통을 함께 나눈 성모님을 우러러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요한 사도를 통해서 성모님을 우리에게 어머니로 맡기셨습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먼저 다가오셔서 큰 자비와 사랑을 전해 주시는데, 인간은 여기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응답이란,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 뜻을 따르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 사랑에 전적으로 믿음과 삶으로써 응답하신 분이고, 바로 이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성모님을 존경하고 공경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