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공 22/ 명창 배일동
파란만장이 없는 세상사가 어디 있겠는가. 부침많은 세사가 그렇듯이 소리길도 평탄하지만은 않다. 모르는 사람들은 소리만 열심히 하면 되지 걱정할게 뭐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소리는 감정을 다루는 일이라 소리가 진척이 없고 안 풀리면, 자신의 예술적 한계가 여기까지 인가하고, 실의에 한번 빠지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사는게 그저 막막 해져버린다. 공부란 원래 처음 단계에선 발전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로 변하는 정도가 빠르지만, 숙련되어 갈수록 변하는 속도가 더디고 소리도 늘지않는다.
찬지미경(鑽之彌堅)이다. 뚫을수록 더 단단한게 나오니 갈수록 태산이다. 그럴 때 일수록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여유롭게 즐겨야 고비를 넘겨 시원한 너른 풍경 볼 수 있게 되는데, 막상 그 상황에 이르면 마음을 여유롭게 가진다는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그때 당시 잠시 머리도 식힐겸 지난 가을에 잣따서 벌어논 돈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기왕이면 또다른 공부장소도 물색 해볼겸 겸사 겸사해서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해서 보름 넘도록 가야산을 둘러보고, 포항 내연산, 울진 불영계곡, 설악산 도둑소, 수덕사, 부안 내소사까지 둘러 보면서 지치고 번잡한 정신을 위로 했다. 여행 후엔 마음이 한결 좋아져 다시 수련에 몰입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공부가 예전만큼 신나지 않았다. 필자에겐 공부 장소는 역시 지리산이 으뜸이었다. 지리산은 품이 넓고 커서 우선 지루하지가 않고, 기세도 남다르고 물맛이 좋아 공부 장소로는 가장 좋았다.
어찌 어찌해서 그렇게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세월을 한참 지내고,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바위를 치며 소리를 하는 도중에, 가로 세로 60~70 센티 정도 크기의 바위가 뽕나무 북채로 딱 치는 찰나에 그냥 아래로 툭 떨어져 버렸다. 다행이 발은 다치지 않았지만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처마밑에 낙수물이 댓돌을 뚫은다(滴水穿石)더니, 소리가 바위를 뚫어 버린 것이다(聲音穿石).
아마도 그것은 이미 금이 난 바위 틈새로 오랜 기간 빗물이 스며든데다, 필자가 매일같이 두드려서 떨어졌을 것이다. 사실 바위를 치고 소리 한다는건 자신도 모르게 엄청난 힘이 들어간다. 가만 가만 치다가도 소리에 한번 감정이 오르면, 자신도 모르게 북채에 힘을 모아 온몸으로 세게 친다. 어깨에 무리가 많이 간다. 필자는 그런 이유로 산공부을 다 마치고서도 십년이 넘도록 어깨 통증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었다. 골병이 사라지는 세월도 십년이 걸린 것이다. 세상일에는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다. 하여간 바위가 떨어져나간 후로는 왠지 마음이 새로와졌다.
사진, 독공했던 지리산 일동폭포(사진, 한성주)
일장춘몽
탑전에 연꽃
연잎에 개구리
.2020.7.18. 페이스북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