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일지.
순례 1일 차(2020. 6. 1. 월)
오늘이와 내가 순례 대장이어서 둘 다 인사말을 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나는 인사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이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내가 인사말을 할 확률을 100%에서 50%로 줄이려고 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몽이 말씀하시기를 오늘이가 몸이 좋지 않아 못 왔다고 했다. 결국, 내가 인사말을 하게 되었는데 떨리고, 사람들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일들이 많을 텐데 사람들 앞에서 내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
버스터미널에서 구례 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모금 활동을 하고 있는 어떤 형을 봤는데 혼자 있어서 외로워 보였다. 그래서,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 형이 말하기를 자신이WECA(world education culture area)라는 단체에서 활동을 한다고 했다. 그 곳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겠지만 내가 들은 것은 베트남에서 저소득층에 있는 아이들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싸인을 하는 것이었으면 활동에 참여하려고 했는데 기부를 하는 것이어서 활동에 참여하지 못했다.
순례 2일 차(6. 2. 화)
어제 저녁부터 아몽이 ‘잠재의식의 힘’이라는 책을 읽어 주셨다. 그 책에서 ‘잠들기 전, 너의 잠재의식에게 내일은 6시에 일어나라 하고 말하면 6시에 일어나게 될 것이다.’ 라는 구절이 나왔다. 나는 잠에 들기 전에 ‘일찍 자라.’ 하고 말할 것이다. 이유는, 나는 누웠을 때 빨리 잠에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이가 몸이 좋아져서 점심쯤에 합류를 했다. ‘설마, 오늘이가 빈손으로 오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을 했다. 오늘이 아빠 손에 무엇인가가 있어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것을 봤는데 그것은 설레임(아이스크림)이었다. 맛있었다.
점심밥을 다 먹고 쉬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들이 게이트볼을 치고 계시는 것이 보였다. 골프보다는 폼이 덜 났다. 하지만, 더 재미있게 보였다. 나도 나이가 들면 게이트볼을 쳐봐야겠다. 고령화 사회에서 게이트볼 같은 스포츠는 좋은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크게 무리하지 않으며 운동을 할 수 있고, 집중력을 키우며,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서 노는 것이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순례 3일 차(6. 3. 수)
오늘은 내가 선두를 섰다. 어제 잡혔던 물집 때문에 걱정이 됐지만 걷다보니 적응이 되었다. 하지만, 뱀이 무서웠다. 뒤에서 걸으면, 앞사람이 뱀을 보고 뱀의 위치를 말해주면 피해갈 수 있지만, 앞에서 걸으면 내가 제일먼저 뱀을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뱀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박수도 치고, 발소리도 크게 내며 걸었다. 그 효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뱀과 마주치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뱀도 내가 싫을 건데...
오늘 걸은 코스는 중급 코스였다. 내가 느끼기에는 상급 코스였다. 엄청 힘들었다. 애들도 지쳐 보였다. 그래서, 천천히 걸었는데 애들은 나보다 더 빨리 갔다. 비축해둔 힘이 있었나보다. 그래서, 선두에서 밀려나 걸었다. 어디까지 가나 지켜봤는데 애들은 계속 걸어갔다. 따라가기가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애들도 힘들어 보였다. 어쩌다보니, 다시 내가 선두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많이 천천히 걸었다. 이제부터는 이런 힘든 코스가 나오면 내 페이스에 맞춰서 걸어야 겠다.
순례 4일 차(6. 4. 목)
길에 나서기 전, 펜션 사장님이 우리에게 달걀을 주셨다. 그런데, 손에 쥐기도 어려울 만큼 뜨거웠다. 그래서, 흐르는 계곡물에 달걀을 넣고 식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 지나고, 달걀을 만져보니 그럭저럭하게 식어있는 것 같았다. 달걀을 한 입 베어 먹었는데 속은 아직도 엄청나게 뜨거웠다. 그 순간,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 라는 고대 황제의 말이 떠올랐다.
화개 장터에 갔는데, 아몽이 우리 모두에게 3,000을 주셨다. 이유는 장터 구경을 하면서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먹으라는 것이었다. 작년 천.지.인 순례 때는 은어를 먹었는데 너무 후회가 됐었다. 이번에는 음료수를 먹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편의점에 가서 밀키스(음료수)를 사먹었다. 하지만, 더 먹고 싶은 마음에 똑같은 편의점에 가서 복숭아 에이드를 사서 아몽이 썼던 얼음컵에 에이드를 딸아 마셨다. 하지만, 또 더 먹고 싶은 마음에 또 그 똑같은 편의점에 가서 청포도 에이드를 사먹었다. 복숭아 에이드를 마실 때 얼음을 다 먹은 터라 얼음컵도 같이 사려고 했다. 얼음컵은 600원 이었다. 하지만, 나한테 남은 돈은 500원 이었다. 편의점 주인아저씨가 나의 사정을 아시고 얼음컵을 그냥 갖고 가라고 하셨다. 돈을 안내고 갖고 가기가 좀 그래서 남은 500원이라도 드렸다. 내가 똑같은 편의점에 3번이나 간 것도 있지만, 주인아저씨가 나의 사정을 아시고 그러한 행동을 하신 것이 고마웠다.
순례 5일 차(6. 5. 금)
오늘은 쉬기로 한 날이다. 그래서, 늦게 일어나려고 했는데 습관처럼 6시 40분에 일어났다. 습관은 참 무섭다.
오전에는 순례 전반기의 글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몽이 검사를 하셨는데 빠꾸를 맞었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나의 의지를 갖고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그저 검사에 통과하기 위해서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곡도 갔는데 수영이 잘 되지 않았다. 왕년에는 접영도 했는데... 작년 천.지.인 순례 때도 왔던 계곡인데 물이 많이 줄어있었다. 그래서, 다이빙도 못했다. 물이 좀 더 깊었으면 좋았겠다. 하지만, 이게 다 우리가 화경을 파괴해서가 아닌가? 방금까지도 에어컨을 틀고 있다가 지금 껐다. 더워서 에어컨을 틀고, 더워져서 에어컨을 또 틀고... 악순환의 연속이다.
점저(점심밥+저녁밥)로 치킨을 시켜 먹었다. 호식이 두 마리 치킨에서 시켰는데 원래 한 마리를 시키면 두 마리를 주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가 시킨 곳은 그러지 않았다. 바가지를 쉬우는 것 같았다.
사람이 있기에 돈이 있는 것인지, 돈이 있기에 사람이 있는 것인지...
순례 6일 차(6. 6. 토)
생각해 보니 오늘이 6월 6일 현충일이다. 언젠가, 4. 19혁명에 대해 찾아보다가 이승만이 현충원에 묻혀있다는 글을 읽었다. 나라를 위해 힘쓰시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모셔놓는 곳이 아닌가? 참 우스꽝스럽다.
오늘 또한 계곡에 갔다. 어제도 갔기 때문에 오늘은 발만 담구고 빨리 숙소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현우형이 춥다며 다가와 나에게 물을 뿌렸다. 물론 작년 새내기 순례처럼 싸우지는 않았다. ‘왜 사람들은 혼자만 나쁜일을 당하는 것을 싫어할까?’ 하고 생각을 해봤는데, 인간의 의미 없고, 알 수 없는 악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들만의...
순례 7일 차(6. 7. 일)
오늘은 길에 일찍 나서기로 했다. 그 이유는, 걸을 거리가 길고, 그늘과 쉴 곳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 애들도 깨웠다. 이때부터가 문제였다. 최근 언젠가, 분명 환히에게 이불을 게는 방법을 가르쳐 줬는데 내가 보기엔 이불이 이상하게 개어져 있었다. ‘나름대로 깨끗하게 지내보려고 노력했는데 이런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걸으면서 이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 누군가 관옥 할아버지에게 “만약, 제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했는데 그 사람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부탁을 거절했을 때 화가 나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해야 되요?” 라고 여쭤보았다. 할아버지는 “부탁을 하는 것은 너에게 달려있지만,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그에게 달려있어.” 라고 대답하셨다. 생각해 보니, 나도 사람들의 보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깨끗하게 지내면, 사람들도 깨끗하게 지내기를. 달리 말하면, 나와 같아지기를...
순례 8일 차(6. 8. 월)
오늘은 1,500년이나 된 화엄사라는 절에 갔다. 절이 엄청 컸다. 어떤 스님이 단주를 주셨는데 난 받지 않았다. 뒤 돌아보니 단주가 예뻐 보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두더지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전두환에 대해도 얘기를 나눴다. 그 사람은 정말 나쁘지만,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저녁에는 민들레와 어진이 누나가 두 손에 치킨을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배움지기 몰래 시켜먹던 치킨집에서 배움지기가 치킨을 사오시니 느낌이 색달랐다.
아몽이 학교분들이 우리를 위해 마음을 모은다고 할 때도 그랬고, 두더지, 민들레, 해천, 어진이 누나가 직접 찾아오니 감동도 들었고, 순례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순례 9일 차(6. 9. 화)
오늘은 순례글을 정리하자는 목적으로 걷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인데 전까지의 순례보다 이번 순례 때 느낀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숙소에 골프공과 나무 막대기가 있어서 골프를 쳤는데 실력이 좀 늘은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오늘 왜 쉬고 있는지 기억났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러 갔다.
오늘 밤에는 제하라는 6학년 친구 집에서 자기로 했다. 오늘은 자신들의 숙소에서 자지 않는 것을 아니 손을 때버릴 수도 있는 것인데, 숙소 사장님들이 우리를 제하네 집까지 태워다 주신다고 하셨다. 감사했다.
순천에서 구례 읍내에 처음 왔을 때에는 구례 읍내가 시골처럼 보였는데, 지금, 이 작은 마을에서 읍내를 보니 읍내가 도시처럼 보인다.
순례 10일 차(6. 10. 수)
제하네와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구례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원래 우리는 10시 20분 버스를 타려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 19여파로 인해 그 버스가 사라졌다고 했다. 자칫하면 11시까지 기다릴 뻔 했다. 그 순간,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라는 요기 베라의 말이 떠올랐다. 만약, 도착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있었다면 큰 일 날 뻔 했다.
순천에 와서 일찍 밥을 먹었다. 아렛장에서 국밥을 먹었다. 건봉 국밥이라는 유명한 국밥집에서 먹었는데, 500m 정도 떨어져있는 내가 아는 국밥집이 더 깔끔하게 잘 하는 것 같다.
학교에 가는 길에 현우형과 환경문제에 대해 얘기를 했다. 환경을 아껴야 한다. 우리는 환경을 이렇게 쓰는 것이 당연하지만, 먼 미래에는 당연하지 않고 죄 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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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애 쓰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