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 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려면 1.

*** 고정 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려면 1. 오래전에 읽었던 법정 스님의 수필집에 실려 있는 이야기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스님은 어느 여름날 자신이 거처하는 암자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마루에 팔베개를 하고 비스듬히 누워서 주위 경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평소에 눈에 익고 친숙하게 보이던 경치가 색다르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스님은 벌떡 일어나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와 서서 허리를 굽혀 가랑이 사이로 다시 그 경치를 내다보았습니다. 눈 앞에는 새로움이 펼쳐졌습니다. 하늘은 푸른 호수가 되고 산은 그 속에 잠긴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이 발견이 나무나도 신기해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개를 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숙달된 조교처럼 시범을 보이면 그들도 따라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고정된 시각을 바꾸면 새로운 세계가 펼져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각자의 고유한 시각으로 세상과 인간을 보게 마련입니다. 각자의 고유한 시각에서 독특한 개성이 형성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정 관념이나 편견이 생겨 거기에 갇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제한된 시각으로 세상과 인간을 보게 되면, 마음에 들지 않고 미운 것이 많아 생기게 마련이고, 이는 비난과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에 불만과 미움이 쌓여 간다고 느껴지면 과감히 ‘거꾸로 보기’를 감행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새로운 시각과 가능성이 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약성경 열왕기 2권 5장에 등장하는 나아만도 고정 관념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칠 뻔했던 사람입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과 인접한 강대국 아람 제국의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임금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었지만 나병 환자였습니다. 어느 날 나아만의 아내가 자신이 데리고 있던 몸종에게서 반가운 얘기를 듣습니다.  그 몸종은 이스라엘 출신 소녀로, 자기 고국ㅇ레 엘리사라는 뛰어난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면서, 그 사람이라면 나아만 장군의 병을 고쳐 줄 수 있으리라는 말을 했습니다. 부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아만은 아람 제국 임금의 소개장을 들고 이스라엘로 가서 엘리사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심부름꾼을 시켜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면 나병이 나을 것’이라는 말만 전합니다. 엘리사가 얼굴도 비치지 않고 심부름꾼만 달랑 내보내어 볼품없는 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는 말을 전해 듣고 나아만은 크게 화를 냅니다. 나아만은 강대국 아람 임금의 총애를 받던 실력자였으니 스스로를 거물급 인사로 여겼을 것이고, 약소국 이스라엘의 예언자 엘리사가 뛰어나와 반겨 주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는 당연히 그가 나에게 나와 서서, 주 그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이 나병을 고쳐 주려니 생각하였다.”(2열왕 5,11)  하지만 예상치 못한 푸대접에 자존심이 크게 상한 나아만은 자리를 박차고 돌아가려고 합니다.  다행히 나아만에게는 현명한 부하들이 옆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언자가 시키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못할 것은 뭐 있느냐, 한번 해보기라도 하라’고 간청합니다. 나아만은 이들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엘리사가 시킨 대로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자 나병이 깨끗이 낫습니다. 나아만은 달리 생각해 보라는 측근의 조언을 받아들인 덕분에 자신의 고정 관념을 극복하여 원하는 바를 이룬 것입니다.  나아만과 같은 모습은 오늘날에도 반복됩니다. 우리도 자신의 고정 관념이나 편견에 사로잡혀서 다른 사람을 오해하여 좋지 않는 마음을 품고 비난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된 어느 소설가의 체험담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큽니다.  『그 소설가는 언젠가 지하철에서 늙은 스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다른 스님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덥수룩한 구레나룻에 꾀죄죄한 누더기 가사를 걸친 스님이었습니다. 스님은 과자 봉지부터 담요와 운동화까지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 찬 배낭을 지고, 손에는 과일이며 장난감들이 가득 들어 있는 보따리까지 들고서 퇴근 시간이라서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한 지하철을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소설다도 다른 사람들처럼 못마땅한 눈초리로 그 스님을 잠시 쳐다보다가 외면해 버렸습니다. 필시 승려를 가장한 걸인이거나, 시주를 빙자하여 금품이나 모으는 땡추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목적지에 도착해서 서둘러 전동차를 빠져나와 계단을 오르려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 소설가의 손목을 낚아채고는 이렇게 말을 건넸습니다. “이 짐 좀 들어주지 않겠나?” 고개를 돌려 보니 손목을 잡은 사람은 다름 아닌 지하철 안에서 본 그 스님이었습니다. 소설가는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몹시 피로하고 지친 모습의 스님을 보자 그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짐을 들어 보니 노인이 들기에는 너무 무거웠습니다. 이윽고 전철역을 나설 때 그 소설가는 스님을 향해 시큰둥하게 한마디 내뱉었습니다. “좀 버리세요, 부처님처럼…….”욕심을 버리라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자 스님은 이렇데 대답했습니다. “버렸으니 가져가는 게야. 내가 돌보는 아이들을 도와주시는 보살님들이 계신데, 차도 없고 운전도 할 줄 모르니 이 늙은 중이 이렇게 돌아다닐 수밖에.” 그 스님은 부모 없는 아이들을 사찰에서 돌보고 있던 분이었습니다. 다시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하는 스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소설가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이용범, ‘오해와 편견’ 경향신문 2002. 11.26  이 소설가도 나아만처럼 고정 관념과 편견을 갖고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었지만, 다행히 그것을 극복하여 오해에서 벗어납니다. 하지만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 사람들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란 나자렛을 방문하여 회당에서 설교를 하십니다.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의 지혜에 놀라워하지만, 그분의 출신이 자신들과 다를 바 없어 평범하다는 이유로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마태 13,55)  그들 생각에 메시아는 좀 더 번듯한 가문에서 나와 사회적으로 그럴 듯한 신분의 사람이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으니까 시큰둥하게 반응했던 것입니다.  이런 반응에 대해 예수님께서 쓴소리를 하시자 나자렛 사람들은 발끈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십니다.(루카 4,23-30) 나자렛 사람들은 메시아를 만났지만, 자신들의 편견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척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고정 관념이나 편견에 사로잡히면 사람만이 아니라 하느님도 잘못 보고 배척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기 쉽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처럼 제한된 존재가 아니라 초월적 존재이시기 때문에 결코 우리의 마음과 생각 안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은연중에 하느님을 자신의 생각과 개념에 고정시키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러이러한 분이라고 고정된 개념과 생각 속에 한정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