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풍기의 자연풍
밤이 되어도 잠을 이루기 힘든 열대야가 연일 계속될 때 선풍기 없이 잠드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창문을 다 열어놓아도 바람 한 점 없을 때 불어오는 선풍기 바람, 특히 ‘자연풍’이라고 불리는 부드러운 바람은 몸의 열기를 식혀주는 소리 없는 자장가 같습니다.
어린 시절 열대야를 보내기 위해 틀어놓은 선풍기에는 그런 마술 같은 바람이 없었습니다. 그냥 바람세기에 따라 미풍, 약풍, 강풍 세 종류만 있었죠. 그런데 그 후로 몇 번의 여름이 지나자 선풍기에는 ‘자연풍’이라는 놀라운 바람이 추가되었습니다. 바람 세기와 간격이 일정하지 않은 그야말로 자연을 최대한 닮은 바람이었죠.
‘자연풍’을 켜놓고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선풍기도 없던 시절에 아버지께서 날마다 제 곁에서 밤늦게까지 부채질을 해주셨던 그때가 떠오릅니다. 그때 아버지의 부채질은 언제나 ‘자연풍’ 모드였습니다. 바람의 강도도 일정하지 않았고 힘이 드시면 간간히 부채질을 멈추기도 하셨기 때문이죠.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아버지의 부채 바람에는 아버지 체취가 묻어난다는 점입니다. 부채질하느라 땀을 흘리시면 그 땀 냄새가 부채 바람에 실려 제 코에 와 닿곤 했습니다.
바람이 시원하기만 하다고 해서 잠이 저절로 오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때론 바람이 멈추기도 약해지기도 하지만 지속적으로 전해지는 사랑이 우리를 잠들 수 있게 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바람이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살아가다 혹시 불면의 밤이 찾아오면 우리 각자에게 불었던 사랑의 ‘자연풍’을 기억하면서 편한 잠을 청해보는 건 어떨까요?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