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만례 할머니와 놋양푼 아줌마
깊은 산속에 혼자 사는
고만례 할머니는
어느 여름 저녁
모깃불 피운 멍석에 앉아
밤하늘에 솜솜 박힌 별을 세며
옥수수를 먹고 있었대
그때,
머리에 커다란 짐을 인 아줌마가
사립문을 빼꼼 열고 들어오더래
저녁도 못 먹었다는 아줌마에게
있는 반찬에 남은 밥을 차려 준 뒤
짐을 풀어 하나하나 살펴보던 할머니는
반짝반짝 빛나는 놋양푼이
그렇게나 좋아 보였다지 뭐야
며칠 뒤 있을 할아버지 제사 때
떡과 나물과 전을 담으면 좋을 것 같았지
한 개에 삼백 원이라는 놋양푼을
두드려 보고 만져 보고 문질러 보다
할머니는 은근하게 흥정을 했대
“세 개 살 테니 천 원에 주슈.”
열무 비빔밥을 한입 가득 떠 넣던
놋양푼 아줌마는 눈을 깜빡이며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더니
그렇게는 안 된다고 거절했대
하지만 할머니는 조르고 또 졸랐지
결국 아줌마는 하룻밤 자고 난 다음 날
천 원에 놋양푼 세 개를 주고 갔대
할머니는 그걸 들고 산길을 내려가
동네방네 자랑을 했지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깔깔 웃었지만
이유를 모르는 할머니는
그냥 같이 웃어버렸대
그 뒤로 할머니는 아줌마가 오면
있는 반찬에 함께 저녁을 먹고
나란히 누워 오순도순 얘기를 했지
친자매처럼 가까워져서야
수줍게 고백을 했는데
고만례 할머니도 놋양푼 아줌마도
전혀 셈을 할 줄 몰랐다지 뭐야
“남편이 갑자기 죽어서
헐 수 읎이 장사를 시작했슈.”
“셈을 모르고서 어찌 장사를 하누.”
할머니가 혀를 차며 걱정을 하자
아줌마는 환하게 웃었대
“괜찮어유. 사는 사람이 하잖유.”
그 뒤로도 오랫동안 아줌마는
깊은 산속 고만례 할머니 집을
성님 집처럼 자주 찾아왔대
어느 날
반듯이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고만례 할머니를 안고
눈물 흘리던 그날까지
– 이창숙, 『전봇대는 혼자다』(사계절, 2015)에서
사립문과 놋양푼의 시절
꼭 옛날이야기 같은 시입니다. 미소 지으며 읽다가 마지막에는 마음이 덜컹 내려앉지요. 현대인의 눈으로 봤을 때는 밥을 내주고 잠자리를 준 것에서부터 이미 뭐가 남는 장사인지 셈법이 엉망진창인 것 같은데, 그렇게 순박하게 아웅다웅하다가 자매처럼 연을 맺은 두 분 모습이 정겹습니다. 깊은 산속에 사는 고만례 할머니가 모깃불을 피운 멍석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세며 옥수수를 먹었을 때가 언제쯤일까 헤아려 보다가 초여름인 6월이면 좋겠다 싶어 이번 달의 시로 골랐습니다. 사실은 한여름에 더 가까울 것 같지만, 땀으로 옷이 들러붙지 않는 선선한 밤이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두 분이 한 달이라도 더 빨리 만나서 다정하게 지내시면 좋겠다는 마음도 공깃밥과 함께 추가요!) 모기도 적절하게 등장하고 옥수수 수확 시기에도 제법 들어맞는 6월 말로 생각하고 우리 함께 시간 여행을 해 보지요.
고만례 할머니와 놋양푼 아줌마가 만나 정다운 인연을 맺은 시절은 언제쯤일까요? 모깃불을 피운 멍석이 있고, 한 개에 삼백 원 하는 놋양푼이 있던 시절입니다. 머리에 커다란 짐을 지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팔던 이가 있던 때이기도 하고요. 요즘은 이렇게 방문 판매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죠. 그나마 남아 있다면 ‘야쿠르트 아줌마’가 대표적일 거예요. 지금은 전동 카트를 몰면서 ‘프레시 매니저’라는 낯선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베이지색 유니폼을 입고 손수레를 끌거나 각진 가방에다 야쿠르트를 담아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야쿠르트를 팔던 친근한 아주머니였답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화장품이 담긴 가방을 메고 초인종을 누르는 ‘쥬단학 아줌마’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마사지나 팩을 해 주면서 수다도 떨고, 가방에서 예쁜 화장품들을 꺼내 보여주며 매상을 올리던 분이었지요. 놋양푼 아줌마는 이런 특정 기업 소속의 방문판매원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보부상에 가까워 보이는 분이네요.
첫댓글 모깃불, 별
낭만이 있던 그 시절이 까마득하네요
놋양푼 아줌마 같은 사람을 아마도 방물장수라고 불렀지요
언제까지? '눈물 흘리던 그날까지'
정말 가슴이 덜컹하면서도 따뜻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