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를 기다리며 / 오정순
담장 너머로 대광리 역사(驛舍)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기적소리가 울릴 때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기차를 바라보곤 했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이 마치 실타래가 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한 시간에 한 대씩 다니는 기차는 시계나 다름없었다. 알람 같았던 첫차의 기적소리에 잠이 깨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신랑이 다음 기차를 타고 출근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그뿐 아니라 빨래를 삶거나 곰국을 끊이는 등 집안일을 할 때도 기적 소리를 듣고 시간을 가늠했다.
기적소리는 아침과 오후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마다 달랐다. 아침은 그날 해야 할 일에 대한 열의처럼 씩씩함이 넘쳐났다. 오후가 될수록 그 소리는 해그림자처럼 늘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맘때쯤이면 치열했던 오전이 한고비를 넘기면서 행동에 옮기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접어야 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 기적소리는 어둠을 뚫고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하루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그 소리에 나는 다시 저녁 준비로 분주해졌다.
훈련이 잦았던 신랑은 자주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는 막차를 놓치면 몇 집 건너 단 한 대뿐이었던 군전화로 못 들어온다는 연락을 해왔다. 나는 그가 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차를 기다렸다. 막상 기적소리가 멀어져 가면 오히려 차분해졌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것과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끊겼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집주인은 혼자 사는 할머니였다. 할머니 방과 우리 방은 숨소리까지 들리는 작은 마루 사이에 두고 있었다.
"막차구나!"
초저녁잠이 깬 할머니의 혼잣말이 어둠을 헤치고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할머니의 넋두리 속에서 빛이 바래지 않은 기다림을 읽을 수 있었다. 올 사람이 없다면서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그리움이 철썩, 내 가슴에 부서졌다.
"새댁 신랑, 오늘은 못 오는갑다?"
막차 소리가 멀어져 갔을 때 할머니가 마루로 나오며 말했다. 그날따라 달빛이 무척 밝았기 때문일까. 할머니가 당신의 옛날이야기를 주섬주섬 늘어놓았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이었다. 아들이 태어나면서 형편이 피기는커녕 빚은 점점 더 늘어났다. 남편은 입에서 돈, 돈이라는 말이 그치지 않았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날, 남편은 막일이라도 해서 돈을 벌겠다며 첫차를 타고 떠났다. 원수 같은 돈은 그가 간 도시에도 없었다. 몇 군데 거처를 옮긴 남편한테서 뜸하게 오던 소식마저 끊겼다.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삼 년이 흘렀다. 부산에서 남편을 보았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할머니는 아들을 앞세우고 물어물어 찾아갔다. 대문을 밀고 들어가려는데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렸다. 남편이 틀림없었다. 곧이어 젊은 여자와 빨랫줄에 걸린 기저귀를 본 할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고 그길로 돌아섰다.
할머니는 지피는 데가 있어서 아들을 데리고 갔다고 했다. 아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들을 보면 남편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한 가닥 미련을 가졌다며 피식 웃었다. 할머니의 헛헛한 웃음이 담배 연기 속으로 흩어졌다.
할머니는 아들을 위해 몸이 부서지라 일했다. 남정네도 힘에 부치는 품앗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농사일이 없는 겨울에는 식당에서 허드렛일하며 잠시도 일손을 놓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이 돈을 벌겠다며 도시로 가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다고 대드는 아들이 무서웠다. 다음 날, 첫차로 떠나던 아들을 잡을 수 없었다.
총명하고 이재에 밝았던 아들은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큰 슈퍼를 여러 개 가진 사장이라고 했다. 세 들어 있던 육 개월 동안 나는 한 번도 그 아들을 보지 못했다.
대광리 사람들은 첫차의 기적소리로 아침을 열고 막차의 기적소리로 하루를 닫았다. 기차가 가는 길이 그들의 삶의 궤도였으며 세상으로 연결된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다. 희망을 안고 세상에 나갔다. 상처를 안고 돌아오기도 했지만 역사는 가장 먼저 그들을 맞았다. 남아있는 사람들도 꿈이 있었다. 막차가 올 때까지 떠난 사람을 기다려야 했다. 빈 기적만이 울려도 슬퍼하지 않고 질긴 그리움의 터를 일궈야 했다.
처음 대광리역에 내렸을 때, 서울에서 두 시간 거리인데도 내게는 채울 수 없는 공허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며칠 만에 돌아오는 신랑에게 기다림과 외딴섬에 갇힌 분노를 퍼부었다. 다음날 첫차를 타고 서울로 갈 거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나는 떠나지 못했다. 나는 또다시 대광리역을 바라보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나는 아이를 가졌다. 그제야 할머니의 평생 놓지 않았던 그리움의 실체를 알 것만 같았다. 내게도 기차역이 있었다. 지켜야 할 궤도가 있었다. 그리고 막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조금씩 역전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점점 불러오는 몸으로 기차를 타고 연천이나 전곡 장날을 다녔다. 앙증맞게 작은 아기 신발과 허리가 마냥 늘어나는 내 고무줄 치마를 사며 흐뭇해했다. 좌판에 앉아 순대도 먹고 손수레에서 예쁜 머리핀도 골랐다. 그러나 항상 기차 시간을 염두에 두었다. 어느 역에 가더라도 대광리행 기차 시간표는 정확하게 외울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가, 풀렸다가 다시 감기는 실타래처럼 느껴졌다.
반듯하게 뻗어있는 철로를 보면 그 안에 길이 있었다. 이미 철길은 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었고 나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는 소실점마저 희미해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철로는 새로운 시작이 정답처럼 놓여 있었다.
큰아이가 스무 살을 훌쩍 넘긴 지금도 가끔 대광리역 주인집 할머니가 생각난다. 몹시 추웠던 그해 겨울을 외로운 섬 같은 할머니 집에서 보냈다. 할머니는 내가 신랑과 다투는 것을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평생 가슴의 등불을 끄지 않았던 할머니는 사립문을 밀고 들어오는 발자국을 환하게 밝힐 수 있었다. 그 집을 떠날 때, 내 손을 놓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건강히 지내시라고 말했다. 그녀는 너무 늙고 힘들어 보였다. 기적소리처럼 먼 길을 온 할머니, 어느새 막차가 되어 있었다.
첫댓글 글 속 풍경이 잘 그려집니다. 여운이 남습니다.
2011 철도문학상 당선작인데, 주인집 할머니의 막차와 작가의 막차가 잘 오버랩되는 사유가 돋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