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 가기 싫어 아침에 우는 아이
과열 조기교육 시장에 ‘숲유치원’ 눈길…전국 1천208곳
“매달 유치원에 내는 돈이 150만 원이 넘지만 '지금 안 하면 평생 뒤처진다'는 마음에 급히 등록했는데 아이가 아침마다 유치원 가기 싫어 울고, 정작 배운 영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것조차 스트레스받아 하는 모습을 보며 과연 누구를 위한 교육인지 회의감이 들어요.”
최근 영어학원 유치부(영어유치원)에 6세 아이를 보냈다는 이모(39)씨의 말이다.
초등 입학 전부터 사교육과 선행 학습 바람이 불면서 동심이 멍들고 있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24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유아 사교육 참여율은 절반에 가까운 47.6%이며 특히 5세의 경우 무려 81.2%가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세 이하 1만3천241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 2천 원 수준이지만, 이른바 ‘영어유치원’이라 불리는 반일제 이상 유아 영어학원의 비용은 이의 4.7배 수준인 월평균 154만 5천 원에 달했다.
교육부에서 조사한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 결과./ 출처=교육부, 통계청
이처럼 도를 넘은 조기교육열이 사회적 현상으로 감지되는 가운데 아이들에 숲속에서 ‘놀 권리’를 강조하는 유치원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른바 ‘숲유치원’이다.
한국숲유치원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사단법인 설립 인가 이후, 이 협회에 등록돼 ‘숲유치원’의 철학을 지향하는 전국 어린이집은 1천208 곳에 달한다. 서울 경기지역에만 280곳이 있는데 숲유치원은 말 그대로 숲 속에 유치원이 있다기 보다는 “숲이 아이들의 교실이 되게 하라!”는 슬로건 아래 불필요한 학습 교재나 화려한 시설 경쟁 비용 대신, 자연이라는 가장 풍부한 교재에 집중, ‘놀이 중심 교육’을 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를 위해 원생들을 위한 전용숲을 갖추고 있다.
한국숲유치원협회에서 선정한 핵심가치(미션과 비전)./ 출처=한국숲유치원협회 홈페이지
놀이 중심 프로그램을 강조하다보니 이곳을 처음 찾는 학부모들의 모습은 유사하다. 한 숲유치원 관계자에 따르면 “많은 부모님이 첫 방문때는 아이가 학습에서 뒤처지거나 노는 것에만 익숙해질까 봐 걱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숲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 학부모들의 반응은 달라진다. 현직 고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한 학부모는 “유치원 전용 숲과 모래놀이터 등 압도적인 자연 환경은 물론, 교사들이 자발적 연구회를 통해 놀이를 교육으로 확장시키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전했다. “공룡 놀이를 하던 아이가 자연스럽게 화산과 화석 등 과학 지식을 줄줄 읊고,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생활 속 사물에서 한글의 원리를 찾아내는 것을 보며 ‘놀이가 곧 최고의 학습’임을 실감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학부모 역시 “교실에만 갇혀 지낼 때보다 아이의 면역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고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며 만족감을 전했다.
많은 사교육 기관이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학부모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는 ‘불안 마케팅 거품’을 활용한다. 이는 마치 패션 플랫폼의 ‘상시 세일’ 함정과 같다. 높은 불안감을 이용해 고가로 설정된 프로그램을 ‘특별 한정’처럼 포장하여, 학부모들에게 ‘지금 등록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충동적 심리를 유발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학부모들이 교육의 본질적 가치에 집중하고, 불투명한 조기 학습 마케팅에 휘둘리지 않는 현명한 ‘가치 선택’을 할 때, 유아 교육 시장의 가격 거품이 해소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정부와 교육 당국 역시 유아 교육기관의 투명성을 높이고, 놀이 중심 교육이 정착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할 때이다.
아이들에게 가장 이로운 교육은 ‘놀이’이며, 자연환경에서의 놀이를 통해 인지, 정서, 신체 발달의 통합을 추구하는 숲유치원이 앞으로 사회적 조기교육 열풍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영채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