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의 리더십(요한복음 10, 1-6절을 중심으로)
예수님이 태어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사건에 대해 당시 유다의 바리사이들이 격렬하게 반박했던 것은 매우 역설절인 일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에게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9,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이 눈먼 자라는 말이냐며 펄쩍 뛰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아주 의미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9,41).
이 말씀의 본 뜻은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처럼 너희도 눈이 멀었더라면 가난한 마음이 되어 구원을 얻고 눈도 뜨고 메시아도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스스로 본다고 하고 종교 지도자라고 주장하니 구원의 가능성마저 막고 있구나”라는 것입니다.
1)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된 리더십
당시 유다의 바리사이들은 두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 인간적 오만함이었습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느님을 독점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지 인간에게 최대의 위기는 오만함입니다. 뭔가를 이루었기 때문에 그만한 영향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자기 최면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둘째, 종교적 우월감이었습니다. 제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았지만 예수님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의 종교가 무엇이든지 간에 예수님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교회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종교적 우월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유다의 바리사이들은 인간적 오만함에 종교적 우월감까지 더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의 잘못된 종교적 리더십을 보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교회의 잘못된 리더십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 지도자가 누구인가, 리더와 리더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예수님과 바리사이들 사이의 대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회나 사회 혹은 국가가 좋은 지도자를 세우지 못한다면 곧 붕괴하고 맙니다.
2) 하느님 나라의 리더십, 착한 목자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성경에 나타난 리더, 하느님 나라의 리더십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리더십과 하느님 나라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착한 목자’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목자에 대해 많은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시편 23장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당신께서 저의 원수들 앞에서 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고 제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합니다. 저의 한평생 모든 날에 호의와 자애만이 저를 따르리니 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1-6)
하느님은 우리의 목자이시고, 우리는 그분이 기르시는 양들입니다. 목자와 양들의 관계가 하느님 나라의 리더십입니다.
시편 100장에도 비슷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 환호하며 그분 앞으로 나아가라. 너희는 알아라, 주님께서 하느님이심을. 그분께서 우리를 만드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이어라. 감사드리며 그분 문으로 들어가라. 찬양드리며 그분 앞뜰로 들어가라. 그분을 찬송하며 그 이름을 찬미하여라. 주님께서는 선하시고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며 그분의 성실은 대대에 이르신다.”(1-5).
하느님은 인간들을 양 떼로 보고 계십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40장 11절 말씀에도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지도자가 바로 서지 못하면 백성들은 불행해집니다. “목자를 치면 양들은 흩어진다”라는 말은 리더가 사라지면 그 시대에 어둠이 찾아온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13장 20-21절에 “영원한 계약의 피로, 양들의 위대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어 여러분이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우리에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또 베드로의 첫째 서간 5장 3-4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교회의 원로들에게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에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그러면 으뜸 목자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느님 나라의 리더십이란 한 마리 어린 양이라도 잘 인도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신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진정한 리더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양 떼를 치는 것입니다.
착한 목자에 반대되는 개념이 ‘삯꾼 목자’입니다. 세상에 있는 많은 지도자들의 특징은 한마디로 삯꾼 목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위적이며 권력 추구의 성향이 강합니다. 그들이 지도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부, 명예, 권력 등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최고 통수권자나 국회의원 혹은 기업체 사장이 되려고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려고 할 뿐입니다. 이것이 세상 지도자들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착한 목자는 양들을 우리에서 잘 인도해 내어 풀을 먹이고 물가에서 편히 쉬게 하며 보호해 줍니다. 하지만 삯꾼 목자는 양들에게서 젖, 털, 가죽, 고기 등을 얻기 위해 사육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돼지를 잡아먹으려고 먹이를 주고 전염병 예방 주사를 놓아 주지, 돼지를 사랑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잘못된 리더십에 현혹돼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리더십의 전형은 ‘참 목자’입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진정한 리더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양 떼를 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이사 40,11)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