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칼
15cm의 날렵한 단신이다. 눈, 코, 입, 귀도 없고 날카로운 얼굴과 손잡이 뿐이다. 내 이름은 ‘나물칼’이다.
몸뚱이는 무쇠붙이와 손 안에 드는 나무 한 토막으로 단출하게 이루어졌다. 체구는 작지만 무척 단단하다. 무쇠의 뚝심만 믿고 너덜겅도 묵정밭도 마구 찔러대다가, 사기 접시 이빨 나가듯이 예리한 날끝이 부러져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내 몫은 깔축없이 해냈다. 평소 겸손해야 하는데, 목은 무엇이 그리 잘났다고 늘 깁스한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나 혼자서 하는 일은 하나도 없고, 할 수도 없다. 누군가의 손에 붙들려서 함께할 때만 가능하다.
다용도실의 손수건만 한 창으로 들어온 4월의 봄볕이 눈부시다. 바깥 산천이 그립다. 아줌마도 볕살을 퍽 좋아했다. 내 마음을 읽은 듯이 시무룩해 있는 나를 데리고 들녘으로 나섰다. 봄비 그친 산야는 연두색 물감을 수만 통이나 쏟아 부은 듯하다. 아줌마의 후듯한 손에 쥐여서 봄비에 너풀너풀 자란 쑥을 캔다. 오랜만에 개울물을 만난 참붕어가 되었다.
“어! 바람 맛이 다르네?”
전라도의 바람과 경기도의 바람은 맛과 향이 확연히 다르다. 고향 여자만(汝自灣)의 들녘은 어디를 가도 짭조름한 갯바람이 살랑거린다. 그런데 이곳 용인의 산골바람은 달보드레한 수액 냄새가 더 진하다. 감칠맛이 난다.
아줌마는 나와 함께 쑥을 캐다가 오래전에 고향에서 살던 때가 떠오르는지, 내게 자분자분 묻는다. 할머니를 처음에 어디서 어떻게 만났느냐는 둥.
처음에 나는 아줌마의 시어머니인 시골 할머니와 단짝이었다. 요즘 며느리들은 시댁이 싫어서 시금치도 먹지 않는다는데, 우리 아줌마는 다른 것 같다.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할 때, 어지간한 세간은 버리지 않았다. 대를 물려오던 놋그릇, 놋수저, 스테인리스 그릇들과 그 외에도 손두부 만들 때 사용하던 맷돌, 막걸리 거를 때 받치던 쳇다리 등을 차곡차곡 챙겼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볼품없는 나까지 세간들 틈에 찡겨주었다. 일어나지 않은 불행을 가정해선 안 되겠지만, 하마터면 고물상의 고철 더미 속에서 굴러다닐 신세가 아니었던가? 아줌마에게 갚을 길 없는 빚을 진 것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순천시의 아랫장터에 있는 ‘남해대장간’이다. 가끔식 그곳 대장간 아저씨가 보고 싶다. 나의 탯자리는 그 대장간의 좌장 같은 모루 위이다. 아저씨는 조개탄의 잉걸불에 자그마한 쇳덩이를 넣어 달구었다. 불을 함빡 머금은 쇳덩이는 흡사 화산이 폭발할 때 흘러내리는 벌건 마그마 같았다. 아저씨는 그것을 모루 위에 놓고 쇠망치로 두들기며 내 몸의 형태를 잡아갔다. 마치 조각가가 돌의 생김새를 보고 그 안에 숨어 있는 형상을 떠올리며 작품을 빚어내듯이.
들머슴 같은 아저씨는 솥뚜껑만 한 손바닥에 침을 탁 뱉는다. 그러고는 싹싹 비비고 쇠망치의 손잡이를 옴짝달싹 못하게 움켜쥔다. 입을 앙다물고 망치를 수없이 들어 올리고 불을 물고 있는 쇳덩이를 담금질하여 나를 빚어냈다. 모진 세상 살아가면서 내 깜냥을 다하라며, 얼굴엔 파랗게 날도 세워주었다. 손잡이에는 짤막한 원기둥 모양의 나무 손잡이를 끼웠다. 드디어 아리잠직한 무쇠나물칼이 태어나는 순간이다. 무쇠와 나무조각.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가 내 작은 몸에서도 이루어진 것이다.
‘만용은 금물이다.’라고 모루 위에서 내려올 때 아저씨가 내 귀에 대고 이른 말이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칼들이 새겨들을 말이다. 영장이라고 우쭐대는 사람도 그렇다.
그날은 순천 아랫장날이었다. 선배 연장들과 함께 진열대 위에서 사람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날 아줌마의 시어머니는 매초롬한 나를 간택하여 흥정을 마쳤다. 그러구러 한식구가 된 지 10여 년. 어느 날 그만 정들었던 나를 남겨두고 할머니는 먼 나라로 떠났다. 그 후에 지금의 아줌마를 따라서 용인의 산골까지 온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인연에서 우연은 없다지만, 한낱 무생물인 나와 아줌마의 인연도 그에 못지않은 것 같다.
그런데 자식 생각하는 어머니 마음은 세대와 세월을 초월해서 하나로 통하는 것 같다. 시골 할머니랑 나물을 캘 때, 바구니에는 항상 할머니의 기도 말이 나물보다 더 수북했다. 그때 할머니는 ‘하나님, 그저 칠 남매 자녀들 건강하게 해줍소사!’ 하고 빌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쑥을 캐는 아줌마도 할머니하고 똑같다. 고부가 어쩜 이렇게도 쏙 빼 닮았을까? 쑥 한 모숨 캘 때마다 딸들과 손주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기원하고 있으니…. 나는 생각 없는 무쇠칼로 태어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죽도록 자식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니.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이제는 행색이 남루해졌다. 어금니와 앞니가 듬성듬성 빠졌다. 그리고 얼굴에는 진갈색 녹이 돌아가신 할머니 얼굴의 검버섯처럼 피어 있다. 그대로 방치할 아줌마가 아니다. 어느 날 나를 이빨이 무디어진 호미 언니 셋과 함께 수원의 지동시장 대장간으로 데려갔다. 대장간은 사람으로 치자면 우리 연장들의 종합병원이다. 우리들은 죽기보다 싫은 그 잉걸불 풀무에 다시 들었다. 소름 돋게 무서웠지만 중환자가 외과의사의 메스에 몸을 맡기듯이, 눈 딱 감고 수술대 같은 모루 위에 벌겋게 불 먹은 몸을 뉘었다.
끝이 부러지고, 이가 숭숭 빠지고, 검버섯투성이였던 나는 완벽하게 성형 수술을 마쳤다. 멀쩡해진 나를 보고 아줌마는 배꽃처럼 하얗게 웃는다. 내가 나를 보아도 앞태, 뒤태가 그만이다. 오늘 아줌마 손에 잡혀서 쑥을 캐는데, 연둣빛 산천이 모두 내 것인 양 낙낙하다.
“내 생애 2막이 이렇게 열릴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