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기억하라 2.
신앙인에게 죽음이란 그저 엄숙한 경고판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된 희망을 뜻합니다. 복된 희망이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항상 아쉬움과 미련이 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체험하는 아름답고 보람 있는 시간은 그저 순간에 그칩니다. 그 순간을 붙잡아 두고 싶지만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흘러가 버리고 맙니다. 꽃과 같은 젊음은 안타깝게도 너무 짧게 머물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죽은 다음에 영원 자체이신 하느님과 함께하면서 이 아름다운 순간들이 지나가지 않고 영원히 계속될 것을 희망하고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이 고백하는, 육신의 부활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영원히 간지가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한 인간이 걸어 온 인생 도정을 당신 안에 영원히 간직하십니다. 그러기에 좋았던 시간들을 잡아 두려고 그렇게까지 애를 쓰고 안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젊음을 어떻게 해서든 잡아 두려고 무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최고의 순간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가는 것을 담담하게 지켜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세상에는 억울하고 슬픈 일이 수없이 많습니다. 어떤 때는 왜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크나큰 슬픔을 삭여야 합니다. 예를 들면 불치병으로 어린 자식을 잃은 부모의 처지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상황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이생을 마친 후에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을, 고통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는 곳으로 이끌어 주실 것을 믿고 희망합니다.(묵시 21,4) 그러기에 바다와 같이 깊고 끝이 없어 보이는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완전히 낙담하거나 자신을 포기하는 일이 없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집니다. 또 많은 일을 체험하고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중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은 얼마 안 되고, 이것이 과연 나와 내 인생에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남깁니다. 그 의문은 수비게 풀리지 않아서 헝클어진 실타레를 마주한 듯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죽은 다음에 세상에서 체험했던 만남과 이별, 겪었던 사건과의 의미가 제대로 밝혀질 것을 믿고 희망합니다. 마치 헤아릴 수 없는 유리 조각이 모여서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형성하듯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자신이 만나고 겪는 것의 의미를 당장에 다 파악하지 못한다 해도 인내하고 기다릴 줄 압니다. 한마디로 죽음 다음에 부활이 있기에 우리는 복된 희망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아쉬움이나 고통, 슬픔, 답답함은 모든 것을 이겨 내는 힘이 됩니다.
모든 희망을 물질이나 명예 등 현세의 것에만 두려고 한다면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죽음이 두려울 수밖에 없고, 죽음을 피하려고 발버둥치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자신의 삶이 이 현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까지 이어진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내세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성실하게, 그러면서도 담담하고 여유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신앙인은 어느 유행가의 가사처럼 인생이 미완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생이 쓰다가 마는 편지, 그리다 마는 그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곱게 편지를 쓰고 아름답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미완성의 인생이 하느님 안에서 완성될 것을 희망하고 믿기 때문입니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사람을 무지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가을에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서 죽음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 또한 무지한 사람입니다. 11월 위령성월에 세상을 떠난 우리의 부모, 친척, 친지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은덕에 감사하고, 억울하게 죽어 간 이들을 기억하며 내게 주어진 숙제가 무엇인지를 마음에 새겨 보면 좋겠습니다.
또한 앞으로 다가올 나의 죽음을 생각하며 좀 더 알차게 살고자 다짐하고 복된 희망을 간직하도록 힘쓰면 좋겠습니다. 머리빗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다듬듯이 나와 다른 이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흩어진 삶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