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울에 던진 대사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영화 속에 나오는 대사를 따라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거울 앞에 서서 마치 나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인 양 목소리를 한껏 깔고 양미간을 좁히며 속눈썹을 살짝 떨면 준비가 다 된 것입니다. 없는 카리스마를 눈빛으로 나타내려니 조금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은근히 재미있습니다.
“별거 아니야. 이제야 비결을 알았어. 남이 되려 하기보다 나 자신이 되는 것야.”
코미디 영화 <우디의 청춘>을 보고 나서 거울을 들여다보며 던져봤던 대사입니다. 너무 목에 힘을 줬는지 어째 꼭 신성일-엄앵란 시대의 영화 냄새가 살짝 나긴 했지만 감동이 찌르르 왔습니다.
남자다운 매력이 없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내내 자신의 우상인 험프리 보가트처럼 매력적인 남자가 되기 위해 몸부림쳤던 우디 알렌. 왜소한 키에 수다스럽고 소심하기까지 한 그는 말하고 웃고, 여자에게 접근하는 방식 등 모든 것을 험프리 보가트처럼 합니다. 하지만 결국 원숭이 흉내 내기를 통해 깨달은 건, 진정한 매력은 ‘남 따라 하기’가 아니라 ‘자신에게 침잠하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도 거울을 들여다보며 그 대사를 자꾸만 되뇌고 싶은 건 그 대사가 거울 속의 나를 향해 날아가 내 거짓 가면에 조금씩 흠집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의 흉내만 내며 살다 어느덧 내 얼굴 위에 두텁게 쌓인 공허한 껍질들…. 그래서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으로 이지러진 내 얼굴.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처럼 잔뜩 얼굴에 힘을 주고 눈을 부릅뜨면 그 껍질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싶어, 나는 어둠 속에서 여전히 그 대사를 마법의 주문처럼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려 봅니다. 그래서 눈가의 주름과 흰머리가 결코 감추어야 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사랑해야 할 나 자신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