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에 꽃이 피다
kch_35@hanmail.net 강철수
“고목에 꽃이 피었다.”
수필집 《거실 깊숙이 살굿빛 노을이》에 대한 친구의 덕담이다. 70대 중반에 《내 마음속의 해와 달》을 내고는 죽은 듯 꿈쩍 않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90대에 턱걸이하고서야 두 번째 수필집을 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잎새 하나 제대로 내밀지 못하던 고목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얼마나 아등바등 안간힘을 썼을까.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부르쥐었다. 즐겨 보는 야구 중계도 칼같이 끊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깜깜 새벽인 세 시 반이나 네 시에 일어나 자판 위에 손을 얹었다. 콕콕 무논에 모를 심듯 한 글자, 한 어절에 공을 들였다. 코로나 팬데믹 탓도 있었지만 삼 년여 동안 바깥출입을 끊다시피 했다. 조선시대 임금에게 죄를 얻어 천 리 변방에서 귀양살이가 이러지 않았을까.
새벽에서 새벽으로, 드디어 서른다섯 편의 작품을 완성했다. 이 정도 분량이면 어엿한 수필집 한 권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뿌듯했다. 양 볼을 토닥여 스스로 추어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 편은 퇴고 과정에서 밀려났다. 대신 첫 번째 수필집에서 세 편을 옮겨 왔다. 그 중 〈아들에게 주는 송별사〉와 〈그해 여름의 어느 날〉은 한국 현대사의 귀중한 사료가 될지도 모른다 싶었다.
목 빼고 기다린 지 한 달여 만에 출판사에서 책이 왔다. 우아! 아담한 책이 손바닥에 착 감기었다. 스승이 그린 표지는 총천연색이 아닌가. 살굿빛 노을과 그걸 바라보는 노부부의 뒷모습…. 장정이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고운 한복에 족두리를 쓴 신부 같다고 해야 할까. 함박만 해진 입을 애써 다물고 발송 작업에 들어갔다.
고이 기른 딸 시집보내듯 정성을 다했다. 인연이 깊은 360여 분에게는 친필로 받는 분 성함을 적고 기명날인한 예쁜 카드를, 여타 분들에게는 역시 친필로 ‘손잡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드립니다.’ 에 기명날인한 한지 글쪽지를 면지에 붙였다. 치장 없이 민얼굴로 보낸 책은 한 권도 없었다. 낙관 도장을 장만하느라 거금(?)을 들였고 사인 글씨 연습하느라 생긴 파지가 산을 이루었다.
1,700여 부 중 1,200여 부는 글 동네 문사들에게, 300부 정도는 일반 지인에게 보냈다. 나머지 200여 부는 집으로 가져왔다.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명함 대신 그걸 내밀 생각이다. 하늘의 별이 되기 전에 그 책이 동이 나면 얼마나 좋을까. 흐흐, 나이 많아지면 욕심도 많아지는 건가.
4년 동안 문예지 발행인을 역임해서인지 많은 사람에게서 격려가 쇄도했다. 손 편지가 수십 통에 이르고 전자메일은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카톡 문자는 셀 수도 없을 정도고 전화도 자주 울렸다. 축하 화분 또는 과일이나 과자 같은 선물을 보내준 분도 있었다. 그 고마움에 답하느라 6월 한 달 동안은 식사를 제때 못할 정도였다. 설렁설렁 대충 답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하처럼 긴 전화에도 맞장구를 쳐주고, 전자메일이나 카톡 문자에도 마음을 다해 답글을 썼다. 특히 발행인 때 인연 맺은 사람들에게는 ‘발행인 시절에 도와주신 고마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문구를 꼭 삽입했다.
격려 말씀 중에 가장 많은 구절은 ‘구순을 축하합니다’였다. 고령에 수필집을 내는 게 예삿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다음으로는 ‘글이 좋다.’, ‘단숨에 다 읽었다.’ 같은 덕담들이었다. 좀 생뚱맞다 싶은 말씀도 있었다. 우리 부부가 서로 안아 들이는 모습을 두고 ‘노령의 로맨스!’라 추켜세웠다. 고맙지만 그건 아니지 싶다. 백발에 약봉지 달고 사는 서로에 대한 연민이 아닐까. 세파를 함께 헤쳐 온 전우(戰友)에 대한 고마움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용기를 주는 말씀도 여럿 있었다. 서문에서 ‘평자들은 문학성이 부족하다고들 한다.’에 관해서였다. 특히 평소에 존경해 마지않던 P 선생님의 글은 움츠렸던 내 어깨를 쫙 펴지게 했다.
“문학성이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그분들이 문학의 진정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살이는 모두 소소한 일상을 살면서 울고 웃는 여정입니다. 그 평범한 일상의 단면들을 과장도 미화도 없이 긍정적인 시각으로 쓰신 선생님의 수필이야말로 한 편, 한 편, 공감을 갖게 하는 문학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민망한 말씀도 있었다.
“문단의 큰 별인 작가의 글을 계속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큰 별’ 대신에 ‘작은 별’이라 했으면…, 그래도 낯간지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분 바람에 부응하고자 한다. 새벽에 일어나는 게 몸에 배었는데 글쓰기 말고 다른 할 게 뭐 있겠는가. 방송 예능프로에 ‘놀면 뭐 하니?’가 있다. 놀지 않고 계속 쓸 것이다. 이제 고목은 〈거실 깊숙이 살굿빛 노을이〉를 통해 꽃피우는 지름길을 터득하지 않았는가. 머지않아 이번보다 더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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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회장님, 은근히 걱정했어요.
'보은의 밥상'을 몇 번이나 차리시느라 혹 지치지 않으셨을까....
안부전화는 마음으로만 보냈습니다.
원래 스타들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기에 손 보태지 않아야지 싶어서요.
애 많이 쓰셨어요.
다시 화려한 꽃 한 송이 피워내기를 기대하며...
오랜만의 등장에 반가운 마음으로.....
복희샘,
고맙습니다.
강회장님! 대단하신분인 줄은 알았습니다만 진짜로 대단하십니다. 새벽에 일어나셔서 책한권을 낳으시다니 존경스럽네요.부럽고, 본받고싶어요.비법이 있으시면 은밀히 전수해주실수는 없으실지? 회장님 본받아 저도 두번 째 책을 내고싶은 욕심이생겼습니다.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홍경희 선생님,
반갑습니다.
세 번째 수필집 출판기념회때 홍
선생님을 첫 손님으로 맞이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