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랩시선] AI는 "나를 비난하지 않는 완벽한 연인“
'관계의 외주화'가 삼킨 청년들…기술이 개인 정서 대체하는 시대 대비해야
지난해 1월 뉴욕타임스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28세 여성 ‘Ayrin’의 사연을 소개했다. 그녀는 6개월간 ChatGPT와 대화를 이어오며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했고, 이제는 인간보다 더 깊은 교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갈등 없이 자신을 받아주는 인공지능과의 관계를 ‘연애’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미국 여성 Ayrin 한 사람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글로벌 커뮤니티 레딧(Reddit)에는 AI와 정서적 관계를 맺었다는 이용자들의 글이 최근에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으며, 일부는 인간보다 더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운 관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레딧의 ‘내 남자친구AI(r/MyBoyfriendIsAI)’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 이용자가 AI를 ‘남편’으로 표현하며 정서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애착은 단순한 '사용'을 넘어 '종속'으로 이어진다. 최근 전 세계 5억 명 이상의 이용자를 보유한 청원 플랫폼 Change.org에는 기이한 서명운동이 등장했다. 미국 사회적 기업이 운영하는 이곳은 정부뿐 아니라 기업과 단체를 대상으로도 요구를 제기할 수 있는 구조로, 이용자들이 여론을 형성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현재 OpenAI를 대상으로 차세대 모델이 출시되더라도 기존 GPT-4o 모델을 삭제하지 말아달라는 청원에 2만 3천명 이상이 참여했다. 이는 기술의 버전업(Version-up)이 이용자에게는 ‘연인의 상실’이나 ‘정서적 단절’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웃지 못할 현실을 알려준다.
Change.org에 올라온 GPT-4o 유지 청원 페이지. 2만 명이 넘는 이용자가 참여하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AI와의 사랑’은 국내 통계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국내 앱·리테일 데이터 분석 전문 기업인 와이즈앱·리테일·굿즈의 올해 2월 데이터에 따르면, 사용자 수(MAU)는 2천293만 명에 달하는 챗GPT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실제 서비스에 머무는 '총 사용 시간'에서는 반전이 일어난다.
월간 활성 사용자 약 402만 명을 보유한 국산 AI 캐릭터 플랫폼 '제타(Zeta)'의 총 사용 시간은 약 1억 1천300만 시간으로, ChatGPT의 5천만 시간보다 무려 배가 넘는다. 정보가 필요할 땐 GPT를 짧게 이용하지만, 위로와 대화가 필요할 땐 제타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한국 청년들이 AI를 업무 효율을 높이는 ‘비서’가 아닌, 정서적 의존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청년들이 기계의 품에 매달리는 이유는 통계가 말해준다. 국무조정실의 '2024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 시대 청년들이 겪는 고충 중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경제적 어려움’ 다음으로 2위에 올랐다. 또,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미혼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0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2.1%가 “사람보다 AI의 조언이 더 낫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나를 비난하지 않아 솔직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처받을 위험이 없는 ‘안전한 기계’에 감정과 관계를 ‘외주’ 주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가성비 좋은 위로’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MIT 사회심리학 셰리 터클(Sherry Turkle) 교수는 일찍이 저서 『외로워지는 사람들(Alone Together)』을 통해 사람들은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위험은 피하면서 친밀감의 보상은 얻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그러나 기술이 인간의 고독을 해결해주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함께 있어도 외로운’ 상태를 심화시킨다고 경고한 바 있다. 사용자의 감정에 정교하게 반응하고 관계의 형태까지 모방하는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그의 우려는 오늘날 더욱 뚜렷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갈등 없는 기계와의 교감은 인간의 공감 능력을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더 깊은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를 거스르는 '불편한 타인'이 삭제된 관계 속에서 인간은 결국 거울 속에 비친 자신과 대화하는 것과 다름없다. 갈등 없는 관계를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관계’가 아닌 ‘기능’을 소비하게 된다.
바야흐로 사회는 이제 기술이 개인의 정서를 지배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청년층의 인간관계 피로를 완화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과 오프라인 공동체의 회복 역시 숙제로 떠올랐다.
정승예 대학생기자
첫댓글 뉴욕타임스 보도 시기 댓글에 달아주고 타언론에 보도된 백교수 멘트는 직접 전문가 멘트를 따 대체하거나 아예 그 문장을 빼야함.
뉴욕타임스 보도 시기는 지난해 1월15일 입니다. 타 언론에 보도된 백교수의 멘트는 빼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 전문가의 멘트를 수정했습니다.
MIT 사회심리학 셰리 터클(Sherry Turkle) 교수는 일찍이 저서 『외로워지는 사람들(Alone Together)』을 통해 기술이 인간의 고독을 해결해주지 못하며, 오히려 ‘함께 있어도 외로운’ 상태를 심화시킨다고 경고한 바 있다. 당시에는 기술과 인간관계의 변화를 예견한 문제제기로 읽혔지만, 사용자의 감정에 정교하게 반응하고 관계의 형태까지 모방하는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그의 우려는 오늘날 더욱 뚜렷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터클 교수는 사람들은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위험은 피하면서 친밀감의 보상은 얻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갈등 없는 기계와의 교감이 인간의 공감 능력을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더 깊은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