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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라파의 역사는 말씀과 성령으로부터(겔 47:1-12).
* 시작 기도
주님...사람에게 인정받기 좋아하는 나의 마음이 나로 하여금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게 만들었나이다. 나는 그것으로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누군가 나를 인정해 주고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소리에 나의 전부를 걸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내가 살아 숨 쉬는 이유였습니다.
주님...그런데 그것들은 모두 무너져야만 할 모래 위의 집이요, 벗겨져야만 할 가식덩어리 무화과 옷입니다.
남들 보기에는 화려하고 멋져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그것들이 나를 숨 막히게 만들고 괴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나를 찾고 싶습니다.
다 무너져도, 다 허물어진다 해도 주의 영으로 숨을 쉬고, 주의 말씀으로 양식을 삼으며, 그리스도로 옷 입고 싶나이다.
주님...어린 아이는 벌거벗고 있어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습니다.
똥을 싸서 그것을 밟고 다녀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엄마만 있으면 대 만족입니다.
나도 벌거벗으나 부끄럽지 않은 그런 자로 주님의 품에 살기 원합니다.
내가 무엇을 해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주님 앞에서 기뻐 뛰노는 그런 사람이고 싶나이다.
지금도 살아 있는 주님의 보혈로 나를 덮으사 그것만이 나의 옷이 되게 하소서.
보혈의 옷을 입고 주의 영으로 숨 쉬게 하소서.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오니 극한 방탕에 달음질 하던 자가 그것을 끊고 더 이상 하지 아니하므로 이상히 여겨 비방 당하는 자 되게 하소서.
주님의 보혈의 옷과 그 품으로만 넉넉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겔 47:1-12
제목 : 여호와 라파의 역사는 말씀과 성령으로부터
1. 그 천사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 그 천사가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 나의 묵상
성전 문지방 밑에서 나와 흐르는 물은 성전 맞은편 동쪽을 향하여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에 있는 제단 남쪽으로 흘러갔다.
천사가 손에 줄자를 가지고 500미터를 잰 후에 에스겔에게 그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은 발목에 닿았다.
또 500미터를 잰 후에 건널 때에는 물이 무릎까지 올라왔다.
다시 500미터를 잰 후에 건널 때는 허리까지 차올랐다.
마지막으로 500미터를 잰 후에는 걸어서 건널 수 없고 헤엄을 쳐야만 건널 수 있을 정도로 물이 가득한 강이 되었다.
천사는 에스겔을 데리고 강 언덕으로 올라갔다.
강 좌우편에는 나무가 아주 많았다.
물이 동쪽으로 흘러서 아라바, 즉 요단골짜기로 내려가서 사해바다까지 도달하는데 이 물로 인하여 죽었던 바다가 다시 되살아날 것이다.
이 강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고, 고기가 많아질 것이며, 바닷물이 되살아날 것이다.
강과 바다가 살아나 고기가 많아지므로 그 주변에 어부들이 많아 그물을 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펄과 개펄은 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나 강 가에는 각종 과일나무의 잎이 시들지 않고 열매가 끊이지 않아 달마다 새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런 회복의 역사는 결국 성소를 통하여 나오는 물, 곧 생수 때문이다.
나무에서 얻은 열매는 아주 맛있고, 잎사귀는 약 재료로 쓰일 것이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생수다.
이 생수는 다름 아니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며, 생명을 살리는 물이요 또한 더 이상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는 주님이 주시는 생명수이다.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7:37-39)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곧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주님이 주실 성령이다.
또한 천사가 손에 들고 측량했던 줄자는 말씀을 의미한다.
원래 AD 397년에 정경으로 확정된 성경을 the Canon이라고 하며 이는 ‘자, 尺’ 즉 규범이라는 의미이다.
말씀, 곧 복음이 증거 되는 곳마다 성령과 함께 역사하여 죽었던 땅이 되살아나고, 죽은 바다인 사해가 되살아나며, 그래서 그곳에 물고기가 살아나되 큰 바다 곧 지중해와 같이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되며, 그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그물을 치며 살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영적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다.
말씀과 성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말씀이 없는 성령의 역사는 공허하며 기초가 없이 세워진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으며 날아다니는 겨와 다름 없다.
반대로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말씀은 무익하다.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말씀만 강조하면 무미건조하다.
무색무취에 불과하다.
그래서 물이 없어 간조한 땅에 거북이 등딱지처럼 갈라진 강바닥에 다름 아니다.
마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과 같이 율법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말씀과 성령은 항상 함께한다.
일반적으로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왜 성령의 역사가 없는가?
그것은 성경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고 하면서 그곳에 설교자의 주장과 논리를 집어넣어서 그것이 말씀인양 잘못 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유사신앙이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였다.
그런데 그의 백성들을 남 유다 왕인 르호보암에게 빼앗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여호와를 가장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굳이 예루살렘까지 가지 않아도 되도록 단과 벧엘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 레위지파에서 제사장을 뽑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면 지파를 막론하고 제사장으로 섬길 수 있도록 하였으며, 초막절 절기도 비슷하게 7월 15일이 아니라 8월 15일도 정하여 지키도록 하였다.
절기 및 제사를 담당하는 제사장을 하나님이 정하셨는데 이를 비슷하게 자기 맘대로 정하는 것을 넘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송아지 형상으로 바꿔버린 그 자리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겠는가?
바른 말씀,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며 들려주기 원하시는 말씀이 선포되면 거기에는 주의 영인 성령께서 항상 함께 역사하신다.
우리는 이미 성령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말씀과 성령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오늘 본문처럼 영적 회복의 역사는 일어나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결과를 원한다.
그래서 교회에서조차 눈에 띄는 숫자적 성장과 부흥에 목숨을 건다.
교회에 나가면 자기가 하는 육신의 사업도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병에 든 사람이 교회에 나가서 예수를 믿으면 그 병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결과, 육신적 소망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의 사업이 망할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통하여 그 사람을 더 하나님과 가까이 부르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마치 욥과 같이 말이다.
무엇보다 이 땅에 속한 모든 만물은 쇠락의 법칙에 의하여 사라지고 무너지고 없어지게 되어 있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시는 것은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이 땅에서는 비록 육신적, 세상적으로는 가난하고 병들고 힘든 삶을 살지라도 그것이 진정한 부흥과 회복이 아니라 우리의 영이 살아나는 것이 진정한 부흥이요 회복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 환상은 결코 상징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영생의 삶이요 실제이다.
가난하지만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항상 기뻐하며 그의 영혼은 춤을 출 수 있다.
말기 암에 걸렸을지라도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영생의 소망을 가지면 더 이상 암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
오히려 말씀과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 말기 암을 통제하고 초월하여 날마다 영생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부자라도, 아무리 신체가 건강하더라도 항상 기쁨으로 영생을 누릴 수는 없다.
영생은 물질이나 건강으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로 무상성의 물질이나 건강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항상성인 영생을 주시기 원하신다.
이 영생을 전하는 그 자리가 바로 이런 부흥과 회복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라파(치료, 회복, 되살아남)의 역사가 실제 되는 곳이요, 성도가 한 사람이어도 비굴하지 않으며 낙심하지 않고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몇 달란트를 받았느냐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달란트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느냐에 관심이 있으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자는 그 열매를 남기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자는 하나님을 오해하여 그것을 땅을 파고 감추어 놓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이다.
이전까지 나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자였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많은 숫자를 좋아하시는 줄 알고 교인 숫자 늘리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목회를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정말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는 자요, 한 달란트 받은 자를 책망하신 것처럼, 악하고 게으른 자가 받는 형벌에 처할 수밖에 없는 자였다.
얼굴이 뜨뜻하고 화끈거려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차라리 죽기를 구한다.
죽어서는 천국에 가기를 소망하면서도 이 땅에서는 전혀 영생을 누리지 못하는 자가 바로 나였다.
나는 오늘도 주님의 심판이 아니면 살 수 없다.
하루라도 주의 심판의 칼날이 아니면 나는 내 뜻대로 살아가는 자이기 때문이다.
음란 정욕 술취함 방탕 향락 무법한 우상 숭배 등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했던 나의 삶은 기초부터 무너졌다.
이제는 지나간 때로 족하다.
그리고 나는 극한 방탕에 달음질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이상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그 길로 가지 못한다.
(벧전 4:3-4)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나는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성전이다.
이제 성전된 나의 몸에서부터 주님의 생수, 성령의 샘물이 흘러 나와야 한다.
경건의 모양만 아니라 이제는 경건의 능력을 겸한 생수를 흘러보내서 죽어가는 사해의 고기들을 살린 성전의 생수처럼 복음만 전할 것이다.
나의 말을 곁들이지 않고, 오직 주의 말씀, 생명의 말씀만 전하여 그 안에 생명을 살리는 성령의 역사로 내게 주신 양들이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주신 주님의 사명임을 알기에 나는 이 생수가 끊어지지 않도록 성전으로써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는 정말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모든 것이 되살아나는 회복과 부흥의 역사는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나이다.
나는 그것이 죽어서 가는 천국인 줄 착각하였습니다.
교회에 나가고 예수 믿으면 그런 천국이 내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주님의 뜻도, 주님이 원하시는 것도 아니었음을 고백하나이다.
주님...
이제 나의 주장과 나의 뜻, 나의 생각은 땅 속에 파묻었나이다.
오직 주님의 뜻대로 행하며 성전 된 나를 통하여 생수가 흘러나와 내가 누리는 영생이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되기를 소원합니다.
복음의 생수, 성령의 강, 보혈의 능력은 나를 되살아나게 하였고, 이제 내 주변에 수많은 어부들이 살아나 그물을 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지난 3일간 나 자신을 돌아보며 말씀에 푹 빠져 살게 하심 감사합니다.
주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나를 살리셨나이다.
주님 영광 받으소서.
주의 영광이 내게 임하여 나를 춤추게 하오니 주님과 추는 왈츠는 나와 주님의 기쁨입니다.
주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