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1일 연중 30주간 토요일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7-11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답니다.
정부의 각종 행사를 하거나 교회나 사회단체나 학교에서 어떤 행사를 하게 되면 ‘귀빈석’이거나 ‘내빈석’이라고 쓴 팻말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반드시 꽃을 단 귀한 손님들이 앉습니다. 그 분들이 앉을 자리는 그분들의 비서들이 와서 미리 다 정해 놓습니다. 그래서 우열과 서열을 다 확인하고 윗자리인지 끝자리인지 정해놓기 때문에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를 만드느라고 여간 신경 쓰는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정말 주책없이 자리가 없다고 그런 자리에 앉았다가는 쫓겨 가는 것은 물론이고, 망신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잔치를 해도 로얄(royal)석이라고 해서 차일을 쳐 놓고 볕을 가리기도 하고 음식도 특별히 좋은 음식을 마련해 놓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렇게 만들어놓고 신부님이나 회장님들이 내빈들과 같이 식사하는 조금 높고 좋은 자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 자리의 음식은 조금은 특별합니다. 일반 평신도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 없는 귀한 음식도 차려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일에 아주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합니다. 또 대접을 받는 사람들도 의례 그러려니 하고 지냅니다. 그런 것 가지고 꼬치꼬치 따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관례가 되어버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렇게 초대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초대할 때에는 높고 낮은 사람을 구별하지 말고, 오히려 소외받는 사람들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귀빈이라고 구별되지 않는 사람들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초대해도 초대에 응대할 능력조차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유하지 않아서 보답할 수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억지로 들립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부정부패로 살지 말고 정당하고 올바르게 살라는 것이지 억지로 살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부정하게 사느니 차라리 보답할 수 없는 사람을 초대하라는 것입니다.
명심보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시은물구보 여인물추회 (施恩勿求報 與人勿追悔)
‘은혜를 베풀었거든 보답을 바라지 말고, 남에게 주었거든 뒤이어 후회하지 말라.’라는 말입니다.
은혜를 베풀었으면 은근히 아니면 당연히 보답을 바라고 삽니다. 자식에게도 그렇고, 부부간에도 그렇습니다. 사실 그렇게 바라고 살지 않는다면 재미가 없습니다. 또한 정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도 아니고 집착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보답을 바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대했는데, 네가 나를 이렇게 대하느냐?’는 것은 보답을 바라고 사랑을 베풀었고 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족 간에도 그런데 하물며 남에게는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무엇을 남에게 주었거든 후회하지 말라고 옛 사람들은 말하는 것입니다.
금강경에도 무주상포시(無主相布施)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베풀었다는 생각을 내지 말고 베풀라.’라는 말씀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베풀었다는 생각을 하지도 말라는 말입니다. 나누었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상무념(無想無念)으로 세상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은혜를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사랑의 원천이기 때문에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보답을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야 하느님께서 알고 계시는 것이 더 큰 공로로 기록된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느님만 알고 계시니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당신께서 증인이 되어 주시고, 보증을 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증인이 되고 보증을 서 준다면 하느님께서는 보증을 서 주실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고 말한 것입니다. 정말 소신을 가지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은혜를 숨어서 베푸는 사람들이 됩시다. 아무도 몰라줘도 하느님께서 알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또 알고 계실 것이고, 마땅한 보상을 해 주실 것입니다. 행복해 하십시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1,18ㄴ-26
형제 여러분, 18 가식으로 하든 진실로 하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니,
나는 그 일로 기뻐합니다.
사실 나는 앞으로도 기뻐할 것입니다.
19 여러분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도움으로
이 일이 나에게는 구원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어떠한 경우에도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고,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살든지 죽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21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22 그러나 내가 육신을 입고 살아야 한다면,
나에게는 그것도 보람된 일입니다.
그래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
24 그러나 내가 이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합니다.
25 이러한 확신이 있기에, 여러분의 믿음이 깊어지고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내가 남아 여러분 모두의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26 그리하여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 가면,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할 거리가 나 때문에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축일:10월 31일 소년성인 유대철 베드로 축일
1826-1839(14세)포청옥에서 교수형
1925년 7월 5일 시복.
1984년 5월 6일 시성.
소년 성인 유대철(劉大喆)은 성인 유진길의 아들로 어려서 아버지의 모범과 가르침을 받아 입교하여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성 유진길아우구스티노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하는 서울의 유명한 역관(譯官) 중인 집안 이었다. 천주교에 대해 적대시하고 방해하는 어머니와 누나에게 끊임없는 괴로움을 당했는데, 그때 마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을 보여주었으나 신앙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았으며, 어머니와 누나를 위해 항상 기도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많은 교우들의 순교사실과 아버지의 체포소식을 듣고 순교하기로 결심하여 자수하였다.
재판관들은 어린 소년을 배교시키기 위해 천만 가지 방법을 다 사용하였지만, 소년 유베드로의 마음은 변치 않았으며, 배교시키기 위한 갖은 방법에도 변함없이 오히려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어 형리들을 놀라게 하였다.
어린 나이로 견디기 어려운 혹형과 고문을 이겨냈다.
허벅지의 살을 뜯어내며 "이래도 천주주교를 믿겠느냐?"하고 으름장을 놓는 형리에게 "믿고말고요. 그렇게 한다고 제가 하느님을 버릴 줄 아세요?"라고 대답했다. 화가 난 형리가 다시 시뻘건 숯덩이를 입에 넣으려 하자 "자요"하고 입을 크게 벌려 형리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처럼 견디기 어려운 형벌과 매질로 늘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항상 만족스럽고 평화로운 표정을 띠었다.
관원들은 어린 소년을 공공연하게 죽이면 군중이 반발할까 두려워
1839년 10월 31일, 형리들을 옥 안으로 들여보내 상처투성이가 된 그 가련한 작은 몸뚱이를 움켜잡고 목에 노끈을 잡아매어 죽이도록 하였다.
가장 어린 순교 소년 유대철은 아버지와 함께 순교하여, 우리 민족의 모든 어린이들의 신앙적인 모범이 되었다. 이때의 나이는 14세 이었다.
오늘 축일을 맞는 대철 베드로 형제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축일:10월31일 성 볼프강 주교
St. Wokfgan
ST. WOLFGANG
San Volfango di Ratisbona Vescovo
924 in Swabia -
31 October 994 at Pupping, Linz (Austria)
Canonized :1052 by Pope Leo IX
스바비아 가문의 후손인 성 볼프강은 라이키난 대수도원과 비르쯔부르그에서 수학하였고,
그의 친구인 헨리꼬와 더불어 비르쯔부르그와 트리엘의 대성당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의 친구인 헨리꼬는 956년에 트리엘 대주교로 봉사하였으나, 964년에 서거하였다.
그 후 볼프강은 아인지델른(오스트리아)에서 베네딕또회원이 되었는데, 그는 그곳의 수도원 학교장이 되었다. 그는 971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판노니아의 마갸르인들에게 선교활동을 하던 중, 972년에 레젠스부르그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즉시 교구 내의 성직자와 수도원 개혁을 단행하는 한편, 여러 지역을 다니며 선교활동에 직접 관여하고 설교하였으며,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적으로 증거하여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수차에 걸쳐 교구를 떠나 은수자로 살려고 시도하였지만, 번번히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는 황제를 수행하여 프랑스를 여행하였고, 바바리아의 아들인 헨리꼬 공작(성 헨리코2세)의 개인교수로도 활약하였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린즈 교외 푸핑겐에서 서거하였고, 1052년에 시성되었다.
오스트리아의 황제와 많은 귀족들은 그가 수많은 기적을 하는 것을 불신했으나 큰 기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다고 하며, 주교로써 겸허한 삶을 살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었고 살아 생전에도 이미 성인으로 존경을 받으셨다고 한다.
오늘 축일을 맞는 볼프강 형제들에게도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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