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눈과 고라니
원당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바람조차 건들지 않은 숫눈이
고봉밥처럼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눈을
숫눈이라고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만약 처녀눈이라고 했다면
하얀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참을 내려오니 마을이 보였다
눈 위에 발자국도 찍혀 있다
사람 발자국은 아닌듯하고
고라니 발자국 같기도 한 것이
창고처럼 생긴 건물 앞에서 멈춰 있었다
배가 고픈 고라니는 산을 내려와
창고 앞에서 서성이다 갔을 것이다
첫댓글 언제부터
눈오는 날이면
따스한 골방을 찾아
숨어 드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런 눈에 발자국을
본 다는 것은
큰 용기가 되었다
눈 위에 난 발자국을 본다는 것은
아득한 일
더구나 숫눈을 본다는 것이
이생에서 타당한 일일지 싶은 생각이다
숫눈을 보지 않고 숫눈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한 편의 시네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