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말․ 말
임 진 옥
1. 장터
구포 장날이다.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붐빈다. 잔칫집 같다. 움직일 때마다 어깨가 서로 부딪히는 걸 피해 변두리로 간다. 노인들이 옹기종기 앉아 푸성귀를 펼쳐놓고 있다. 더러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며 채소를 들어 보이기도 한다.
“할머니 이거 밭에서 키운 것 맞지요?”
키가 훤칠하고 싹싹해 보이는 젊은 여자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묻는다. 노인은 ‘오늘 아침 일찍 잘라 온 것’이니 걱정 말고 가져가라며 부추를 한 줌 더 덤으로 준다.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는 노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부추를 담은 비닐봉지를 흔들며 여자가 저만치 멀어지자, 옆자리에 앉아 상추를 파는 노인이 ‘흥’ 콧방귀를 뀌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부추가 밭에서 나지 하늘에서 나오는가.”
“젊은 사람 말은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게 아닌가 하고 묻는 것이제.” 별소리를 다 듣겠다며 노인이 입을 샐쭉거린다.
이래저래 장터 온도가 2도 쯤 높아진다.
2. 주차장
친구가 구청에 볼일 보러 갔다가 사고를 냈다. 주차 공간이 좁다 싶었는데 노련한 운전 솜씨를 믿고 차를 밀어 넣었다. 아뿔싸! 옆에 주차된 BMW 한 귀퉁이를 긁고 말았다. 차를 빼서 반대편에 세워놓고 긁힌 차 앞으로 갔다. 그새 주인이 와서 자동차 앞과 옆, 뒤를 살피고 있었다. 딸 뻘로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미안합니다. 조심했어야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네요. 최대한 불편 없이 해드리겠습니다.”
BMW 주인은 차 앞에 팔짱을 끼고 서서 친구의 매무새를 쓱 훑어보았다. 친구는 파마기 없는 희끗희끗한 커트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다. 헐렁한 고무줄 바지에 면 셔츠를 입고 있었다.
“아주머니, 이차, ‘외․제․차’인 거 아시죠?”
어린아이에게 윽박지르듯이 또박또박 외제차란 발음에 잔뜩 힘을 주어 말했다.
“아! 예 알고 있습니다. 저기 있는 제 차도 벤츠입니다.”
순간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팔짱을 풀고 친구를 쳐다보았다.
“선생님, 보험은 … .”
그녀의 말꼬리가 풀어졌다.
3. 목욕탕
따끈따끈한 물에 몸을 푹 담그니 피로가 스르르 빠져나간다. 저절로 눈이 감긴다. 그때였다.
“아까븐 물을 이렇게 넘기면 우짜노!”
할머니 한 분이 욕조 앞에서 커다란 눈을 부라리며 금방이라도 물을 한 바가지 끼얹을 태세다.
물에 때가 둥둥 뜨고 미지근해서 새 물을 좀 받으니 불편하시면 옆에 온 탕을 쓰시라고 했다. 순간 할머니가 큰 눈을 더 크게 치뜨고 수도꼭지를 휙 돌리며 한마디 더 보탠다.
“나물 데칠 일이 있나?”
쿡! 마주 보고 웃을 수는 없는 일이라 얼른 고개를 돌린다. 머리 감을 때도 웃음이 나와서 샴푸가 코로 들어가는 수난을 겪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데치다’란 낱말이 입가에 뱅뱅 돈다.
4. 지하철
오후 2시의 지하철 안이다. 실내는 조용하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핸드폰을 앞에 모시고 기도하듯 들여다보고 있다. 갑자기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시선을 끈다.
“나라가 잘 되려면 투표를 잘해야 돼. 아무나 꾹꾹 누르면 나라가 ‘개판’이 된다고. 안 그렇소?”
다리를 쩍 벌린 남자는 무릎을 툭툭 치며 주위를 빙 둘러본다. 그는 체크무늬 셔츠에 통이 넓은 코르덴바지를 입은 늙수그레한 남자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뒤로 넘겨 한데 묶어서 얌전해 보이는데 입은 거칠다. 누구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한 대 칠 것 같다. 자칫하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듯 곁눈으로 남자를 살피며 못 들은 척한다.
“아저씨요, 나라 걱정 너무 하지 말고 아저씨 걱정 단디 하이소. 얼마나 정신이 없으면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나옵니까.”
맞은편에 앉은 아주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분위기를 깬다. 그러고 보니 색깔은 비슷한데 이쪽저쪽 운동화 모양이 다르다. 일제히 사람들의 눈길이 말한다.
‘너나 잘해!’
첫댓글 한 편 한 편의 짧은 글이 한 점 한 점의 소묘를 보듯
재미있고 사람 냄새 풀풀 납니다. ㅎㅎㅎ
사람 냄새 폴폴 나는 임진옥 선생님의 수필집 ㅡ주름도 웃는다♡♡♡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