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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의 노래 / 김현주
갑옷도 투구도 없이 전장으로 오는 장수
식당 문 왈칵 열며 "칼 좀 가소, 칼 갈아요"
허리춤 걷어 올린 채 이미 반쯤 점령했다
무딘 삶도 갈아준다, 너스레를 떨면서
은근슬쩍 걸터앉아 서걱서걱 칼을 민다
삼엄한 적군을 겨누듯 눈은 더욱 빛나고
칼끝을 가늠하는 거친 손이 뭉텅해도
날마다 무림고원 시장골목 전쟁터에서
비릿한 오늘 하루를 토막 내는 시늉이다
적군이 퇴각하듯 자꾸만 허방 짚는
가장의 두 어깨가 칼집처럼 어둑해도
생의 끈 날을 세우며 바투 겨눈 하늘 한 쪽
(심사평)
400여 편 면면히 살펴 읽었다. 얼마나 신선한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심사하는
내내 설레었다. 정형성과 시적 승화의 절묘한 조화를 요구하는 시조이다. 정형
의 바다에 풋풋한 언어로 출렁이는 싱그러운 작품을 기대하는 마음이 신춘시
조 응모 작품에 더욱 뜨거운 열망으로 솟는다. 모호한 비유, 묵은 고정관념으
로 그린 작품들을 우선 내려놓았다. 이미 많이 다루어진 흔한 소재와 주제들
은 비록 현실에 기초를 두어도 더 이상 시선을 끌지 못했다. 제목의 평이함으
로 내용을 살리지 못한 작품이 더러 있어 아쉬웠다. 한 문장을 삼행으로 나누
어 놓은 듯한 작품도 의외로 많았다. 시조에 있어 장의 독립성과 유기적 구성
을 알고 시조창작에 임해야 할 것이다.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낡은 하루'
'종마, 아버지란 말' '곡선의 힘' '무사의 노래' 네 편이었다. '낡은 하루' '종
마, 아버지란 말'은 치열하게 삶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발목을 붙든
다. 직설적인 데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무겁다. 마지막까지 '곡선의 힘'
'무사의 노래'를 두고 고심했다. '곡선의 힘'은 네 수가 적절한 비유와 유기
적인 구성으로 주제를 선명히 이미지화하고 있다. 한 마디로 노련하다. '무
사의 노래'는 칼 가는 사람을 갑옷도 투구도 없는 장수로 환치해 오늘의 우리
가장을 표현한 작품이다. 작품 전체에 긴장과 이완이 적절히 배치되어 시선
을 붙드는 데 성공한다. 미소를 자아낼 만큼 긍정적이다. 그러면서도 신선하
다. 노련함보다 패기와 발전 가능성에 방점을 두었다. '무사의 노래'를 당선
작으로 민다. 시조단의 새 힘이 되길 바라며 축하한다.
(심사위원 전연희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