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아픈 게 낫다”…패션처럼 유행하는 ‘ADHD 자가 의심’
20대 52명중 절반 “내 문제가 ‘병’ 때문이니 마음 편해질 것”
“혹시 ADHD 아니야?” 요즘 주변이나 SNS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2023년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진료 인원은 20만 명을 돌파했다. 5년 사이 178.3%라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결과이다.
하지만 이 기록적인 수치 못지 않게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실제 병원에서 진단을 받기 전부터 이미 스스로를 “ADHD”라 자가 진단하며 오히려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청년들이다.
이런 심리의 배경에는 소셜 미디어가 있다. 기자가 이달 20대 청년 52명에 물어보니, 유튜브나 SNS에서 ‘ADHD 특징’ 관련 콘텐츠를 접한 적이 있다는 이가 무려 48명(92.3%)이나 됐다. 이중에서 5명을 제외한 43명이 콘텐츠 시청 후 “나도 ADHD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응답자들이 스스로 ADHD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정보를 검색하러 인터넷에 접속했다가 목적을 잊음”, “카페 영수증을 가만히 두지 못함”, “이름 외우기가 힘듦” 등 누구나 겪을 법한 내용들이었다. 이는 한마디로 정신질환으로서의 ADHD 자체가 아니라, 스스로 그 병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전염병처럼 도는 모양새다.
이런 현상에는 잘못된 정보들이 온라인상에 떠도는 것도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연구팀이 틱톡 내 ADHD 관련 영상 100개를 분석한 결과, 52%가 의학적으로 부정확한 정보를 포함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증되지 않은 알고리즘 정보가 일시적인 집중력 저하를 질병으로 오인하게 만들 소지가 큰 셈이다.
최근 온라인상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을 두고 ‘패션 ADHD’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패션 ADHD는 마치 패션 상품을 몸에 걸치듯, 질병을 하나의 유행이나 개성처럼 소비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엄연한 정신질환인 ADHD가 고통의 대상이 아닌, 관심을 끌거나 자기합리화를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ADHD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는 사뭇 흥미롭다. “ADHD 진단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라는 질문을 52명에 물어보니 26명(50%)이 “차라리 내 문제가 ‘병’ 때문임이 확실해져서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약 처방을 통한 수행 능력 향상을 기대한다는 응답이 14명(26%), SNS 속 ADHD 커뮤니티에 대한 소속감을 느낄 것 같다는 답변이 5명(9%)으로 뒤를 이었다.반면 환자라는 사실에 충격이나 우울을 느낄 것 같다는 응답은 겨우 2명(4%)에 불과했다.
대학생 이모(21)씨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스스로 ADHD를 의심해 왔다. “친하고 자주 만나는 친구들에게 ‘너 ADHD 같아, 병원에 가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이씨는 ADHD라고 생각하게 된 이후에 자신의 실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전보다 덜 공격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씨는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예전에는 단순히 ‘왜 이렇게 덜렁거릴까’라며 자책했다면, 지금은 ‘내가 이런 성향이 있지’라고 생각하고 어느 정도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대학생 김모(22)씨는 일상에서 반복되는 실수를 이유로 스스로 ADHD를 확신하게 된 사례다. 김씨는 “지난 학기에 전공 시험 시간을 착각해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며 “평소에도 과제나 약속 시간을 착각하거나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잦았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덜렁대는 성격 탓이라기엔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너무 잦었다”며, “병으로 모든 실수의 이유를 찾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에게 ADHD라는 병명은 자책을 멈추게 하는 일종의 수단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의지 문제가 아닌 의학적 원인으로 설명함으로써 심리적 안도감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안도감은 역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을 낳기도 한다. 실수의 원인을 환경이나 노력이 아닌 교정 불가능한 성향으로 받아들일 경우, 스스로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약화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병용 교수는 ‘패션 ADHD’를 병적인 결함보다는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해석했다. 이 교수는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ADHD라는 용어를 방어기제나 유머로 사용하는 측면이 있다”며 “정보 전환이 빠른 현대 사회에서 집중력 저하는 회복해야 할 결함이라기보다 하나의 시대적 특성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나도 빈틈이 있는 사람임을 표현함으로써 친근함을 표시하는 것일 수 있다”며 “이런 경우라면 굳이 회복해야 할 결함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제 고통을 겪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교수는 ADHD의 결정적 진단 기준으로 ‘증상의 지속성’과 ‘발현 시점’을 꼽았다. 그는 “ADHD는 성인기에 갑자기 발생하는 질환이 아니라 소아기부터 이어진 문제가 뒤늦게 발견되는 것”이라며, “성인기에 집중력 저하가 시작됐다면 우울증 등 다른 기분 장애나 디지털 기기 과사용 같은 환경적 요인을 먼저 의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불편함이 크다면 검사를 통해 의지 부족이라는 자책에서 벗어나 명확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희원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