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려움과 싸우며 전진하라
그리하여 그 세 사람은 겉옷과 바지와 쓰개와 그 밖의 옷을 입은 채로 묶여서,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져졌다.(3,21)
믿음의 세 친구들은 입던 옷 그대로 묶여 불가마 속으로 던져졌습니다. 눈 깜짝할 순간에 임금의 불같은 진노의 눈길을 받으면서 뜨거운 불가마 속으로 던져질 때 그들은 어떤 심저정이었을까요? 아마도 자신들의 영지에서 갑자기 호출을 받아 바빌론 궁궐 근처까지 왔을 때 이미 이런 사태가 닥칠 거라고 어느 정도 예감했을 것입니다.
임금이 세우고 있는 어마어마한 금 상의 소문은 이미 들었을 터였고, 자신들을 비롯한 전국의 고위 관리들이 낙성식에 불려갔으니 분명히 그것에 절할 것을 요구받을 것이었습니다. 그럴 경우, 그들은 하느님을 믿는 믿음을 타협할 수 없기에 임금과 정면으로 부딪칠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하고 왔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8)
마침내 각지에 떨어져 편지로만 소식을 전하던 세 친구들은 두라 평야에서 오랜만에 해후했음에도 반가움을 표현할 새도 없이 서로 비장한 눈빛을 나눴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앞으로 다가올 운명을 준비하며 각오를 단단히 하고, 눈시울을 적시며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게 해달라고 함께 손을 잡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우리 세 사람, 그동안 잘살아 왔잖아? 어린 나이에 부모, 형제들과 떨어져서 이역만리 타국에 포로로 끌려왔찌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고위 관직에까지 올라서 참 많은 것을 누렸지. 이 음란하고 폭력적인 바빌론 제국 안에서도 우리는 항상 하느님께 기도하며 굳건히 잘 버텨왔어. 떨어져 있었지만 우린 항상 주님 안에서 하나였지. 그런데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 온 것 같아. 우리는 저 금 상에 절대 절할 수 없으니, 무서운 임금이 결코 우리를 살려두지 않겠지. 이제 우리도 하느님 품으로 갈 때가 되었나 보네. 다들 각오를 단단히 하세.”
그러나 단순히 순간의 결심만으로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그대로 행동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막상 현실에 부딪치면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행동하기가 쉽습니다. 안전장치가 구비된 사격장에서 연습하는 것과 실제 전투에서 달려드는 적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가 지난 15년 동안 바빌론에서 관직 생활을 하면서도 성실히 믿음생활을 해 왔다고 믿습니다. 평소에 수없이 갈고 닦은 믿음이 없이는 위기의 순간에 침착하고 담대하게 반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고난의 때보다 성공의 때에 신앙을 지키기가 힘든 법입니다. 세 사람은 그런 면에서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오랫동안 바빌론 최고 관직에 있으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믿음이 흐려질 만도 했을 테고, 예배를 드릴 장소도 없어서 신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 이들은 굳센 신앙을 계속 간직해왔습니다. 날마다 기도하며 하느님과 깊은 친교를 나누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들도 인간인 이상 어찌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믿음은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두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싸우면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모든 믿음의 조상들이 다 100퍼센트 용기와 확신을 갖고 행한 게 아닙니다. 끊임없이 속에서 일어나는 두려움과 싸우면서 전진한 것입니다. 100퍼센트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50퍼센트라도 확신이 있으면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이길 힘을 주십니다.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타국으로 끌려와서 30대까지 운명을 함께 했던 이들은 결박되어 끌려가던 순간에 다시 한 번 이 세상의 성공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탁월했고 성실히 일했기에 오랜 세월 동안 고위직에서 모든 특권을 누리면서 임금과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고 결국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얼굴빛을 바꿀 수 있고, 우리를 버릴 수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1요한 2,15)라고 하신 것이 아닐까요? 허무주의로 살거나 세상에서 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하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거기에 목숨을 걸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나를 떠날 수 있고, 버릴 수 있고, 무너져 버릴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조직이고 인연입니다. 십여 년이 넘게 몸담았던 회사에서 구조 조정을 당한 한 임원의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선후배처럼 친하게 지냈던 상사가 갑자기 불러 사무실로 갔더니, 처음에는 조금 미안해하다가 아주 차갑게 표정이 바뀌더니 다짜고짜 말했다고 합니다.
“김부장,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알다시피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회사 사정이 어렵게 되어 불가피하게 김부장 같은 인재를 내보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머리가 텅 빈 듯했고, 말까지 더듬었습니다. 그러나 상사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김부장의 컴퓨터와 짐은 우리 직원들이 정리해서 집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회사 보안상 김부장이 직접 짐을 정리할 수 없는 걸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대로 바로 집으로 가시면 퇴직금 정산해서 은행 계좌로 넣어드릴 겁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김부장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손으로 허벅지를 꼬집어 보았지만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렇게 상사의 방을 나오는데 이미 직원들은 사태를 다 알고 있는 듯 허둥지둥 그의 시선을 피했습니다. 그중에는 그가 형제처럼 도와주고 밀어주었던 부하들도 있었지만, 이제 그와는 엮이기 싫은 듯 앞다투어 등을 돌렸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청춘을 바치며 일한 회사를 걸어나오면서 그는 한없이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 후 몇 번의 실패 끝에 그는 작은 규모의 가게를 차려서 안정을 되찾았지만 그때의 충격과 배신감을 생각하면 여전히 심장이 떨린다고 했습니다.
김부장이 당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조직이나 사람을 믿지 말고, 오직 하느님만 믿으십시오. 여태까지 내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세상이 하루아침에 나를 죽이려는 존재로 돌변할 때도 하느님께서는 우리 곁에 서서 지켜주십니다.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 내가 너희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 내 의로운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이사 41,10)
세 친구가 믿음 위에 굳게 서서 금 상에 절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이럴 때 신자들은 ‘하느님께서 정말 살아 계시는가? 하느님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가? 나를 도와주실 수 있을까?’라고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을 떨쳐버리고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살면서 항상 시련과 핍박에 부딪칩니다. 때로는 죽음의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있기에 우리의 불순한 믿음이 죽고, 진짜 강하고 순수한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영광이 그 과정에서 우리를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런에 임금의 명령이 급박한 데다가 가마가 매우 뜨거웠으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를 들어 올렸던 사람들이 불꽃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 세 사람은 묶인 채로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떨어졌다.(3,22-23)
일곱 배나 더 달군 불가마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웠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를 묶어서 불속에 던지던 사람들이 불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타 죽을 정도였습니다.
언젠가 이라크에서 근무하다가 귀국한 한 외교관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구약성경의 다니엘을 좋아한 나머지 다니엘 이야기의 주무대인 비빌론 도시가 있던 이라크 중부의 바빌(Babil) 주를 다녀왔다며 놀라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가 금 상을 만들어 세운 두라 평야 근처에 석유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 친구가 떨어진 불가마는 석유가 가득한 구덩이로, 당시에도 영원히 꺼지지 않은 불이라는 신비한 곳이었습니다. 석유가 흐르는 그 불구덩이의 화염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런 불구덩이에서 그들이 살 수 있는 확률은 없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사건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여유롭게 이 사건을 바라보지만 당사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정말 자기들이 다시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폭풍의 바다 위로 떨어지던 요나가 자기가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눈곱만큼도 안 했던 것처럼.
그러나 불시험을 통과하면서 그들은 죽음을 각오한 신앙에서, 죽음보다 강한 신앙으로 점프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모든 희망을 포기한 순간부터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엄청난 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
아멘. 아멘. 아멘.~~
"믿음의 사람들은 살면서 항상
시련과 핍박에 부딪칩니다.
때로는 죽음의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있기에 우리의 불순한 믿음이 죽고,
진짜 강하고 순수한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영광이 그 과정에서 우리를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1요한 2,15)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