梅月堂 金時習(매월당 김시습) 東峰六歌(동봉육가)
동봉(김시습의 호)의 6노래
其一
遊客遊客號東峯(유객유객호동봉) : 나그네여! 동봉이란 이름의 나그네여
鬖髿白髮多龍鍾(삼사백발다용종) : 헝클어진 흰 머리에 초라한 모습
年未弱冠學書劒(연미약관학서검) : 젊어서는 서와 검을 배웠으나
爲人恥作酸儒容(위인치작산유용) : 시큼한 선비 짓을 부끄러워하였기에
一朝家業似雲浮(일조가업사운부) : 하루아침에 가업은 뜬 구름 같아서
波波挈挈誰與從(파파설설수여종) : 허둥허둥 다급히 떠났으나 누구를 따르랴
嗚呼一歌兮歌正悲(오호일가헤가정비) : 아하, 첫 번째 노래 구슬픈 이 노래
蒼蒼者天多無知(창창자천다무지) : 검푸른 저 하늘은 도무지 모르 누나
其二
櫛標櫛標枝多芒(즐표즐표지다망) : 즐률, 가시 많은 즐률 지팡이
扶持跋涉遊四方(부지발섭유사방) : 이걸 의지해 산 넘고 물 건너 사방을 유람해
北窮靺鞨南扶桑(북궁말갈남부상) : 북으로 말갈 남으로 부상까지 노닐었다만
底處可以埋愁腸(저처가이매수장) : 어느 곳에 수심 가득한 창자를 묻으랴
日暮途長我行遠(일모도장아행원) : 해는 저물었건만 내 갈 길은 멀 구나
安得扶搖搏九萬(안득부요박구만) : 회오리 바람타고 구만리 오르면 좋으련만
嗚呼二歌兮歌抑揚(오호이가혜가억양) : 아하, 두 번째 노래 구성진 노래
北風爲我吹凄涼(북풍위아취처량) : 북풍이 얼굴을 때리는 처량한 이 신세
其三
外公外公愛我嬰(외공외공애아영) : 외가의 외조부님 어린 나를 사랑하시어
喜我期月吾伊聲(희아기월오이성) : 내가 돌지나 글읽은 그 소리를 기뻐하셨네.
學立亭亭誨書計(학립정정회서계) : 바로 배워 우뚝하니 글과 셈을 가르치고
七字綴文辭甚麗(칠자철문사심려) : 일곱자 글을 지으니 문체는 매우 아름다웠네.
英廟聞之召丹墀(영묘문지소단지) : 영묘(세종)께서 듣고 붉은 마루에 부르심에
臣筆一揮龍蛟飛(신필일휘용교비) : 제 붓을 한번 휘두르니 용과 교룡이 날았다네.
嗚呼三歌兮歌正遲(오호삼가혜가정지) : 아 ! 세번째를 노래하니 곡은 정말 느리어
志願不遂身世違(지원불수신세위) : 원하는 뜻 이루지 못하고 신세만 어긋났오.
其四
有孃有孃孟氏孃(유양유양맹씨양) : 아가씨도 많고 어머니도 많지만 맹씨 어머님은
哀哀鞠育三遷坊(애애국육삼천방) : 애지중지 사랑으로 길러 집을 세번 옮기셨지요.
使我早學文宣王(사아조학문손왕) : 나로하여금 일찍 문선왕(공자)을 배우라하고
冀將經術回虞唐(기장경술회우당) : 장차 글과 재주로 당우를 돌이키길 바라셨지요.
烏知儒名反相誤(오지유명반상오) : 어찌 알리오 선비의 이름이 서로 반대로 그릇되어
十年奔走關山路(십년분주관산로) : 십년동안 고향의 산에서 고달프게 분주하였네.
嗚呼四歌兮歌鬱悒(오호사가혜가울읍) : 아 ! 네째 노래여 노래는 우울하고 답답하여
慈烏返哺啼山谷(자오반포제산곡) : 까마귀 어미 반포하듯 산골짜기에 우는구려.
其五
碧落無雲天似掃(벽락무운천사소) : 푸른 하늘을 쓸어 낸듯 두르던 구름 없어지고
勁風浙浙吹枯草(경풍석석취고초) : 센 바람 쓸쓸하게 일어 메마른 잡초에 부는구려.
佇立窮愁望蒼昊(저립궁수망창호) : 궁한 근심에 우두커니 서서 푸른 하늘 바라보니
我如稊米天何老(아여제미천하로) : 나는 벼의 움같은 운명을 늙어서야 받아드리네.
我生何爲苦幽獨(아생하미고유독) : 나의 생은 어찌하여 괴로히 홀로 피하듯 숨어서
不與衆人同所好(불여중인동소호) : 뭇 사람과 더불어 사이좋게 한 곳에서 지내지 못하나.
烏虖五歌兮歌斷腸(오호오가혜가단장) : 아 ! 다섯째 노래여 노래에 애가 끊어지니
魂兮歸來無四方(혼혜구래무사방) : 넋이여 ! 사방에 관계없이 돌아 오소서 !
其六
操余弧欲射天狼(조여호욕사천랑) : 내 활을 잡고 하늘의 천낭성을 쏘려하니
太一正在天中央(태일정재천중앙) : 태일성이 바로 하늘 중앙에 있구나.
撫長劍欲擊封狐(무장검욕격봉호) : 긴 칼을 쥐고서 무덤의 여우를 치려하니
白虎正負山之隅(백호정부산지우) : 백호가 산의 모퉁이를 다스리며 맡고있네.
慷慨絶兮不得伸(강계절혜부득신) : 손에 쥐고 펼수 없으니 비할데 없이 슬프고 슬퍼
劃然長嘯傍無人(획연장소방무인) : 문득 길게 휘파람 불어도 응대하는 사람이 없구려.
嗚呼六歌兮歌以吁(오호육가혜가이후) : 아 ! 여섯 째 노래여 노래로써 탄식하니
壯志濩落兮空撚鬚(장지확락혜공년수) : 크게 품은 뜻 꺽이니 쓸데없이 수염만 비비네.
君不見(군불견)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新羅異僧元旭氏(신라이승원욱씨) : 신라의 기이한 승려 원욱(元旭) 씨가
剔髮行道新羅市(척발행도신라시) : 머리 깎고 신라 저자에서 도를 행한 것을?
入唐學法返桑梓(입당학법반상재) : 당나라에 가 불법 배워 고향에 돌아와선
混同緇白行閭里(혼동치백행여리) : 승속(僧俗)을 넘나들며 마을에 다니면서
街童巷婦得容易(가동항부득용이) : 거리의 아이들과 아녀자도 쉽게 깨우치니,
指云誰家誰氏子(지운수가수씨자) : 그를 두고 누구네 집 아무개 씨 아들이라 가리켰다.
然而密行大無常(연이밀행대무상) : 그러나 큰 무상(無常)의 도를 몰래 행하여
騎牛演法解宗旨(기우연법해종지) : 소 타고 법을 펴 종지(宗旨)를 풀이하니,
諸經疏抄盈巾箱(제경소초영건상) : 여러 불경 소(疏)와 초(抄) 상자 안에 가득해
後人見之爭仰企(후인견지쟁앙기) : 후인들이 보고서 다투어 우러러 바랐다.
追封國師名無諍(추봉국사명무쟁) : 죽은 뒤에 국사(國師)를 무쟁(無諍)이란 이름 봉하고
勒彼貞珉頗稱美(늑피정민파칭미) : 그를 곧은 옥돌에 새겨 매우 칭송했다.
碣上金屑光燐燐(갈상금설광린린) : 비석의 금가루 빛 번쩍이고
法畵好辭亦可喜(법화호사역가희) : 법화(法畵)와 훌륭한 글 또한 좋구나.
我曹亦是善幻徒(아조역시선환도) : 우리도 환어(幻語)를 잘하는 무리라서
其於幻語商略矣(기어환어상략의) : 환어에 대해서는 대략 헤아려 안다.
但我好古負手讀(단아호고부수독) : 다만 나는 옛 것을 좋아해 뒷짐 지고 읽을 뿐
吁嗟不見西來士(우차불견서래사) : 아아, 서쪽에서 오신 분을 보지는 못하는구나.
無量寺臥病(무량사 와병)
春雨浪浪三二月(춘우랑랑삼이월) : 봄비가 낭랑하게 내리는 이 삼월에
扶持暴病起禪房(부지폭병기선방) : 모진 병을 견디어내고 선방에서 일어나네.
向生欲問西來意(향생욕문서래의) : 사람들 향해 서쪽에서 온 뜻을 물으려 하나
却恐他僧作擧揚(각공타승작거양) : 다른 스님들 떠 받들까 두려워 그만두네.
謔浪笑(학랑소)
실없는 말로 희롱질하며 비웃네
我會也我會也(아회야아회야] : 나는 깨닫고 또한 나는 이해하니
拍手呵呵笑一場(박수가가소일장): 박수치고 껄껄대며 한바탕 웃어보네.
古今賢達俱亡羊(고금현당구망양) : 옛날과 지금의 현달도 모두 망양이리니
不如結茅淸溪傍(붕여결모청계방): 맑은 시내 가까이 띳집 짓느니만 못하네.
畏途側足令人忙(외도측족령인망) : 산기슭 곁 두려운 길에 사람들 조급하니
不如安坐曝朝陽(불여안좌폭조양) : 아침 해 쬐며 편안히 앉음만 못하리라.
百了千當(백료천당) : 백가지 마치면 천가지 만나나니
不如坐忘(불여좌망) : 앉아서 잊느니만 못하리라.
碧山峨峨(벽산아아) : 푸른 산은 높고 위엄 있고
碧澗泱泱(벽간앙앙) : 푸른빛 산골물 깊고 넓구나.
自歌自舞(자가자무) : 스스로 노래하고 절로 춤추니
憂樂兩忘(우락양망) : 괴로움과 즐거움 다 잊는다네.
或偃或臥(혹언혹와) : 쓰러져 있다가 혹은 누워 자고
或行或坐(혹행혹좌) : 혹은 가다가 혹은 앉아 있네.
或拾墮樵(혹습타초) : 혹은 줍고 떨어뜨려 나무하고
或摘甜蓏(혹적첨라) : 또 달콤한 열매를 딴다네.
一領布衫(일령포삼) : 한 벌의 베적삼 차지하니
半眉裸臂(반미라비) : 반쪽 둘레 팔뚝은 벌거숭이
骨癯麤筋瘰野(골구추근라야) : 야윈 뼈 거친 살에 옴 걸려 비천하고
冠粗粗纓下嚲(관조조영하타) : 갓은 거칠고 갓끈은 아래로 늘어졌네.
眼底不見人(안저불견인) : 눈 아래 사람은 보이지 않고
與我步月長歌(여아보월장가) : 나와 함께 걷는 달과 항상 노래하네.
腰裊灘笑入(요뇨탄소입) : 간드러진 허리에 웃으며 여울에 드니
煙蘿洞雲鎖(연라동운쇄) : 안개낀 울타리 구름이 가두어 그윽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