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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퇴원한지 벌써 2주일이 넘었다.
병원에서의 시간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차이가 넘 크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집에서는 시간이 넘 잘흐른다.
간간히 한번씩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낯선느낌으로 와 닿는다.
순간 당황한다.
어떻게 했더라 생각하며 잠시 쉬어야 한다.
아마 입원할 때의 충격이 큰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백지장이 된 것 같은지...
남편은 변함없이 그 모습 그대로 있다.
참 좋은 사람이다.
서로를 배려하려 노력한다.
괜히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만약 남편이 진짜 바람이 났으면 어떡할 뻔 했을까
또 내가 바람이 났으면 어떡할 뻔 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무런 거침이 없이 부부로서의 자리로 가게 된다.
앞으로 무엇을 해서 돈을 벌까 고민 중이다.
군청에서는 채용공고가 계속 올라온다.
도전하고 싶지만 하지 않으려 한다.
요양보호사 시험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7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열심히 해서 시험에 합격해야 될 텐데
어쩔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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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0장 1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을 어미의 근심이니라 2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3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5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6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7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 8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계명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리라 9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10 눈짓하는 자는 근심을 끼치고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느니라 11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13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14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15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니라 16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17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 18 미움을 감추는 자는 거짓된 입술을 가진 자요 중상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니라 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20 의인의 혀는 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21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어 죽느니라 22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23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 것 같이 명철한 자는 지혜로 낙을 삼느니라 24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25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26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 27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지느니라 28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29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30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아니하여도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되느니라 31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 32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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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wisdom, 智慧)-개인의 지혜와 통치자의 지혜
지혜나 슬기를 의미하는 한자 '지(智)'는 알 '지(知)'에서 파생된 글자이다. '지(知)'라는 글자의 원래 의미는 '입(口)'을 통해서 나오는 '화살(矢)'이다. 고대 현인들은 지혜의 본질이 개인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의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들은 여기에 다시 날 일(日) 자, 즉 태양을 추가했다. 태양이 밝게 비춰서 모든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듯이 세상의 이치를 명쾌하게 안다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이 두 글자를 구분 없이 사용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지성(知性)'과 '지혜(知慧)'를 엄격하게 구분해서 사용해 왔다. 지혜 지(智) 자가 알 지(知) 자로부터 파생되었을 때 새로운 글자에 추가된 의미는 명쾌한 '판단 능력'이었다.
서양의 경우 지혜라는 미덕은 신의 영역에 속했다. 이는 인간이 것이 아니라 신의 축복으로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리스 인은 이를 '소피아(Sophia)'라는 여신으로 인격화했으며 전쟁의 여신인 아테나(Athena)에게 이 지혜라는 속성을 추가했다. 유대 인들과 초기의 기독교도들도 '소피아'를 기본적인 개념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신의 여성적인 속성으로 해석했다.
현대의 기독교 교리에 익숙한 독자들은 놀랄 수도 있겠지만 초기 기독교 신학에서 지혜의 여신 소피아는 신의 남성적인 본질인 아버지(the Father), 아들(the Son), 성령(the Holy Spirit)의 '삼위(Trinity)'를 조화롭게 만드는 신의 여성적인 본질이었으며 '신의 신부(God's Bride)'로 묘사되었다. 소피아는 가톨릭 교회에서 신의 여성성을 격하시키기 위해 성모 마리아(Mother Mary)로 이를 대체하기 전까지 절대적인 신성(神性)의 일부였다.
1. 지혜는 어리석음을 먹고 자란다
맹자는 오상(五常) 중에서 지(智)를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으로 규정했으며 별도의 학습 없이 습득할 수 있는 선험적인 미덕으로 간주했다. 이는 플라톤과 같은 관점이다. 반면에 같은 시대의 순자(荀子)는 이것을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경험적인 미덕으로 간주했다. 주자(朱子)를 비롯한 다수의 후대 학자들은 맹자의 견해를 계승했지만 이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우리는 개인이 쌓은 지식의 양이 항상 거기에 상응하는 지혜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죽은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20세기의 이단아 오쇼 라즈니쉬(Osho Rajneesh)의 경우에는 인간의 지식은 진정한 지혜를 깨닫는 방해물이라는 극단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지식 혹은 지성은 지혜를 깨닫는 필요 조건으로 생각된다. 라즈니쉬 역시 지식 자체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식을 축적했을 경우 본성적인 나약함으로 인해서 그 지식과 함께 편협한 아집을 갖기 쉽고, 여기에서 벗어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2. 지혜로운 인간이 지혜로운 통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로마 제국은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Octavianus)를 시작으로 모두 80명이 넘는 황제들이 통치했다. 이들 중에서 가장 현명했던 사람을 딱 한 사람만 꼽으라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Augustus)가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될 것이다. 그는 플라톤이 제시한 '철학자 황제'라는 이상에 가장 가까운 통치자였다고 할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황금시대인 오현제(五賢帝) 시대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물이며 동시에 스토아 학파의 마지막 봉우리였다. 스토아 학파는 그리스 로마 철학의 여러 흐름 중에서 형이상학적인 논의를 일체 배격하고 초기의 윤리학적인 전통을 고수한 학파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후 그를 능가하는 철학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그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장을 떠돌면서 남긴 개인적인 사유의 기록들은 《명상록(Meditations)》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어 2,0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황제로서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철학자로서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었다.
황제로서의 그는 인류애적인 사랑을 주장하는 철학자보다는 엄격한 법관에 가까웠다. 그의 치세하에서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하던 소외 계층인 노예, 과부, 외국인의 인구 비율은 현저하게 줄었지만 이는 인본주의적인 정책이 아니라 열정적인 입법 활동과 엄격한 법치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로마의 적에 대한 입장도 단호했다. 파르티아와 게르만 부족들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 방식은 전임자들과 다를 바가 없는 철저한 민족 말살 정책이었다. 기독교도들에 대한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치세 동안 처형된 기독교도들의 숫자는 기독교 박해를 상징하는 네로 황제 시대의 희생자를 훨씬 웃돌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철학적으로는 줄곧 인간적인 관용을 추구했으나, 절망적인 생존 위기로 인해 국경을 넘어온 게르만 인, 그의 시대에 수도까지 점령당했던 파르티아 인, 그리고 기독교도들에 대해서는 이를 적용하지 않았다. 그는 게르만 인, 파르티아 인, 기독교도들을 로마의 적으로 간주했으며 전임자들보다도 더욱 엄격하게 적들을 섬멸했다.
그렇다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이들에게 연민의 정을 가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최고의 지성인답게 자신의 이중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황제와 철학자를 철저하게 분리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미래의 황제로 점지되어 황제의 양자가 되고 가족의 품을 떠나 줄곧 왕궁에서 교육받았던 자신의 처지에 빗대어 황제와 철학자의 관계를 자신과 양어머니, 그리고 자신과 친어머니와의 관계에 비유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