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단속을 단단히 하고 새벽길을 나선다.
드디어 겨울이 왔나 보다.
어제까지는 한낮에 겉옷을 벗고 다닐 만큼 더위에 고개를 갸우뚱했다면, 오늘은 바람도 기온도 하늘빛도 모두 겨울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차 마신 뒷정리도 하지 않고 목도리에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산책을 간다.
몇 걸음 옮기니 차가움이 얼굴에 바싹 와 닿는다.
얼굴에 착하고 달라붙는 차가움에 괜실히 반가워 웃음이 난다.
비실비실 웃으며 얼굴을 숙이고 달려오는 바람을 피하면서 내리막을 걷는다.
걸음을 멈춘다.
내리막 어디쯤에서 바라보는 툭 터진 남쪽하늘이 오늘도 어김없이 장관을 이룬다.
스스럼없이 미소가 지어지고 잠시 숨을 멈춘다.
기가 막힌 하늘 장관을 보여주시는 것에, 그것도 매일 다르게, 고마울뿐이다.
다시 걷는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갈 때쯤 속에서 ‘정갈함’이란 단어가 올라온다.
‘정갈함’은 새롭게 반짝거리는 것을 말하진 않을 것이다. 오래되고 낡은 그러나 그것에 깃든 오랜 손길로 인한 정성, 뭐 이런 것을 정갈함이라 부르지 않을까 한다.
방금 내리막길에서 바라본 남쪽 하늘 풍경이 바로 그 정갈함과 맞닿는다.
오늘의 하늘을 보여주기 위해 알 수 없는 시간 이래로 셀 수 없는 많은 하늘이 펼쳐지고 지나갔을 것이다.
오늘의 정갈한 하늘은 그렇게 해서 맞이 되어 펼쳐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니 그러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겠다하는 마음도 뒤따른다.
내가 지금 맞고 있는 바람도, 걷고 있는 길도, 나란 사람도 수없는 생을 거쳐 그야말로 알 수 없는 손길로 닦고 길러져 지금에 나로 살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나는 나대로 알수 없는 정성과 손길로 세월로 정갈하게 살아진 것이고, 내게 펼쳐진 모든 것들이 그렇게 세월과 손길로 지금 이 순간을 이루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도 버림 없이 아니 버릴 수 없이 모든 것에 조화로움이 정갈한 이 순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걸으면서 보여지는 들국화에 갈대에 대나무에 발에 채이는 돌맹이하나에도 그런 오래된 정성과 손길 세월이 느껴지니 스스럼없이 감동한다.
의미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또 그냥 존재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이다. 말 없는 신비이다.
모처럼 일찍 걷는 산책에 나도 모르게 감동하고 고마워 어쩔줄 모른다.
‘정갈함’이 참 단단하고 아름답다.
모든 존재가 각자 있는 그 자리에서 오늘 하루를 충실하고 고맙게 살아내는 것이 ‘정갈함’에 조금씩 다가서는 일이 아닐까도 싶다.
어디선가 날이 서게 갈고 닦는 마음으로 어디선가는 그 날을 무디게 하는 마음이 있다 해도 우리보다 훨씬 큰 어떤 힘이 그 모든 것에 조화를 담아 결국 정갈함으로 한날을 잘 마무리지을 거란 믿음도 생긴다.
그렇게 한날을 새기고 새겨 오늘의 정갈한 아침이 이루어졌고 또 이어져가리라, 고맙다.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