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음 앞에 선 나
우리는 참으로 바쁘게 삽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밝은 햇살을 맞이하기보다 바쁜 하루를 시작하느라 분주한 경우가 더 많다. 새로운 하루를 행복하게 맞이하는 일도 생각만큼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허겁지겁 출근 준비를 하고, 가족을 위해 아침상을 차리고, 아이들의 가방을 챙기며 바쁜 일상을 준비하는 주부들도 있습니다. 전철이나 버스에 몸을 부대끼며 시작하는 출근길 스트레스, 오늘 반찬은 뭘 해서 먹나, 가족의 밥상을 어떻게 차릴지에 대한 고민, 하루 동안 처리해야 할 산적한 일에 대한 걱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외에도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하기 힘들게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고민스럽습니다. 전날 서로 감정이 상한 채 잠들었다가 당장 아침부터 마주치게 되는 남편과 아내, 자녀들의 불만 섞인 표정과 행동, 몸이 불편하거나 사사건건 간섭하는 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을 마주해야 할 때 져야 하는 마음의 짐을 견디기가 버겁습니다. 직장과 일터에서 유독 나를 못살게 구는 직장 동료나 상사,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들, 보기만 해도 짜증나는 사람들을 대면해야 하는 일도 걱정됩니다.
사제로 살아가는 저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신학교에서 생활을 할 때는 신학생들과 같이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살아야 하는 것이 꽤 부담스러웠습니다. 아침 일찍 꼬박꼬박 일어나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성 면담, 기도생활, 체육활동에 이르기까지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내기가 빠듯했습니다.
그런데 본당신부가 되고 나서는 그나마 신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기도하며 묵상했던 시간을 홀로 갖는 일조차도 버거워졌습니다. 신학교에서 생활하는 것보다는 자유로워졌지만, 본당에서 관례적으로 이루어지는 미사와 강론, 고해성사와 면담, 날마다 이어지는 만남과 회식 그리고 이전부터 해오던 다양한 업무에 묻혀 정신없이 한 주간을 살기 일쑤입니다.
이런 일상을 살다 보면 문득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물음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난 누군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정말로 행복한가?’ 내가 뭘 하고 사는 건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고 답답합니다. 내 일상은 마음속이 꽉 막힌 삶의 자리에서 한숨을 길게 내쉬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피할 수 없는 고행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인류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명을 어기고 몸을 숨기고 있을 때 받았던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라는 물음이 시간의 벽을 넘어 나한테도 던져지고 있는 셈입니다. 사는 게 뭔지 모를 정도로 일상의 분주함에 묻혀 사는 내가 과연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인간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인간은 피할 수 없는 궁극적인 세 가지 물음에 마주친다고 합니다.
첫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정보통신 혁명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삽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정보가 인터넷과 텔레비전, 라디오 등을 통해 쉴 새 없이 쏟아집니다.
하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이 알고 싶어하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따라 그의 가치관과 안목은 사뭇 달라집니다. 삶을 변화시킬 수 없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나 불필요한 정보들은 자신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소문이나 편견으로 인간관계가 손상되고 그릇된 정보나 오해로 신앙생활에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요즘처럼 볼거리, 즐길 거리, 읽을거리가 많은 세상에서 참된 진리를 찾는 구도의 정신을 간직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가 알 수 있는 것보다 알 수 없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지적 교만에서 벗어나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삶을 감싸고 있는 신비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그 거룩한 신비 앞에 겸손한 자세로 서 있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두신’(루카 12,7) 하느님 앞에 서 있음을 깨달아 아는 것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둘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야말로 하느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동시에 자유는 인간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인류의 첫 번째 죄의 역사를 그려낸 에덴동산 이야기(창세 3,1-24)는 인간이 하느님에게서 받은 자유를 그분의 창조질서에 따라 행하지 않을 때 어떤 결과를 빚게 되는지 말해 줍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행위의 옳고 그름을 윤리적으로 식별해야 할 때마다 과연 인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속이는 일, 미운 사람을 상처주기 위한 악의적 행동과 말, 생명을 구하기 위해 또 다른 생명을 죽이는 일, 아무렇지도 않게 산과 강에 오물을 버리는 일, 자연을 훼손하는 일, 생명의 영역을 위협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나 유전자 변형 문제, 살인과 자살, 안락사 문제에 이르기까지 선과 악의 기준이 모호해지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양심의 깊은 곳에서 인간을 선한 의지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때로 그 음성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양심이 무뎌질 수도 있고, 설령 들리더라도 양심이 왜곡되어 자기 합리화에 급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경외심으로 그부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을 때 나의 자유는 크나큰 도덕적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입니다. 앞선 두 질문이 생생한 현실을 살아가는 인가의 물음이라면, 셋째 질문은 미래와 희망에 대한 질문입니다. 희망은 그것이 아직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궁극적 이유이고, 끊임없이 내일을 살기 위해 오늘 무엇인가를 결단하도록 촉구하는 힘입니다. 현실이 고통과 시련, 좌절과 실의 속에서도 오늘을 버텨내고 살 수 있는 것은 판도라 상자에 남은 ‘희망’이라는 단어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적지 않은 이들이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문제로 살아갈 희망을 잃은 채 자살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자살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에 가장 높다는 불명예스러운 현실을 보면, 우리 사회에 희망의 부재가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희망의 부재는 단순히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연대적 책임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희망을 갖고 살지 못하는 이유가 다분히 나와 함께 사는 이들이 내게 주지 못하는 기쁨과 평화 때문인 것처럼, 나도 내 가족과 이웃에게 얼마나 삶의 희망을 심어 주는지 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컴퓨터를 재시동하듯 실패한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환생에 대한 잘못된 희망으로 살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되돌릴 수 없는 단 한 번의 짧은 인생으로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말합니다. 환생을 통해 최소한의 패자부활전이 주어져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그렇게 반복된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한 번의 인생은 영원하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지금 여기서’ 희망을 찾는 사람은 이미 영원을 산다고 해도 됩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영원하시지만 동시에 시간 안에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누구인지 묻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를 묻게 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는 여정에 동참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살 수 있는 힘을 찾기보다 나를 살게 하는 분이 누구신지 묻는 것, 오늘의 현실을 딛고 내일을 살게 하는 힘, 내 인생 여정을 감싸는 신비가 무엇인지 묻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무엇인지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은, 그 물음을 떠올려 주는 우리 안에 지금의 나와는 다른 ‘본래의 나’,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태초의 내 모습이 있기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을 닮은 내 본래 모습을 되찾는 여정. 그것이 우리가 찾는 신앙의 여정이 아닐까?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