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북리뷰 (2015.2.9)
샴고로드의 재판 (LE PROCES DE SHAMGOROD)
엘리 위젤 지음/하진호,박옥 역/216쪽/12000원/ 포이에마
01. 오늘 처음 소개해 주실 책은 어떤 책인지요.?
샴고로드의 재판 (LE PROCES DE SHAMGOROD)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엘리 위젤의 문제작입니다. 17세기에 있었던 집단학살로 큰 충격을 받은 폴란드계 유대인 공동체의 상처난 마음으로 인간의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부재와 침묵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하나님을 법정에 세우고 부조리와 고통이 가득한 인간의 비참한 현실 속에서 신의 권능과 선의를 의문에 부치는 현대판 욥기라고 하겠습니다.
02. 엘리 위젤이라.. 생소한 이름인데, 어떤 작가인가요?
우리나라 독자들은 아마도 메디치상을 수상한 <예루살렘 거지>나 <나이트>등을 통해 작품을 만났을텐데요. 1928년 루마니아의 시게트에서 태어나 그의 나이 열다섯 살 때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어 왼팔에 ‘A-7713’이란 죄수번호가 새겨졌습니다.
누나 둘은 살아남았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은 가스실에서 처형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이질과 피로로 앓다가 1945년 4월, 수용소가 해방되기 직전 사망했습니다.
종전 후 파리에서 기자로 일했고, 유명한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모리악의 권유로 강제수용소 경험을 기록, 《나이트》를 출간했는데... 이 책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출판되었고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한 책입니다.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1978년에 대통령 직속 홀로코스트 위원회 의장에 임명되었고, 1980년에는 미합중국 홀로코스트 추모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았으며,
1986년에는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책은 C.S 루이스의 “피고석의 하나님”과 같은 주제를 다룹니다만 이야기를 표현하는 구성은 전혀 다릅니다. “피고석의 하나님”이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영성으로 진리를 사수했다면 “샴고로드의 재판”은 비유적 이야기로 하나님을 변호하고 있는 것이지요.
03. '유태인 학살'하면.. 홀로코스트를 떠올리지만.. 사실 유대인에 대한 억압과 차별, 학대...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습니다. 이 책 역시.. 홀로코스트 훨씬 이전인
17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구요?
이 작품의 배경은 1649년 2월, 부림절
폴란드 남동부와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공동체를 덮친 대재앙을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폴란드의 지배하에 있던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폴란드와 가톨릭교회에 불만이 쌓이자 봉기를 일으켰는데, 코사크인과 타타르인의 지원을 받은 하급 귀족 흐멜니츠스키가 앞장선 이 봉기는 곧 유대인을 공격 대상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귀족들과 그리스 정교회 신자인 농민들 사이에서 유대인이 중개인,
곧 마름 역할을 했던 터라 농민들의 적대감이 컸던 탓인데요.
그리하여 바르, 나롤, 네미리프 등지에서 유대인 대학살이 이루어졌고, 유대 회당이 불탔는데, 유대역사에 보면 당시 300개의 유대인 공동체가 파괴되고 10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04. 우리 역시 고난과 시련이 끊이지 않았던 역사를 보냈습니다만..
유태인들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습니다. 10만이 죽었다니.. 인간들이 보여주는 잔혹성.. 때로 믿기 힘들 정도인데요. 자.. 이 끔찍한 사건 속에서.. 저자는 어떤 이야기를 발견해 낸 건가요?
위젤의 이 희곡은 집단학살이 이루어지던 바로 이때, 이 지역을 배경으로 희극 대사로 쓰여진 책입니다. 부림절은 구약 에스더서에 기록된 이야기에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크세르크세스 왕) 재위 시 총리였던 하만이 제비를 뽑아 날을 정해 유대인을 몰살시키려던 음모에서 구원된 날을 기억하며 지키는 날이지요.
이때가 되면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에스더서를 낭독하는데, 에스더서의 영웅인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환호하고 하만의 이름이 나오면 야유를 퍼붓는다고 합니다. 선물을 교환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즐거운 축제라는 점은 기독교의 성탄절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참고로 책 제목의 삼고로드는 대 학살이 일어난 지명입니다. 샴고로드의 재판은 이렇게 부림절에 연극을 하러 찾아온 유랑시인들이 연극 속의 관객들과 더불어 한바탕 벌이는 연극 속의 연극, ‘부림절 연극 속의 부림절 연극’이라 하겠습니다.
05. 일종의 액자 소설인 셈인가요? 게다가 희곡으로 쓰여졌구요. 복잡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 작품인데.. 내용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상상하기 힘든 비극과 부조리, 고통 속에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묻게 되는 게.. 인지상정인데요. 이 책에서는 부림절 연극 무대를 빌어서... 신에 대한 모의재판에 나서게 되죠. 하나님을 피고로 세운 재판.. 과연 어떻게 진행되는지.. 책 내용 잠깐 들어다볼까요?
네. 마지막 유대인 생존자이자 여관주인인 베리쉬와 세 명의 음유시인 사이의 대화인데요. 몇 구절 발췌해 봤습니다.
<책속으로>
베리쉬: 한 살인자가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인하게 두면 신에게 책임이 있는 거요. 고통당하거나 고통을 야기하는 모든 사람, 강간당한 모든 여인, 학대당하는 모든 어린이는 신이 연루되어 있음을 보여주오. 왜, 이걸로도 부족하오? 백 개가 필요하오, 천 개가 필요하오? 보시오. 신은 책임이 있거나 책임이 없거나 둘 중 하나요. 책임이 있다면, 신을 재판에 넘깁시다. 신께 책임이 없다면, 우릴 그만 심판하라 하시오. _69쪽
멘델: 가련한 왕, 가련한 인류… 전자는 후자만큼이나 동정받아야 합니다…. 도대체 온 왕국을 뒤져도, 온 나라들을 훑어도, 창조주 편을 들 수 있는 사람을 한 명도 찾을 수 없단 말입니까? 그분의 수수께끼를 설명할 수 있는 신자가 하나도 없습니까?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사랑할, 그분을 고발하는 자들에 맞서 그분을 옹호할 만큼 그분을 사랑할 수 있는 교사가 한 명도 없단 말입니까? 이 온 우주에, 전능하신 신의 사건을 맡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겁니까? _128-129쪽
베리쉬: 샴고로드의 유대인 여관 주인인 나 베리쉬는 그를 적개심, 학대, 그리고 무관심의 죄로 고발하는 바이오. 그는 그의 백성을 싫어하든지 그들에게 관심이 없든지 둘 중 하나요! 그런데 말이오, 그는 왜 우리를 선택했을까? 왜 한 번쯤 다른 사람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가 우리에게 일어날 일을 알고 있든지 아니면 알고 싶지 않았든지 둘 중 하나겠지! 두 경우 다 그는… 그는… 유죄요! _142쪽
베리쉬: (샘에게) 당신은 집단학살이 지나간 뒤에 어떻게 은혜와 자비를 논할 수 있소?
샘: 자비와 은혜를 논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시기가 있습니까? 당신은 지금 살아 있습니다. 그게 그분의 친절하심의 증거 아닌가요?
베리쉬: 샴고로드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소. 그건 그에게 친절함이 결여되었다는 증거 아니오?
샘: 당신은 죽은 사람들에게 집착하고 있어요. 하지만 전 산 사람만 생각하지요.
베리쉬: 그럼 그가 친절을 베풀기 위함이 아니라 잔인함을 보여주고자 날 살려둔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쩌겠소?
샘: 그분은 당신을 살려두셨는데, 당신은 그분께 맞서고 있군요.
베리쉬: 그가 샴고로드를 전멸시켰는데 내가 그의 편이 되어야 한단 말이오? 난 그럴 수 없소! _152-153쪽
00. 네. 이해하기 힘든 고난, 그리고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누구나 한번쯤 던져보게 되는 질문들인데요. 답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 역시.. 최근에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구요. 여전히 머리 속이 복잡한데..
생각을 정리하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그렇습니다. 근대사에 들어와서 우리는 부패한 기업들로 인한 희생과 독재권력들에게 죄없이 고통당해서 고통을 당하는 수많은 이웃들을 보아왔는데요. 작년 4월에 있었던 세월호 사건을 대하면서 살아계신다고 믿는 하나님의 부재와 힘없이 침묵하고 계시듯 보이는 이런 현실속에서
온전히 신앙을 지켜갈 수 있을까요? 고통과 눈물과 신음소리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어떤 생의 의미를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요?
나치 유대인 대학살의 생존자인 엘리 위젤은 이 작품에서 대답 없는 침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고통스런 질문을 던집니다. 신을 숙명적인 존재로 치부하지 않고 인격적인 신으로 믿는다면 이 고통스런 질문 앞에 쉽게 그분을 옹호한답시고 떠들기보다 서로를 돌아보아주며 고통가운데 손잡아 주며 하나님의 마음이 흐르도록 우리의 신앙을 다시 되돌아보게 해 주는 책입니다.
00. 과연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에 대해.. 등장인물들이 어떤 판단,
그리고 판결을 내리게 될 지.. 직접 책 속에서 확인을 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