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9월6일)는 행정자치부(내무부)에서 같이 근무하다 퇴직을 하고 경기도 광주시에서 살면서 그림그리기와 낚시질 그리고 대학원에도 나가 열심히 배우는등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생활을 하고있는 지민수 동료의 배려로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호텔에서 "꽃의 전설"공연을 관람하였다.
공연은 고향의 아래, 웃동네에서 자라면서 낭성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로 젊어서 서울로 올라와서 사업을 하여 크게 성공을 걷우고 지금은 자식들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노년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는 죽마고우인 강희권 내외와 우리내외 이렇게 네명이서 보았다.
오후 다섯시에 호텔로비에서 네사람이 만나 지하1층에 있는 씨어터홀 입구에 가서 공연 관계자들에게 지영옥씨 지인들임을 말하니 곧바로 홀 중앙에 있는 4인석 테블로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대부분 중국 일본등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었다.
공연은 17시30분에 시작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전통한복으로 단장한 미남 미녀 배우들이 괭과리 북 징등 전통악기의 연주와 국악에 맞추어 4막으로 엮어서 부채춤을 곁들여 보여주는데 공연장을 가득메운 관람객들은 신나는 공연에 완전히 매료되어 탄성과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먼저 제1막은 만남의 장으로 절벽에 핀 붉은 꽃을 갖고 싶어하는 아라라는 여인에게 미르라는 청년이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의 꽃을 따다 줌으로써 이들은 서로에게 운명적인 이끌림을 느끼고 사랑을 시작하는 장면이 전개되었으며
제2막은 이들 두 남녀가 불같이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데 이들의 사랑을 시샘하는 마마왕이 등장하여 여인 아라를 잡아가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제3막은 마마왕에게 끌려간 아라를 구하러 온 미르와 마마왕의 수하들이 서로 격투를 벌린 끝에 미르가 승리하여 사랑하는 여인 아라를 구해내는 장면을 보여 주었고.
마지막 제4막은 시련을 이겨낸 이들 두 남녀에게 황금 물결과 같은 풍요로움이 찾아온 가운데 마침내 전통혼례가 치루어지고 한바탕 축제잔치를 벌리는 공연으로 마무리해 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시계를 보니 19시30분이었다.
공연을 보고나서 우리 네사람은 "모처럼 훌륭한 공연을 보았다"고 찬사를 쏟아냈다.
외국에 여행을 가면 의례히 각 나라의 전통민속공연등을 보는데 평균 입장료는 100불정도 되고 보고나서는 그 나라의 전통춤과 노래소리등에 감탄을 하였던 기억이 떠올려 졌다.
오늘 공연을 본 외국인 관광객들도 우리나라의 전통의상과 춤 노래 그리고 국악악기 연주등에 크게 매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특히 나는 마지막장의 전통혼례(傳統婚禮) 모습을 보면서 진한 감동과 함께 어릴적에 가마타고 시집 장가가는 신랑 신부가 첫날 밤을 치룰때에는 짓궂게 창호지 문에 침을 발라 구멍을 뚫어놓고 엿 보다가 어른들께 야단을 맏던 형과 누나들 모습이 떠올랐다.
9월에 접어들면서 결혼시즌 답게 친척과 친구 그리고 여러 지인들로부터 보내오는 청첩장 속 청춘 남녀들의 결혼식 모습과 비교해 보면서 옛 전통혼례 향수에 흠뻑 취한 나머지
우리고유의 전통혼례와 요즘 웨딩홀에서 치루어지고 있는 신식혼례와 주례사등을 더듬어 본다.
먼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전통혼례를 살펴본다.
나와 같은 70대연령의 사람들은 누구나 어렸을때 형과 누나들이 꽃가마타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명장면과 정에 넘치는 국수잔치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지금은 거의가 서양식 웨딩홀에서 결혼예식을 치루고 있지만 일부 사람들은 명동의 한국관 등에서 전통혼례를 올리고 있어 그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있다.
전통혼례는 중매장이가 신랑과 신부감 집을 오가면서 소개하고 양가의 의사를 타진하여 결혼합의가 이루어지면 두 젊은 남녀가가마를 타고 양가를 오가며 벌리는 혼례예식으로 서양식 혼례보다 절차가 복잡하고 번거로운 점은 있지만 두남녀가 평생을 살아가는 출발을 맺는 성스러운 예식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하나도 번거로울게 없고 오히려 그 신중한 진행에 믿음이 배가된다 하겠다.
우리나라 전통혼례는 크게 4단계의 절차로 진행된다.
먼저 신랑과 신부 양가가 혼인을 의논하는 단계로 이를 의혼(議婚)이라고한다.
양가는 사람(중매장이)을 보내 상대편의 가문과 학식 인품 질병등을 파악하고 신랑 신부의 궁합(宮合)을 본 다음 허혼(許婚)여부를 결정하는데 대개 신랑집에서 먼저 청혼편지를 보내고 이를 본 신부집에서 허혼한다는 답장을 보내면 약혼이 성립된다. 중매장이의 역할이 매우 중요시 되었었다.
다음은 약혼이 성사됨에 따라 사주(四柱)를 보내고 좋은 결혼날짜를 정하는데 이를 납채(納采)라한다.
약혼이 이루어짐에 따라 신랑집에서는 신랑의 사주와 납채물목을 써서 보내면 신부집에서는 신랑과 신부의 운세를 가늠해보고 결혼식 날자를 정하여 신랑집에 통지하는데 이를 연길(涓吉)이라고한다. 지금의 상견례절차라고 보면 되겠다.
다음은 신랑집에서 결혼식 전날 신부용 혼수와 혼서 및 물목을 넣은 혼수함을 보내는데 이를 납페(納幣)라고한다.
신부집으로 함을 지고 가는 사람을 함진아비라 하는데 함진아비는 아들을 낳고 부부간에 금실이 좋은 사람을 선정했다.
함진아비가 함을 지고 서너사람의 인도하에 신부집에 도착하면 신부집은 대청마루에 상을 놓고 그 위에 홍색보자기를 깐뒤 봉치떡시루를 올려 놓고 함을 받았다.
함진아비 일행에게는 옷감과 돈을 준 뒤 厚하게 대접했다.
요즘은 함진아비가 오징어로 얼굴을 가리고 신부집 골목입구에서 큰소리로 "함사세요"를 외쳐서 동네사람들을 끌어내고 신부집에서는 돈 봉투를 쥐어주고 술도 권하면서 집으로 유도하기도 하고 완력으로 끌어 들이기도 하는등 한바탕 실랑이를 벌리면서 함을 받아드린다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결혼식과 같은 혼례를 치루는데 이를 친영(親迎)이라고한다.
혼인식을 치루는 초례청(醋禮廳)은 단아하지만 동시에 정겨운 덕담과 농이 오가면서 참석자 모두가 즐거운 흥이 넘치는 자리이다. 옛날에는 중매장이에게서 신랑이 또 신부가 어떻게 생겼다는 이야기만 들었을뿐 이기에 혼례식날 비로서 서로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다.
친영에는 신랑이 신부에게 기러기를 선사하는 전안례(奠雁禮)와 신랑과 신부가 절을 주고 받는 교배례(交拜禮)와 신랑과 신부가 술잔을 주고 받는 합근례의 순서로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옛날에는 살은 기러기를 신부에게 주었으나 근래에 와서는 나무로 만든 기러기로 대신하고 있는데 기러기를 주는 이유는 기러기는 한번 연(緣)을 맺으면 짝의 연분을 끝까지 지킨다하여 신랑이 백년해로 서약의 징표로 신부의 어머니에게 드리는 것이다.
혼인 예식을 치룬 후 신부집에서 첫날밤을 보낸 신랑은 이틋날, 말 혹은 가마를 타거나 걷고 신부는 가마를 타고서 시댁으로 가는데 이를 우귀(于歸)라한다
우귀길은 신부로서는 요즘과 같이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는 친정에 가는 것이 보통 어렵지 않아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별의 길인 셈이고 엄마가 친정엄마가 되는 눈물의 길이기도하다. 어릴적에 동네 새댁들이 우물가에 모여서 친정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눈물을 훔치던 모습이 생각난다. 또 보은군이 친정인 옆집에 살던 아주머니는 친정 생각이 나면 바느질을 하면서 흥얼흥얼 노랫말로 시름을 달랜다고 들었었다.
우귀때 가마멀미가 날 정도로 길이 멀때는 가마안에 간단한 먹을 거리와 요강을 준비하기도 했다.
우귀날 친정에서 보낸 음식과 술로 상을 펴고 시어른들께 새 식구로서의 첫 인사를 드리는데 이것을 폐백(幣帛)이라 한다. 폐백에는 다산, 무병장수와 행복을 의미하는 밤 대추 닭이 빠저서는 않되었다.
우귀 당일 또는 몇일 후 "사당차례" 까지 마치면 전통혼례의 모든 절차가 끝나게 되는데 지금의 웨딩홀 혼례보다는 꽤 번잡한면이 있으나 이 지구상의 63억7천760만명 인구중에서 특별한 인연으로 만난 단 두사람이 백년해로 하는 서약과 맹세를 하는 예식이라면 적어도 이정도의 혼례의식 쯤은 기꺼히 감내하여야 할것으로 생각되고 또 가능하면 이렇한 뜻 깊은 전통혼례가 앞으로 많이 권장되고 치루어져 우리고유의 전통혼례문화가 이어져 갔으면하는 마음 간절하다.
지금은 본격적인 결혼 시즌으로 청첩장이 서너장 와 있고 또 몇일날 결혼식을 올리는데 청첩장을 보내겠다고 막내동생과 이종사촌 그리고 친구들의 전화도 몇통 받아놓고 있다. 모두가 웨딩홀에서 올리는 청첩장이다.
10여년 전만해도 하루에 대여섯군데 예식장을 다 쫒아다닐 수가 없어서 일부는 참석하고 일부는 지인에게 부탁하여 축의금만 전달하느라고 꽤나 분주했는데 요즘은 불가피할 경우는 우체국에 가서 수수료(3천원)를 지불하고 축하엽서와 함께 송금하면 되어 한결 수월한 편이다.
요즘 결혼식장을 가 보면 식사를 하면서 결혼식을 진행하는 일부 예식을 제외하고는 축의금을 전달함과 동시에 식권을 받아 식당으로 직행하는 그야말로 축하보다는 식사에 뜻이 있는것 같아 전통혼례의 진지한 절차와 비교된다.
또 여러 결혼식장엘 가보면 반듯이 주례사를 듣게 마련인데 그 주례사가 내용이 거의 비슷하고 때로는 지루하여 결혼 당사자들이나 하객들의 머리에 남는 것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할때가 많다.
내 경우도 1968년 충청북도청에 근무할 당시 직장 상사인 도지사님(강원도에서 국회의원에 몇번 당선되시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金孝榮 지사님)을 주례로 모셨는데 교수 출신 답게 꽤 긴시간 동안 좋은 德談을 많이 해 주셨느데 솔직히 그 당시는 빨리 끝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그후에 주례사를 생각해 보면 신여사와 내가 같이 기억하는 말은 한 말씀 밖에 없어 아십지만 그래도 아무말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행운이라 하겠다.
내가 기억하는 말씀은 "新婦는 신랑을 때로는 아버지 같이 때로는 오빠같이 평생 따르고 섬기세요" 이고
신여사가 기억하는 말씀은 "新郞은 신부를 때로는 어머니 같이 때로는 누님 같이 평생 따르고 섬기세요" 이었다.
우리는 신혼시절 이 주례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되네이며 서로 "주례 말씀을 잊지 말고 나를 아버지(어머니) 같이 잘 섬기라" 고 진담 반 농담 반으로 건네면서 지내왔었다.
나는 너무도 어렵게 자라왔고 양부모님을 일찍 떠나 보내었기에 가능하면 주례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고 부득불 주례를 맡은 자리에서는 가능한 주례사를 짧게 하고자 했으나 실제는 그렇게 되지를 않는것이 주례의 본능이 아닌가 생각하게된다.
우리애들 셋중 큰애 鉉娥는 신서방의 대학교 은사이신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허봉열 교수님이 주례를 보아 주셨고, 둘째 重鉉이는 대학교 은사이신 광운대학교 건축공학과 이달원 교수님이 주례사를 해 주셨다.
다만 막내 朱玄이는 "주례는 어느 교수님에게 부탁드렸는냐"고 물어 보니까 "주례는 아버지가 아시는 분으로 해 주세요 아버지가 잘 아시는 분으로부터 좋은 말씀을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라고 하였다.
주현이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저희들 은사의 주례사 보다는 내가 아는 분의 덕담을 들으면서 두사람이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겠다는 주현과 막내며느리의 마음이 읽어지면서 고맙고 일리가 있다고 여겨져 어떤 분에게 부탁할까 고민을 하게 되었다.
생각 끝에 나보다 먼저 충북도청에서 근무하다 나보다 몇년 빨리 내무부로 올라와서 상사들의 두터운 신임과 동료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승승장구 승진하여 차관급까지 올라가신 후 퇴직하시고 사모님은 나에 절친한 친구(이광훈)의 누님인 데다가 두아들은 서울대학교를 나와서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모두의 부러움을 사고있는 존경하는 류 호근(柳鎬根) 선배님을 모시기로 마음먹고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었다.
요즘 결혼식 중 종교식으로 하는 예식이거나 목사님이 주례사를 할때는 자연히 예식 절차와 주례말씀이 길어진다.
한 예식장을 가 보니 주례를 세우지 않고 신랑 아버지와 신부 아버지가 번갈아 주례석으로 올라와 짧막하게 당부의 덕담을 하고 내려가는데 그 말씀이 어찌나 진하게 가슴에 와 닿는지 마음을 짠하게 하였다.
그런가하면 4년전 명성교회에서 치루어지는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이교회 김삼환 당회장 목사님의 사위이신 이필산 목사님의 주례사를 들었는데 신랑 신부와 문답식으로 아주 쉽게 공감되는 말로 밥상머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듯이 당부와 더불어 두 당사자가 맹세도하게 하여 시간이 하나도 길게 느껴지질 않았다.
결혼은 한 인간이 이 지구상에 태어나서 70살 내지 100살을 살아 가는데 가장 중요한 시발점이다.
그러기에 좋은 짝을 만나 훌륭한 주례말씀을 듣고 주위의 따뜻한 격려와 본인들의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하겠다.
그러기에 결혼식은 결코 가볍지 않고 진정성이 있어야하고 신랑 신부 두사람의 가슴이 신뢰와 뜨거운 사랑의 정으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혼례방식은 지금과 같이 서양식 웨딩홀에서 면사포를 쓰고 올리는 혼례방식과 병행하여 얼굴에 연지곤지 귀엽게 바르고 조랑말과 꽃가마타고 평생 연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기러기를 주고 받고 합환주(合歡酒)를 마시면서 백년가약을 맺는 우리고유의 전통혼례식도 이어져 내려 갔으면 하는 마음 다시한번 간절해진다
얼마전 TV에서 "80대후반 노 부부가 결혼 60주년을 맞아 금강(金剛)혼식을 전통혼례식으로 치루는 장면"을 보았는데 퍽 아름다워 보였었다.
웨딩홀에서 치루어지는 혼례식의 경우에도 지금과 같은 판에 박힌 대동소이한 그리고 지루하기도 한 주례사 보다는 신랑신부의 부모들이 나와서 정이 가득 담긴, 길이 기억 될 당부의 말을 건네주면 이에 신랑 신부가 평생을 어떻한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약속을 양가 부모와 하객들에게 굳게 하는 그런 결혼식으로 바뀌어 지면 좋겠다는 바램도 갖어본다.
2011년 9월 8일 저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