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삶의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루카 3,23-38)
‘피해자 증후군’이라는 증세가 있습니다. 과거에 상처를 입어서 지금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증세입니다. 이러한 증세를 지닌 사람은 부모를 잘못 만나서, 혹은 과거에 하도 가난하게 살아서 등 여러 가지 과거사를 들먹이면서 현재 삶을 변명합니다.
또한 가족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생떼 쓰듯이 스트레스를 주며, 입버릇처럼 “나에 관해 뭘 알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를 이해하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해.”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하건 말건 뻔뻔하게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들이 마치 특권을 누리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열악한 과거 때문에 마음속에 상처가 생기셨다면 예수님도 이러한 피해자 증후군에 걸리셨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복음서에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에 남길 정도로 그 당시는 조상을 중요시하던 때였기에 더욱 그렇게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이 건강하고 지혜로우며 당당한 사람으로 자라 당당하게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나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산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아픈 상처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삶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에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서도, 지금의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상처에 계속해서 매달리는 것은 지금 내 인생을 만드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과거 때문에 현재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고 푸념한다면 그것은 동정받을 일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낭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입니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 가운데는 어린 시절이 불우했던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어두운 과거나 어린 시절의 불우함을 잘 이겨내려고 노력한 사람들로 마치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자기 안의 꽃을 피울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삶이 진흙탕이라고 불평하는 사람은 결국 인생이 끝날 때까지 진흙탕 같은 삶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떤 아버지가 늘 술에 취해 들어와서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이 불우했던 것에 대해 푸념하며 가난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한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에게 어린 아들이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돈을 못 버는 것보다 매일 그렇게 주정하는 게 더 보기 힘들어요.”
어린 줄 알았던 아들 입에서 나온 말에 깨달음을 얻은 아버지는 그 이후로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본받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가, 혹은 기피 대상이 되고 싶은가 하는 것은 내 과거사가 아니라, 그런 나의 과거를 딛고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달렸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과거 때문에 현재 삶을 망치는 사람이 되지 않고, 어려운 과거를 딛고 일어날 때 사람들은 우리 삶에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들어보세요. 나를 쉼터로 여기는지 피곤한 사람으로 여기는지 살펴보세요.)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