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의 지존 신지애(21.미래에셋)는 올해 정규 멤버로 데뷔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상금왕을 차지하며 차세대 골프여제의 입지를 확실하게 굳혔다.
한국과 호주, 일본, 미국을 오가며 종횡무진 활약한 신지애의 올해 수입은 얼마나 될까?
신지애는 LPGA 투어에서 25개 대회에 출전, 세차례 우승을 포함해 12차례 ’톱10’ 입상 등으로 180만7천334달러를 상금으로 벌어 들였다. 25일자 환율로 환산한다면 약 20억9천만원에 이른다.
또한 신지애는 일본여자프로골프 투어 6개 대회에 출전해 우승 1차례를 포함해 다섯 차례 톱10에 들며 3천740만1천110엔의 상금을 받았다. 한화로 환산하면 4억9천만원이나 된다.
여기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하이트컵 챔피언십에서 공동 7위에 오르며 1천950만원을 받았고 호주 대회 상금 2천만원을 보태면 올해 상금 수입만으로 26억1천500만원을 벌었다.
올해 초 미래에셋과 메인 스폰서 계약을 맺으며 1년 후원금 10억원을 받은 신지애는 LPGA 투어 우승 때 상금의 50%, 2∼5위 입상 때 상금의 30% 등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 5억원을 받게 된다.
그리고 24일 미국 종합화학회사 다우케미컬이 신지애와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는 등 기업들의 후원도 줄을 잇고 있다.
다우케미컬은 계약 기간 2년에 신지애의 오른팔에 로고를 붙이는 조건으로 계약했으며 구체적인 금액을 밝히지 않았다.
신지애의 매니지먼트사인 세마스포츠마케팅 관계자는 다우케미컬이 먼저 스폰서 계약을 요청했다. 의류 스폰서인 코오롱 등 서브 스폰서들의 후원금까지 합한다면 3억원 정도 된다“고 밝혔다.
여기다 LPGA 상금왕과 신인왕 타이틀까지 차지하면서 미래에셋이 추가로 주는 보너스까지 더한다면 신지애의 올해 수입은 50억원은 족히 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신지애는 현재 BMW를 타고 있지만 지난 달 일본여자프로골프투어 마스터스GC레이디스에서 우승한 뒤 부상으로 시보레 스포츠카를 받아 어떤 자동차를 타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올해 LPGA 상금왕 다승왕... 비록 공식 수상내역은 아니지만..
박세리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둔 신지애..
어제 모 방송에서 신지애 관련 다큐를 방영했는데...
한참 예민한 나이에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두 동생들도 중상을 당해
심적으로 엄청 힘들었을 텐데도..
오히려.. 그런 슬픔을 골프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킨 어린 소녀..
둥글둥글한 외모에 미소를 잃지 않은 여유에서 왠지 부잦집 딸내미라고 생각했었는데..
월급 60만원의 목사를 하시는 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골프를 하였더라고요..
그런 어려운 과정속에서 꽃피운 신지애 선수
정말 나이에 맞지 않는 내적 성숙과 강한 정신력이
오늘의 신지애를 탄생하게 만든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작입니다.
박세리와 소렌스탐을 넘어서 세계최고의 여성골퍼로 더욱 커 나가길 빕니다...
신지애 선수 더욱 화이팅하세요...~~^^
17번 홀 통한의 보기로 "올해의 선수상"을 오초아에게 내주었더군요. 그것도 1점차로..
너무 아쉽지만, 그래도 잘 했습니다.
캐리 웹 선수 이후 13년만에 상금왕과 신인왕 그리고 다승왕을 동시에 가져간 선수가 되었네요.
당시, 캐리 웹 선수는 최저타수상도 동시에 석권했었지요.
사실, LPGA투어에서는 공식적인 상금왕과 다승왕 타이틀이 없습니다.
타이틀이 있는 것은,, 올해의 선수상, 최저타수상, 그리고 신인왕 뿐입니다.
게다가 신인왕 타이틀은 명예의 전당 입성 포인트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지애 선수는 한국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투어 상금왕에 올랐습니다.
박세리조차 소렌스탐이나 웹의 벽에 막혀 단 한번도 달성하지 못한 부분이지요.
또한 한국인 선수로서는 두번째로 다승왕에도 올랐습니다.
박세리 선수가 신인이던 98년에 시즌 4승을 올리며 소렌스탐과 함께 공동 다승왕에 올랐었습니다.
막판 보기로 역전을 당한 신지애 선수,,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불운한 상황으로 보입니다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올해는 사실 최근 십수년만에 LPGA 투어가 가장 혼전양상을 펼친 해였습니다.
오초아 선수의 부진(?)도 있었지만, 1승씩 나눠가진 선수가 그 어느 해보다 많았었고
게다가 대회수도 예년보다 7개정도 감소했습니다.
3승을 거둔 선수(신지애, 오초아)들이 다승왕, 상금왕, 올해의 선수상, 최저타수상을 휩쓴 것이
몇년만인지 모르겠네요.
그 위대한 박세리 선수가 시즌 5승을 두번이나 달성하고도
단 한번도 달성하지 못했던 타이틀들입니다. 2003년에 최저타수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그 땐,
소렌스탐 선수가 규정 라운드를 채우지 못해서 어부지리로 얻은 타이틀이었지요.
지애 선수, 다소 아쉽지만 미래가 워낙 창창한 선수이다보니 별로 걱정 안됩니다^^;
내년은 올해처럼 너무 강행군하지 말고 체력 조절을 잘 하여
골프 여제의 타이틀에 다시 한번 도전하길 바랍니다. 내년에는 꼭 메이저 타이틀도 함께 얻길 바래요.
오초아 선수도 수고 했습니다.
다음달에 결혼을 앞두고 마음이 설렐텐데, 그녀의 결혼생활도 그녀의 골프인생만큼 성공적이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일 많이 하시고요~
(오초아 선수는 크리스티 커 선수와 함께 LPGA 투어에서 선행과 기부를 많이 하는 선수로
유명합니다. 특히 커 선수는 필드에서는 굉장히 다혈질이고 괴팍하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입니다만,
여성들의 유방암 치료에 굉장히 적극적이라더군요. 오초아 선수는 부랑자 및 난민, 저소득층에 대한
구제 활동에 앞정서고 있고요. 한국 선수로서는 김미현 선수가 전성기 시절에 상당히 많은 기부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요즘은 벌이가 적어서 그런지 소식이 좀 뜸하네요. 암튼, 한국선수들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직접 실천하는 위의 선수들을 본받아 더 훌륭한 선수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박세리(32)와 신지애(21·미래에셋)가 2000년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맹활약을 펼친 골프 선수 10인에 뽑혔다.
미국 야후 스포츠의 골프 전문 블로그 데빌볼(sports.yahoo.com)이 27일(한국시간) 발표한 ‘2000년대 LPGA 투어 최고의 골프선수 10인(The best LPGA players of the 2000s)’에 따르면 박세리는 4위, 신지애는 7위에 이름을 올렸다.
데빌볼에 따르면 박세리는 1998년 LPGA 투어에 데뷔한 뒤 통산 24승을 거둔 활약상을 인정받아 4위에 뽑혔다. 박세리는 특히 2001년부터 2003년까지 13승을 거두는 등 2000년대 초반 투어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에 이어 ‘넘버 2’ 자리에까지 오른데서 후한 점수를 받았다.
신지애는 비회원이었던 지난해 3승을 비롯해 지난 2년간 LPGA 투어에서 6승을 거둔 활약상을 인정받아 7위에 이름을 올렸다. 데빌볼은 신지애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20승을 거둔 선수일 뿐만 아니라 신인인 올해 올해 상금랭킹 1위, 신인왕, 다승 1위에 오른 선수라고 평가하며 LPGA 투어에서 더 많은 시간을 활동했더라면 더 높은 순위에 이름을 올렸을 것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한편 1위는 통산 72승을 거두고 지난해를 끝으로 은퇴한 ‘영원한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이 선정됐다.
데빌볼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넘버 1’자리를 유지했고 2000년 이후 54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소렌스탐은 두 말이 필요없는 최고의 선수라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2위는 ‘세계랭킹 1위’인 로레나 오초아(멕시코)가 이름을 올렸다.
2003년 LPGA 투어에 데뷔한 뒤 통산 27승을 거둔 오초아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 연속 LPGA 투어 ‘올해의 선수’에 오르는 등 2000년대 후반 빛나는 활약을 펼치며 은퇴한 소렌스탐의 뒤를 이어 ‘여제’로 등극한 활약상을 인정받아 2위로 선정됐다.
이밖에 캐리 웹(호주)이 3위에 올랐고, 크리스티 커와 폴라 크리머(이상 미국)가 5위와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이 8위, 줄리 잉스터와 맥 말론(이상 미국)이 9위와 10위에 선정됐다
[최보식이 만난 사람] "돌아가신 엄마 보험금 훈련비로 써… 이젠 돈 너무 많이 들어와 무서워"
'밀리언 달러 베이비' 골프여왕 신지애 제 또래들이 만나면 무슨 얘기하는지 전 그게 정말 궁금해 키 작다고 생각한 적 없어 스스로 높이지 않으면 내가 높아질 수 없어
약속 장소에 도착해 출입구를 찾을 때, 바로 뒤따라오던 검은 외투에 펑퍼짐한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과 안경을 쓴 작은 키의 통통한 처녀가 "출입문은 이쪽이에요" 하고 말했다.
우리는 같이 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신 선수가 어디 있지?" 하며 두리번거렸다. 동석할 때까지 그가 신지애 선수인 줄 몰랐다. LPGA 3관왕(신인왕 상금왕 공동다승왕)에 오르고 올해만 50억원 이상을 벌어들인 '골프 여왕'의 위용이 이럴 수는 없었다.
나중에 그는 "그건 골프 안에서의 얼굴이죠. 바깥에 나가면 달라요"라고 했다. 그는 '선머슴' 같은 21세의 처녀였다. 나이로 치면 그 아버지가 나와 동갑이었다.
▲ 신지애 선수는“골프장 밖으로 나오면 세상 물정 모르는‘소녀’이기 때문에 내 또래 친구보다 내가 더 어리다”고 말했다./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한 인터뷰에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질문을 받고서 "아빠의 역할"이라고 말한 적 있지요?
"아빠가 왜 저를 힘들게 운동시키는지 그 이유에 대해 묻고 싶었던 거죠. 물론 다 제가 잘되라고 하시는 것이었지만요."
―신 선수의 아버지는 드라이버 스윙 1000회, 폐타이어 치기 400회, 운동장 20바퀴 돌리고, 퍼팅을 7시간씩 시켰다고 들었습니다. 나이 어렸을 때는 몰라도 나이가 들면 아버지의 말을 안 들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횟수를 강요한 적은 없고요, 어떤 연습은 제가 원해 더 하기도 했지요. 어쨌든 그런 혹독한 훈련에서 한 번도 반항한 적이 없었어요. 아빠도 이 점에 대해서는 제게 고마워하세요. 제가 나이가 들었다고 아빠 말을 안 들어요? 아빠는 항상 저보다 나이가 더 많잖아요. 그때로 되돌아가 훈련해야 한다면 정말 골프를 안 할 거예요. 뭐, 아빠가 하라면… 해야겠죠."
―같은 또래 친구에 비해 본인의 정신연령은 어떤가요?
"상황에 따라 다를 거예요. 골프장에서는 제가 경험이 많고 제 또래의 여자애라면 대부분 골프를 모르죠. 마음을 다스리는 면에서는 제가 더 강할 것 같지만, 골프장 밖으로 나오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녀'이기 때문에 제가 더 어릴 수도 있고요. 친구들이 하는 공부나 쌓은 지식 면에서는 제가 많이 부족해요. 저 자신이 참으로 이중적이죠."
―어떤 부분에 지식을 더 쌓고 싶어요?
"저는 호기심이 많아요. 특히 그림이나 물리, 생물학 쪽에 관심이 있어요. 공부를 못해서 운동을 한 것이지만 운동을 하다 보니 더욱 공부와 멀어졌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골프를 시작했어요. 물론 아빠가 시켜서였죠."
▲ 손가락 마디가 굵고 악수하면 두꺼운 질감이 느껴지는 손.
―골퍼로서의 체격조건으로는 결코 좋은 조건이 아니지요?
"나쁜 조건도 아니에요. 오히려 안정감이 있으니까요."
―'내 키가 조금만 더 컸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뜻인가요?
"전 제 키가 작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동의할 줄 알았는데요.
"제가 자신을 낮추면 낮아질 수밖에 없어요. 저 자신부터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해야 높아지지, 이걸 이기려고 낑낑 노력해야 탈출하지요. 저부터 체격조건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해낼 수 없어요."
―중3 때는 '나도 여자다. 일단 살을 빼고 싶다'며 두 달간 조깅해 3kg 감량했지요. 하지만 아버지가 '체력이 달려 안 된다'며 한약을 먹여 원상 회복시켰다지요. 이제 아가씨이니까 몸매에 대해 더욱 생각을 하겠지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저는 운동선수이고요, 이제 시작 단계고 해야 할 게 많아요. 좋은 성적을 내고 지금처럼 꾸준하게 가야 해요. 그러니 몸매에 신경 쓰기에는 시간이 아까워요. 그리고 먹는 것은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많이 먹지는 않아요."
―그런데 얼마 전 인터뷰에서 "앞으로 10년만 골프를 하고 안 하겠다"고 했다면서요?
"골프만 치기에는 너무 인생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는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은데, 골프만 계속 치면 나중에 돌아봤을 때 후회가 생길 것 같아요. 지금 내게 골프가 100점이라도 내 인생을 통틀어 보면 결코 100점에 훨씬 못 미칠 거예요."
―사람 살면서 하나도 잘하기 어려운데.
"제가 10년을 더 한다는 것은 '짧고 굵게'라는 말과 같아요. 지금은 골프에만 집중하고 나중에는 골프에서 벗어나 다른 것에 집중하겠다는 것이에요. 어떤 시기에 하나씩 하나씩 집중하면, 나중에 돌이켜보면 여러 개의 삶이 되겠지요."
―어떻게 살면 의미 있는 삶일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군요?
"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엄마 때문이죠.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으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이거든요. 사람이 사는 것에는 끝이 있다는 거죠. 사람의 일생과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시간에 대해 알게 되니까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게 됐죠. 한정된 삶이라면 좀 더 완성도가 있는 삶을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거죠. 히히, 너무 철학적인가요."
―사람이 사는 것에 끝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 지금의 행위조차 허무하지 않나요?
"허무하지 않게 되기 위해 지금 열심히 사는 거죠. 나중에 돌이켜 봐서 지금 하는 행위가 허무한 것이 되지 않도록 말이죠. 미리 허무하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야말로 허무하죠."
―중3 때(2003년)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그때 탄 보험금을 신 선수의 훈련 경비로 썼다면서요?
"그때 아빠가 방바닥에 통장을 툭 던지며 '이게 엄마 죽음에 대한 보험금이다. 이 돈을 지애 훈련 경비로 쓰자'고 했지요. 빚을 제하고 남은 보험금 1700만원이었어요. 그때 내 마음속에는 가족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일념뿐이었죠. 골프는 '멘털(정신)게임'인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제가 강한 '멘털'을 갖게 된 거죠. 그 다음 해부터 시합 성적도 좋았고요. 올해 상금이 50억원이 넘었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그때의 1700만원이 지금의 50억원보다 훨씬 가치가 있었다고 봐요. 결코 따라갈 수가 없어요."
―돈의 가치에 대해 일찍 알았지요?
"골프가 워낙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인 데다 절박한 상황까지 갔으니까요. 돈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죠. 저는 돈이 없어 어렵던 시절 주위 분들이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30만원씩 다달이 부쳐주시던 몇몇 분들이 계셨어요. 기회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저처럼 그런 기회를 주고 싶어요. 어려웠을 때 받은 도움으로 제가 지금 많은 돈을 벌게 된 거니까요. 다른 사람들도 도움을 받아야 많이 벌 수 있게 되겠죠. 돈은 그렇게 계속 돌아야 한다고 봐요.
하지만 지금처럼 너무 많이 들어오니까 한편 무섭다는 생각도 들어요. 돈이 없다가 갑자기 많이 생기면 사람이 쉽게 바뀐다잖아요. 나도 그렇게 바뀌게 될까 걱정하죠. 물론 지금은 돈에 대해 더 이상 생각을 안 해요. 저는 시합에만 집중하면 되지, 돈 벌려고 골프하는 시기는 한참 지났잖아요. 이제는 제 목표와 명예를 위해 골프를 하죠. 번 돈으로 나중에 뭘 하겠다는 계획도 없어요."
―동생과 함께 카페를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지요. 왜 카페지요?
"여동생이 고3인데, 일찍 영업을 해보고 경험을 쌓으면 나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빠도 허락하셨어요. 카페를 생각한 것은 선수들끼리 골프 치고 나와서 쉽게 어울리는 공간이 카페거든요."
―교제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골프 선수들이지요?
"화제도 늘 골프죠. 골프 얘기하는 게 당연하고 편안하죠. 그러니 다른 일반 사람들과는 친해지기 어려워요. 제 또래 학생은 골프에 대해 모르죠. 이들과 섞이면 대화가 안 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아요. 제 또래의 친구들은 어울리면 무엇을 화제로 삼는지 전 그게 정말 궁금해요. 학교에 잘 다니고 여가를 즐기는 것도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요."
―아마 그 친구들은 신 선수를 훨씬 더 부러워할 겁니다.
"상대적이죠. 항상 남의 떡이 더 커보이죠. 예전에 비해 주목받고 나니까 더욱 일반적인 삶이 없어지는 것이 아쉽죠. 귀국하니 스케줄에 짜여 분(分) 단위로 움직여요. 10년 뒤에는 일반 사람들처럼 저도 여유를 즐기면서 살고 싶어요."
―그 여유를 지금은 왜 안 가집니까?
"지금은 목표가 있고 편안함을 느낄 시기가 아니죠. 더 노력하고 발전해야 하는 시기죠. 지금 편안함을 느끼면 배부른 거죠."
―골프채를 잡은 뒤로 '왜 이걸 해야 하느냐'며 회의가 든 적이 없나요?
"그런 건 없어요. 골프는 저를 만들어줬어요. 골프 하기 전에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지만 그나마 즐기고 긍정적이 된 것은 골프를 치면서 그렇게 됐죠. 골프를 통해서 많은 걸 얻고 있거든요."
―남자 친구도 얻었나요?
"히히, 친구들이야 많죠."
―술도 마십니까?
"마셔본 적은 있죠. 하지만 골프란 예민한 운동이라 술을 마시고 나면 그런 감각이 줄어들어요."
―신 선수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대담한 역전승을 많이 해 '파이널 퀸(Final queen)'이라는 별명도 붙었지요. 한 샷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면 누구든 흔들릴 겁니다. 그런 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요?
"저도 흔들려요. 안 흔들리면 이상하죠. 흔들리는 이유는 내가 우승에 가깝게 와 있기 때문이죠. 그런 기회가 왔으니 흔들리는 거지 우승과 상관없다면 안 흔들리죠. 이럴 때 내가 '마인드 컨트롤'을 잘한다고들 하지만 '컨트롤'은 조절한다는 뜻이잖아요. 사실 저는 '조절'하는 게 아니고 마음의 기본 바탕에 있어요. 기본 바탕에서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요. 떨리는 상황일 수밖에 없다는 걸 편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이죠."
―이번 LPGA 마지막 시합에서 한 타 차로 '올해의 선수상'을 놓쳐 눈물을 보였다면서요?
"울었던 게 저한테 도움이 됐어요. 그만큼 아쉬움이 있었니까요. 하지만 그 순간뿐이었어요. 속에 있는 답답함이 나와서 지금은 훨씬 더 좋아졌어요."
―신 선수의 어휘 구사능력을 보면 혼자서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책을 좋아해요. 소설과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어요. 두 달 전에 읽은 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은 감동적이었어요. 사람은 자기의 생각으로만 모든 걸 판단하지 말라고 했어요. 심리학 책도 제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휴식시간도 있고 골프채를 안 잡고 쉬는 날도 있겠지요. 그때는 무얼 해요?
"쉬는 날이 있기는 해도 충분한 시간은 아니죠. 첫 번째는 잠을 보충하려고 하죠. 잠은 체력과 연관이 되어 있죠. 그다음에는 음악을 듣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죠. 한때는 컴퓨터 게임을 즐겼지만, 이제는 완전히 흥미가 없어졌어요."
―레이스광(狂)이라고도 하더군요.
"초등학교 때 학교 운동장에서 아빠로부터 운전을 배웠어요. 운동 감각을 키운다는 차원이었지만 제가 운전을 좋아했고요. 시속 240㎞까지 페달을 한 번 밟아본 적은 있지만 막 달리지는 않아요.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니까요. 무엇보다 아빠가 운전이 위험하다며 운전할 시간을 많이 안 주세요."
―골프시합 투어 내내 아버지가 따라다니면 불편할 때도 있지요?
"그럴 때도 있죠. 아빠는 골프가 완벽한 운동이 아닌데도 늘 완벽을 요구하시죠. '생각하는 골프를 해라'고 하시죠. 히히, 내가 단순하게 보이는 모양이에요. 지금 저는 훌륭한 딸이 되려고 하는 과정에 있어요. 오랫동안 훌륭한 딸이 되고 싶어요."
"너무 못생겼다 그 이외에는 별로 생각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당연히 고생한 발이지만 저한테는 그냥 웃긴 작품이죠. 사실 발레리나 중에서도 저처럼 못생긴 발도 드물어요. 박지성씨 발도 못생겼다면 그만큼 고생하셨고 그만큼 아프셨겠죠. 대신 잘 하고 계시니까는 그만한 보람이 있죠. 만약에 다른 사람들이 그 사진을 보고 배울 수 있다면 좋은 거죠."
월드컵 특집으로 진행된 SBS '한수진의 선데이클릭'에 출연한 세계적인 명문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발레리나 강수진은 네티즌 사이에 화제가 됐던 자신의 발과 축구스타 박지성의 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독일월드컵을 위해 그동안 피나는 훈련을 해온 태극전사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강수진은 독일 현지에서 이뤄진 제작진과의 대담에서 발레와 인생에 대해 그동안 아껴온 얘기를 털어놨다.
몇년 전 인터넷에서는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라는 이름의 사진 한 장이 떠돌며 네티즌들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무대 위에서 요정처럼 빛나는 프리마 발레리나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피멍으로 얼룩진, 흡사 고목 나무 같아 보이는 두 발은 충격과 함께 가슴 먹먹한 감동을 안겨줬다.
그의 발에는 하루 열아홉시간씩 지독하게 연습에 매달렸던,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짙게 배어 있었다. 남들이 2~3주 동안 신는 토슈즈를 하루 4켤레나 갈아 신을 만큼 혹사 당했던 두 발은, 지금의 성공과 박수 갈채가 거저 얻어진 게 아니라고 똑똑히 말하고 있었다. 그 사진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강수진도 그런 사실을 알았을까.
“한국에 계신 분들이 말씀을 해주셔서 인터넷으로 제 발 사진을 봤어요. 힘들 때면 많은 분들이 제 발 사진에 달아 주신 댓글을 보면서 역으로 제가 받기도 했죠.”
그는 감추고 싶었던 못생긴 발이 세상에 공개된 것이 우연이었다고 했다.
“결혼 전에 남편이 제 발이 못생겼다고 놀리면서 재미로 사진을 찍어뒀거든요. 근데 저희 집을 방문하신 방송 PD 한 분이 우연히 그 사진을 보시고는 카메라로 찍어가셨죠. 얼마 후 그 사진이 저에 관한 다큐멘터리에 소개됐고, 화면을 캡쳐한 사진이 인터넷으로 퍼져나간 거예요.”
예전보다 발이 좀 예뻐졌냐고 묻자 소녀처럼 깔깔대며 웃었다.
“요즘도 남편이 장난 삼아 제 발 사진을 찍는데, 그걸 보고 놀랐어요. 저는 좀 나아진 줄 알았는데 더 못생겨졌더라구요. 예전이 피카소였다면 지금은 피카소 할아버지에요.”
<박지성의 발>
이런 피나는 노력 덕분에... 훌륭한 선수로 성장한 박지성 선수...
정말 큰 감동입니다^^ 박지성 선수 화이팅... 평발은 이겨낸 박지성 선수^^
박지성, 당신의 발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최근 웹상에는 ‘박지성의 또 다른 심장’이란 제목으로 ‘박지성 선수의 발’ 사진이 자주 올라오고 있습니다. 딱딱하게 뭉쳐 있는 굳은살과 발등 위에 상처들이 눈에 띕니다.
또, 작은 글씨로 박지성 선수 발 이미지 위에 “그는 운동선수라고 믿기 힘들만큼, 작은 힘줄조차 도드라지지 않은 뽀얗고 정감 가는 손과 발을 가졌다. 사진 속의 험한(?) 모습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발끝에 잔뜩 힘을 줘서 연출한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축구화 속에서 갈라진 발톱과 가장자리를 따라 딱딱하게 뭉쳐있는 굳은살. 그리고 보호대도 대어보지 못한 채 찍혀버린 수많은 상처가 있었다”라는 설명이 보입니다.
▼“상처투성이의 발, 안타깝네요. 당신은 진정한 최고입니다!” ▼“영광스런 발이죠. 저 발로 온 대륙을 누비고 뛰어다니고 있으니….”
위 이미지를 본 네티즌들은 이구동성 “여기저기 굳은살로 가득한 발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발이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위 이미지와 함께 박지성 선수의 ‘풋 프린팅’ 사진도 네티즌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바로 지난 2003년 7월 수원시청에서 제작한 박지성 선수의 풋프린팅 사진입니다. 풋프린팅 관련 사진들은 현재 박지성 선수의 공식 사이트인 (http://jisung.naver.com)에 올라와 있습니다
박지성 선수의 풋프린팅
▼“정말 평발이네요. 평발인 제 친구는 조금만 뛰어도 아파하던데, 지성선수 눈물나올 정도로 존경합니다.” ▼“평발 심하면 군대도 면제된다고 들었습니다. 평발이면 뛰기 힘들 텐데… 그런데도 경기 내내 쉬지 않고, 뛰어다니니 정말 대단합니다.” ▼“평발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더 뛰었겠죠?”
박지성 선수는 매 경기마다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지칠 줄 모르는 ‘왕성한 체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워낙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니 네티즌들은 이런 그를 두고 “박지성 선수는 마치 심장이 두 개인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하지요. 그러나 그는 잘 알려진 대로 ‘평발’입니다. ‘평발’이라는 신체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축구선수로 발돋움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그의 발 사진에는 “무수한 노력으로 평발을 딛고 성공한 그가 자랑스럽다”는 댓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