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가(五倫歌)1- 박인로(朴仁老)
父子有親
아비는 나으시고1) 어미는 치옵시니2)
호천망극(昊天罔極)3) 이라 갑흘길이 어려우니
대순(大舜)의 종신성효(終身誠孝)4)도 못다한다 하노라
인생백세(人生百歲) 中에 질병(疾病)이 다 이시니
父母를 섬기다5) 몃해를 섬길넌고6)
아마도 못다할 성효(誠孝)를 일즉 벼퍼 보렷로라7)
父母 섬기기를 지성(至誠)으로 셤기리라
계명(鷄鳴)8)에 관수(盥漱)9)하고 환한(煥寒)을 못자오며10)
날마다 시측봉양(侍側奉養)11)을 몰신불쇄(沒身不衰)하오리라12)
세상사람들아 부모은덕(父母恩德)13) 아느산다14)
父母 곳 아니면 이몸이 아실소냐
생사장제(生死葬祭)15) 禮로써 시종(終始)갓게16) 섬겨서라17)
삼천죄악(三千罪惡)18) 中에 不孝애 더니업다19)
夫子20)의 이말슴 만고(萬古)애 대법(大法)21)삼아
아모려 불우불이(不愚不移)22)도 밋처알게 하렷로다
주 석
1) 낳으시고. 2) 기르시니.
3) 하늘이 끝없이 크고 넓은 것처럼 부모의 은혜가 끝없음을 이름.
4) 부모 임종 때 옆에 모시는 효성.
5) 섬긴다고. 6) 섬길 것인고.
7) 베풀어 보겠노라. 8) 새벽녘 닭이 울 때.
9) 관수(盥漱)하고 : 손을 씻고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하고서.
10) 煥 : 따스할 환. 寒 : 찰 한.
날씨가 덥고 추움에 따라 부모가 입으실 옷을 가려서 물어보며.
11) 웃어른 곁에 있으면서 받들어 모심.
12) 직역하면 몸을 다 바치고 쇠하지 않음. 즉 희생적으로 봉양하되 끝까지 달라짐이 없음.
13) 어버이가 자식한테 베푸는 은혜와 보살핌.
14) 아는가. ' ~나슨다'는 '~는가' 느냐?' 의 옛말.
15) 장제(葬祭)는 장사와 제사를 지내는 일.
16) 처음부터 끝까지.
17) 섬기어라 '~ 어스라' ~ 아스라'는 '~ 어라. ~아라'의 옛말씨.
18) 효경(孝經)에 나오는 공자의 말로서, 사람이 저지르는 온갖 범죄와 악행.
19) 더한 것이 없다는 뜻의 옛말.
20) 원래 성현을 일컫던 말이나 어느덧 공자만을 가리키는 고유칭호가 되었다.
21) 큰 법도, 가장 중요한 도덕률.
22) 아무리 가르친다 하더라도 지자(智者)가 될 수 없는 우자(愚者)
君臣有義
성은(聖恩)이 망극(罔極)23) 한줄 사람들아 아나산다24)
성은(聖恩)곳 아니면 만민이 사로소냐25)
이몸은 망극(罔極)2한 성은(聖恩)을 갑고말려 하노라
직설(稷契)26)도 아닌몸에 성은(聖恩성)도 망극(罔極)할샤
백번(百番)을 죽어도 갑흘닐이 업것마는
궁달(窮達)27)이 길이달라 못뫼압고28) 설윗로라29)
사람 삼기실제 군부(君父)갓게 삼겨시니
군부(君父) 일치(一致)라 경중(輕重)을 두로소냐30)
이몸은 충효(忠孝) 두 사이에 늘글줄을 무르로라31)
심산(深山)에 밤이드니 북풍(北風)이 더욱차다
옥루고처(玉樓高處)32)에도 이바람 부는게오
긴밤의 치우신가 북두(北斗)34)비겨 바리로다35)
이몸이 죽은 後에 충성(忠誠)이 넉시되아
놉히놉히 나라올라 창합(閶闔)36)을 불러열고
상제(上帝)께 우리성주(聖主)를 수만세(壽萬世)37)케 비로리다38)
주 석
23) 끝이 없음.
24) 아느냐 '~다'는 의문종지형.
25) 살아갈 수 있을 것이냐.
26) 직(稷)과 설(契)은 각기 인명으로서 요순시대의 현신(賢臣)들이다.
27) 고궁(固窮)과 영달(榮達), 잘됨과 못됨.
28) 못 모시고.
29) 서러워하노라.
30) 두겠느냐.
31) 모르겠노라.
32) 좋은 누각(樓閣)이 있는 높은 곳. 궁궐을 뜻함.
33) 부는 것이오?
34) 의존하여, 의지해서.
35) 바라다보노라.
36) 궁전의 대문, 여기서는 천문(天門).
37) 만년을 장수하게.
38) 빌겠도다.
부부유별(夫婦有別)
사람 내실 적에 부부 같게(짝을 이룸) 삼겼으니
천정배필(하늘이 정한 짝)이라 부부같이 중할쏘냐
백 년을 아적(아침)삼아 여고슬금(화목) 하렷노라
형우제공(兄友弟恭)
동기로 세 몸 되어 한 몸같이 지내다가
두 아운 어디 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고.
날마다 석양 문외에 한숨 겨워 하노라.
이해와 감상
조선 중기에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시조. 25수의 장편 연시조로 ≪노계집 蘆溪集≫에 전한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을 주제로 한 5수, 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형제우애를 주제로 한 각 5수, 붕우유신(朋友有信)을 주제로 한 2수에다 작품의 끝에 총론 3수를 덧붙여 마무리한 구성으로 보아 박선장(朴善長)의 <오륜가> 형식을 계승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제를 표출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오륜을 힘써 실천할 것을 직설적으로 권유하는 교술성이 강한 것에서부터 자신의 의연한 태도와 결의를 스스로 다짐하는 것, 혹은 자신의 심정과 처지를 정감 깊게 노래함으로써 서정성을 강하게 보이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 가운데 북풍의 찬 바람에 임금을 걱정하는 충정을 담은 작품과, 두 아우를 잃은 작자의 외로움을 처연하게 노래한 작품은 서정성과 형상성이 특히 돋보인다.
오륜가(五倫歌)2- 박인로(朴仁老)
아비는 낳으시고 어미는 기르시니
호천망극(昊天罔極)이라 갚을 길이 어려우니
대순(大舜)의 종신성효(終身誠孝)도 못다 한가 하노라.
심산(深山)에 밤이 드니 북풍(北風)이 더욱 차다.
옥루고처(玉樓高處)에도 이 바람 부는게오.
간밤에 추우신가 북두(北斗) 비겨 바라노라.
남으로 삼긴 것이 부부같이 중할런가.
사람의 백복(百福)이 부부에 갖았거든
이리 중한 사이에 아니 화(和)코 어찌하리.
동기(同氣)로 세 몸 되어 한 몸같이 지내다가
두 아운 어디 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고.
날마다 석양문외(夕陽門外)에 한숨 겨워 하노라.
벗을 사귈진댄 유신(有信)케 사귀리라.
신(信) 없이 사귀며 공경(恭敬) 없이 지낼소냐.
일생(一生)에 구이경지(久而敬之)를 시종(始終) 없게 하오리라.
자세히 살펴보면 뉘 아니 감격하리
문자(文字)는 졸(拙)하되 성경(誠敬)을 새겼으니
진실로 숙독상미(熟讀詳味)하면 불무일조(不無一助) 하리라.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그가 76살이던 만년에 지은 ‘오륜가(五倫歌)’다. 자신이 가난 속에서도 오로지 실천궁행했던 유교적 가치규범을 전통 양식에 따라 표현한 것이다. 각 수의 제목은 차례대로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형제유애(兄弟有愛), 붕우유신(朋友有信)이다. 맹자의 오륜(五倫)에는 장유유서(長幼有序)인데 여기서는 형제유애(兄弟有愛)로 하였다. 마지막 수는 총론이다. 각 제목 마다 다섯 수씩이지만 붕우유신은 2수만 전하고, 총론은 3수이다. 그 중에서 각각 한 수씩만 뽑았다.
첫 수에는 <소학(小學)>에서 말한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그 은혜를 갚고자 하나 하늘같아서 끝이 없네.’ (父生我身 母鞠吾身 欲報其德 昊天罔極)라는 말을 나열하고 순(舜) 임금의 효도를 예시하였다. 둘째 수는 자신의 처지에도 임금에 대한 충성은 변함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초장에서 북풍이 부는 깊은 산의 밤은 궁벽한 산골에 숨어사는 자신의 처지를 말한 것이다. 중장에서 임금의 은혜가 미치지 않는 이런 곳에서도 백성된 그로서는 유교의 가르침대로 임금이 계신 옥루고처를 염려한다. 그리하여 종장에서 북두(北斗) 곧 임금과 왕권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에 뛰어들었던 충의(忠義)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셋째 수는 부부가 인간생활의 출발점이므로 서로 화락할 것을 강조한다. 비록 남으로 만났지만 부부가 있어야 부자가 생겨나고 가정이 있어야 사회와 국가가 성립되는 만큼, 인간의 모든 행복은 부부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부부는 인간생활의 근원이라고 한 것이다. 넷째 수는 자신의 세 형제가 우애롭게 지내다가 지금은 혼자 살아남아 탄식하는 정경을 그려서 형제가 우애할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섯째 수는 벗을 사귈 때는 신의와 공경으로 오래 변함없이 사귈 것을 권장한 것이다. 마지막 수는 자신이 이 작품을 지은 까닭을 밝혀놓은 것으로 인륜도덕을 강조한 이 노래를 읽고 느껴서 삶의 지표로 삼으라는 권고다. 전란의 혼란상으로 무너져가는 가치규범을 다시 바로잡으려는 그의 간절한 노력이 이 작품으로 제시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시조는 또한 조선 후기로 갈수록 경직화되어 가는 가치규범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시조가 관념적 가치의 메마른 방출구가 될 수 있다는 위험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