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 침묵
넉넉치 못한 뜰이지만 목련이 뚝뚝 떨어지던 날, 온밤을 뒤채며 잠 못 이룬 어무이가 전화로 그랬다.
“아범아, 어제 밤에 목련이 지느라 밤새 내가 한 잠도 못 잤다.”
눈물 그렁그렁한 '새댁 꽃'이라고 늘 불쌍타하며 마음에 두셨던 어무이는 꽃바람이 한 차례 불어가는 이른 봄부터 뜨락에 홀로 서 있는 목련에 마음을 쓰고 계셨다. 재작년에 팔순을 지낸 파파할매가 무슨 새댁시절이 그리 생각이 나는지. 어쩜 목련에서 당신을 보는가 보지.
“저 목련 꽃잎을 보거라. 이파리도 움트지 않은 채로 꽃부터 피우다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꼬.”
그렁그렁 눈물을 그득하니 달고서 꽃 무게에 힘겨운 가지가 휘청일 때마다 왈칵하고 눈물을 쏟아내는 목련의 추락을 안타까워하고 계셨다.
맏이인 나를 잉태하셨을 평화동 초가에도 목련이 있었을까?
내가 보낸 사춘기와 장가 갈 때까지 살았던 화성동(花城洞), 이름 그대로 꽃동네에 살 때는 목련은 물론 감나무와 산작약, 모란과 채송화로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온갖 꽃으로 화단을 아름답게 수 놓던 우리 어매. 그 시절이 우리 어무이한테는 가장 꽃다운 시절이었을 게다. 내가 장가들고 오랫동안 살았던 꽃동네를 떠나 이곳 신흥 주택단지로 멋진 집을 지어서 이사 올 때도 두고온 꽃이 마음에 걸려하셨지.
기억이 난다.
양옥으로 새 집을 짓고 흐뭇해하시던 아버지에게 "화단자리는 있능교?" 하고 채근할 정도로 어무이는 꽃 가꾸기를 좋아하셨고 진정으로 꽃을 사랑하셨다. 그때 우리 아배 대답은 이랬다. "촌스럽게, 정원에는 잔디를 깔 거야. 애시당초 상추를 기르거나 허접스런 꽃 따위는 생각도 말그라."
이사할 때에 이십 년을 훌쩍 넘은 유자 화분을 제일 먼저 챙기셨으니까. 정원석을 놓고 잔디를 심을 때도 어무이는 목련 모종을 구해 오셔서 안방 창문 앞에 심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거실 앞에는 석류 가지로 그늘을 만들고 우물가에는 앵두가 있어야지 하고서 정원에 뽑아낸 수돗가에는 앵두를 심으셨다.
그리고 목련은?
우리 집 구조는 이랬다.
대문을 열면 양 옆으로 붉은 벽돌이 보초를 서는 가운데 위로는 푸른 하늘이 참 좋았다. 한참이나 계단을 올라오면 눈이 확 트이게 짙은 초록의 잔디밭이 펼쳐진 정원과 붉은 이층 벽돌집이 아담하게 자리 잡은 양옥이었다.
목련과 모과나무는 대문에 가까운 안방 창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루종일 마당을 등지고 있는 소파에서 티브이를 보면서 소일하고 계신 어무이한테 정원의 나무들 보기가 힘들다.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에 어렵게 다녀올 때나 잠시 볼 수 있을까. 뇌졸중으로 쓰러진지 십삼 년이 훌쩍 넘은 어무이한테 목련은 볼 수 없는 곳, 사각지대에 자리를 잡은 셈이다. 어쩌면 목련은 어무이한테 눈으로 보는 나무가 아니라 귀로 들으려고 마음에 심은 게 아니었을까.
새파랗게 잔디가 솟아나는 봄이 오면 성화를 부리기 시작하신다.
시골에 사는 이모를 채근하기 때문에 말이다. 작약을 심어야 하고 때맞춰 봄 꽃모종을 챙겨야 하는데, 더디 오는 이모를 두고 조바심 치신다. 두어 마지기 밭농사를 짓는 이모 또한 홀로 사시는 할매인데 어쩌랴.
정원에 피는 꽃을 보지 못하고 종일토록 앉아 계시노라 소파에서 등뒤로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어찌 볼까만, 몸으로 느끼는 어무이의 정성은 대단하다. 임자가 돌보지 못하는 정원이지만 봄이 오고 여름에 들어서도 온갖 꽃으로 만발한 꽃동산을 이룬다. 새댁 시절부터 꽃에 쏟아 온 어무이의 정성을 갸륵하게 여기시어 꽃은 필 자리에 스스로 꽃을 피워서 보은을 하는 가 보다.
참 이상도 하지.
목련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눈물을 쏟아낸 밤, 밤새 한 잠도 이루지 못하고 가슴에 뚝뚝 꽃 지는 소리에 "왈칵하고 눈물만 나는게 아니겠니."
벚꽃이 한창이던 작년 사월 초순에 어무이는 팔순을 맞으셨다. 맏이인 나를 배 속에 가진 체로 맞이한 육이오 사변을 가누기 힘든 몸으로 피난을 다니면서 전장터로 떠난 아버지 걱정에 힘든 줄 몰랐다 했다. 포성이 가까이서 쿵쿵하고 울리는 전장 터에서 날 나으셨고 일찍이 청상이 되신 시어머니하고 생계를 잇기 위해 조그만 점방을 차리고 어찌어찌해서 육남매를 키우노라 잠시라도 쉴 틈이나 있었을까?
평생을 고부간에 큰 탈 없이 사시면서 할머니 봉양에 지극하셨던 어무이가 파파 할머니가 되어서 재작년에 팔순을 마지했다.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해서 여간 불편하셨을 어무이가 손주를 데리고 내려가자 감격에 겨워서 "내사 괜찮다" 하고서는 눈물로 밥을 말아서 드시던...... 평소에 제대로 봉양 못한 육남매 가슴을 찡하게 감동시킨다. 누가 그랬지 '어머니는 눈물없이 부를 수 없는 존재'라고. 오랜만에 내려온 우리 하나하나 당신 품에 안고서 등어리를 다둑이며 고맙다고 한다. 뭐가 고마워요 하면 "와줘서 고맙지."
벌써 10년이나 되었던가. "어멈아, 나도 성당에 다닐란다." 하는 게 아니겠어.
깜짝 놀란 며느리에게
"너들처럼 기도를 하다가 보면 널 만나겠지, 보고싶을 때는 언제라도 기도 안에서 내새끼들을 볼 수 있지 않겠니"
얼마나 놀랐는지 올라오면서 우린 가슴이 멍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보고 싶으셨으면 기도 안에서는 새끼들을 만날 수 있으려니 하고 욕심을 내셨을까. 기도에 대해서 이만큼 똑 부러지게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 나와 보라고 해.
바깥 거동을 하지 못하는 어무이를 위해서 아내는 시골본당 신부님한테 전화를 했다. 그곳에서 우리 남편이 영세를 받았다고. 그 남편이 지금 서울에서 교리선생을 하고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혜택을 달라고 생때를 쓴 게지 뭐.
오묘하신 섭리였어, 평신도인 자매님이 우리 집으로 와서 교리를 했다. 교리선생을 오래 한 내가 보기에도 참으로 대단했다. 정성스럽게 기도문을 일일이 만들어 온 거 하며, 큼직한 글씨로 쓴 카드로 쉽게 기도할 수 있게 했고 더듬거리는 어무이가 기도문을 외울 수 있게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무이는 정말 열심히 배웠고 우리를, 눈에 밟힌다는 손주와 손녀를 기도 안에서 얼마나 자주 만났는지 몰라.
목련이 지고 섭섭해 하시던 어무이는
“이젠 말이다. 앵두가 얼마나 곱게 피웠는지 몰라, 아범아.”
어쩜 어무이는 어려서 살았던 일본 땅 시즈오까, 두 칸짜리 다다미 집 우물가에 피었던 앵두를 기억해낸 게지 뭐.
이제 우리 어무이 이름을 밝힐까 봐. 김 도앵, 한자로 복숭아桃자에 앵두나무櫻자라, 이렇게 예쁜 이름 가진 사람 어디 나와 보라고. 이름에도 어무이와 꽃은 운명적인 거 같다. 앵두는 목련과는 달리 화사하기 짝이 없다. 봄처녀 바람 나게 하는 앵두의 흰 꽃 무더기는 꼭 우물가에 있어야 제 맛인가?
오늘도 외롭게 지키고 계신 고향. 우리 집 정원을 내다보며 해바라기를 하고 계실 어무이와 아부지. 촛불을 켜고 기도는 어떻게 하실까. 묵주를 돌리다가 다급한 기분이 들면 분명 절에서 하던 방식대로 두 손바닥을 비비고 고개를 주억이며 절을 하고 계실 어무이한테 이봄이 가기 전에 정원에 나오셔서 호미를 들고서 화단의 흙을 곱게 일굴 수 있게 거동이라도 하게 해줬으면 한다.
덧붙이면, 어찌 고부간에 그렇게 닮았을까.
당신 며누리도 못잖게 꽃을 좋아한다는 걸. 넓지도 않은 아파트 베란다에 아내가 가꾸는 화분이 몇개나 될까. 관음죽하고 군자란같이 신혼 때부터 함께 살아온 큰 화분이 있는가 하면 주먹만한 선인장류까지. 사십 여개가 넘어가는 화분을 가꾸느라 내 아내는 오늘도 바쁘다.
작년에 유럽으로 성지순례 간다고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골몰하던 아내가 이른 아침에 보니 화분마다 나무젓가락(와루바시)을 하나 또는 두 개, 어떤 것은 세 개까지 꽂아둔 게 아닌가. 무슨 간첩 난수표 보듯이. 내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의미를 몰라서 물었더니, 심각하게 티브이 옆구리에 노란 포스잇에 써둔 게 참 재미나더라고. 한 개는 일주일에 물을 한 번 주는 거고, 두 개는 두 번이라나. 이렇게 간단한 걸. 물을 줄 때는 수요일 아침 열 시던가. 시간까지 적어놓고도 못 미더웠던지 아침 출근 길에 나서는 나에게 잘 다녀올게 하는 말보다 화분에 물 주는 걸 까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대요. 내가 삐친 얼굴로 나가니까 비행장에서 문자로 "보내줘서 고마워. 잘 다녀올게. 그리고 화분에 물 주는 거 잊지 말고"
내 어찌 우리 어무이를 닮은 아내를 미워할 수가 있을까?
이 번에 오래 살던 집을 옮기려 아내와 같이 집 보러 다닌 성당 자매님 이야기를 들어볼까.
아파트 보다 화단을 꾸밀 수 있게 주택도 마음에 두었던가 보다. 뭐 일이 쉽지 않아서 연립까지 보았는데 어느날, 이거다 하는데 맙소사, 영 엉터리더래요 집 구조가. 그런데 덜 떨어진 아내는 그집의 넓직한 베란다를 보면서 딱 찍더래. 아마 화분을 들여 놓기 안성마춤이었겠지. 정신차리시옵소서 하고 겨우 달래서 나왔다고.
내가 그랬다. 우리 아이들 보고 "너들은 암만해도 엄마한테 순서가 삼 등이래" 그럼 일 등은? "보면 모르니. 꽃이지 뭐" 참, 이 자매한테, 순례를 떠나고서도 국제전화를 해서 우리집에 화분이 잘 자라고 있는지 가보라고 부탁하더래.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로 나와서 꽃들을 스윽~ 둘러보며 눈꼽을 뗀다.
그리 좋지도 않은 머리를 굴리면서 "어째 저놈이 쉬원찮네. 오늘 분갈이를 할까부다" 식구들 아침 끼니보다 꽃한테 마음을 빼앗긴 아내를 믿고 살아온 내가 대견하잖은가?
이래 저래 봄이 오면 산에 마음을 빼앗긴 체 산행길에 올라 오늘은 진달래능선을 타고 백련사로 내려와야지. 하는 덜 떨어진 남편하고 사는 아내가 기특하다. 지 까페에 꽃사랑 하고 아이디를 정했더니 얼마나 깔깔 웃는지. 지가 무슨 꽃을 사랑합네. 가당치도 않다고 비웃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시어머니하고 그렇게 똑같이 닮아가는 아내가 주름살까지 닮아서야 되겠는가. 오늘은 질 좋은 영양크림을 사다가 줘야지.
그런데 말이다. 혹시나 영양이 들어간 거라고 화분에 덜어줄런가 몰라. 참자 참어.
아내가 핸폰을 바꿨다.
배경화면에 뭘 올렸는지 아는가?
작년 겨울에 다녀온 이스라엘 순례 때, 아마 카테리나 수도원에서 몰래 캐온 이름 모를 식물을 화분에 심고서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 감격에 들떠서 만나는 사람마다 핸폰 사진을 보여준다. 제주도에가서도 오목조목한 꽃이 달린 식물을 훔쳐오더니 잘 키워냈다. 분명 법에 걸리는 범법행위라고 일렀건만 아내는 거침이 없다. 꽃을 보면 불법행위를 쉽사리하는 아내를 우짤꼬. 데리고 살어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