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을 사랑함에
순례는 종교를 구성하고 있는 본질적인 현상들 가운데 하나로서 구체적으로는 "거룩한 장소를 향한 회귀를 의미한다." 인간은 생명의 원천인 거룩함이 지배하는 장소로 되돌아가고자 한다. (카를로 마짜의 '순례 영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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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르나움의 따스한 햇볕을 즐기며 걷는 시간은 행복했다.
이제 코라진이다.
코라진은 유일하게 높은 언덕에 있어 전망이 좋다.
호수는 해저 200미터이고, 코라진은 해발 200미터니 상대적으로 고지대라 할만하다. 예부터 밀농사로 유명해, 바빌론 탈무드에도 마을 이름이 언급된다(메나홋 85A).
예수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다가 바리사이들의 지적을 받은 곳도 이 근처가 아니었을까 싶다(마태 12,1-2). 코라진은 나무가 많다는 뜻이다. 밀과 올리브 경작이 주업이었으며 실제로 나무가 많은 도시였다.
코라진은 예수님이 말씀을 전파하신 3대 고을에 속한다.
‘카파르나움’, ‘벳사이다’, ‘코라진’ 모두 유다인 마을로서,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모여 있었다.
하지만 이 마을들은, 주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과 복음에도 믿음 없는 태도를 고수해 예수님의 한탄을 산다(마태 11,20-24 루카 10,13-15).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 (마태 11,20-24)
20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22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3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4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지금은 옛 세월이 무색하게 코라진은 공허한 유적으로 남아 있다.
예수님의 꾸지람이 들어맞은 탓인가? 대부분의 건물들은 시커먼 현무암으로 만들어져, 불타버린 느낌마저 자아낸다. 끝까지 주님을 거부한 이 검은 마을은, 다름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우리 인간의 완고한 마음 색깔과도 비슷해 보인다.
코라진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회당이 서 있다.
회당은 히브리어로 ‘벳 크네셋’, 그리스어로는 ‘시나고그’라 한다. 석회암으로 봉헌된 카파르나움 회당과 달리, 코라진 회당은 현무암으로 검게 지어졌다. 정면 입구는 멀리 예루살렘 쪽을 바라본다. 입구 안쪽에는 모세오경 두루마리를 보관했던 지성소 일부가 남아 있다.
오늘날 유다인들이 예루살렘 방향으로 기도하듯이, 이천 년 전 사람들도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회당 안에 들어가면, 한구석에 메두사 얼굴이 눈에 띈다.
메두사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머리카락이 뱀으로 되어 있다는 여인이 아닌가? 이런 장식이 회당에서 발견될 정도니, 당시 로마 문화가 이스라엘 사회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엿볼 수 있다.
회당 안 앞쪽에는 ‘모세의 자리’가 놓여 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앉았다는 바로 그 높은 자리다(마태 23,2).
이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었음은, 모세 율법을 해석하는 권위자 역할을 맡았다는 의미다.
‘~의 자리에 앉는다.’는 말은 그 사람을 계승한다는 뜻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율법학자가 모세의 자리에 앉으면, 다른 사람들은 서서 그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모세가 재판하려고 자리에 앉았을 때, 백성들이 그 곁에 서 있었듯이(탈출 18,13). 하지만 예수님은 늘 상석만 찾고, 말은 하되 실천하지는 않는 이 학자들의 위선을 보시며,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라’ 꼬집으셨다(마태 23,12).
회당은, 서기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뒤, 성전을 대신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이미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유다인들은 안식일마다 지역 회당에 모였다. 예루살렘 탈무드는, 성전 파괴 전후로 예루살렘에만 480여 개의 회당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신약성경에도 회당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마태 4,23 마르 1,21 등). 회당에는 회당장이 있어, 공동체 예배가 잘 진행되는지 보살폈다. 회당장은 종교 지도자가 아닌 일반인이 맡았으며, 매우 존경받는 자리였다고 한다. 주로 원로들이 회당장이 되었다. 회당장은 안식일에 성경 말씀 봉독할 자와 기도 인도자를 정하고, 설교자도 선택한다(유다교에서는 일반인들이 설교도 맡아 한다). 모세오경 일부를 먼저 봉독하고, 뒤이어 예언서를 읽는다.
루카 복음서에(4,16-20) 따르면, 예수님은 나자렛 회당에서 성경을 봉독하셨다.
주님께 주어진 두루마리가 이사야서(61,1-2)였으니, 모세오경을 봉독한 후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회당장은, 회당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루카 13,14 참조). - 모세의 자리.
“이제는 완전히 몰락해 검은 잔해로 남은 코라진 회당과 모세의 자리에서 우리는 겸양을 배운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처럼, 겸양은 우리 신앙인들이 갖추어야 할 미덕일 것이다.
불필요한 낮춤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지만, 지혜롭게 섬길 줄 아는 겸양은 주위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퍼지게 한다. 아카시아가 스스로 광고하지 않아도 향기로 존재를 드러내듯이, 은은하게 주님의 향기를 뿌리는 그런 신앙인이 되기를 청하고 싶다.”[가톨릭신문, 2015년 6월 28일, 김명숙(소피아)]
그리고 또 어디에 갔던가?
뭐가 뭔지 정신없이 쏘다니다가 보니 벳사이다를 빼먹을 뻔했다. 코라진, 가파르나움과 예수님의 꾸중을 들었던 삼총사 중 하나인 벳사이다를 빼먹을 수야 있나.
예수님의 활동은 주로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서 이루어졌다.
벳사이다는 카파르나움 북쪽에 있다. 벳사이다 라는 이름은 ‘고기잡이 집’이란 아람어에서 유래하였다. 어부들의 활동무대였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요르단 강 상류가 갈릴래아 호수와 만나는 지점으로 코라진과 가파르나움에 비해서 약간 동쪽 편에 있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 그리고 필립보가 이곳 출신이다(요한 1,44). 안드레아와 필립보는 희랍 발음이다. 이스라엘 이름이 아니다. 당시 벳사이다는 헬레니즘 도시였기 때문이다.
‘축제 때 예배드리러 올라온 이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예수님을 뵙게 해달라고 했다(요한 12,21). 사도들도 그리스어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기적이 있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기적도 벳사이다에서 있었다(루카 9,10). 하지만 주민들은 시큰둥했다. 코라진과 벳사이다와 카파르나움이 꾸중을 들었던 이유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한 마을이 루카는 벳사이다로 지적하지만 마르코와 마테오 복음서는 타브가로 기록하고 있다.[2014년 8월 3일 연중 제18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벳사이다는 비옥한 평야를 끼고 있는 하부 골란 고원의 서쪽에 위치한다.
66-70년에 일어난 제 1차 유다 봉기에 적극 가담하여 결국 파괴되었다. 그 후 지진, 홍수 등을 거친 벳사이다는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이 있기 전까지는 폐허로 남아 있었다. 언뜻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현무암이다. 구멍이 뚫린 큰 현무암 바위가 눈에 띤다. 옛날 어부들이 배를 메어놓던 구실을 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다양한 고기 잡는 도구들이 발견되었다. 여기서 발견된 도구들은 낚시 바늘, 그물추, 돛을 만들거나 수리하는데 사용된 굽은 청동 바늘 등이다. 그리고 포도주를 만드는 사람의 집으로 추정되는 가옥 구조도 발견되었다. 그곳에서는 포도주 저장실, 포도주 담는 항아리들과 갈고리 등이 발견되었다. 1996년의 고고학적 발굴에서 기원전 10-9세기경으로 추정되는 고대 이스라엘의 성문을 발견하였다. 벳사이다에서 발견된 네 개의 방을 가진 성문 구조(four chambered gate)는 이스라엘의 전형적인 것으로서 제법 규모가 큰 성문이었다. 성문에서 산당(high place)과 세워진 두 개의 돌(standing stone)도 발견하였는데 그중 하나에는 황소 모양의 전사가 새겨져 있다. 벳사이다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는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이곳에서의 고고학적 발굴은 향후 신약성경과 역사적 예수 연구를 위한 흥미로운 결과들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요르단 강 주변은 동아프리카에 이르는 시리아-아프리카 지구대의 일부이다.
그곳은 지질상 지각 작용이 활발하여 세월의 변형을 크게 받는다. 벳사이다 역시 그 운명을 비켜가지 못했다. 지진과 홍수 등으로 마을은 폐허가 되어 잊혀졌다.
높은 언덕에 자리한 폐허로 남은 벳사이다에서 내려다 본 갈릴레아 호수는 너무 멀다. 글쎄 2km 정도 돼 보이지 않을까. 이곳을 어부들의 마을이라고 한다. 어떻게 이 곳에서 어부들이 살았을까 하는 의문은 오랜 세월에 걸친 지각작용으로 그리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호수의 수위가 차츰 낮아졌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
또 하나,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가 이곳 출신이라는데 가파르나움으로 주거지를 옮긴 이유가 뭘까?
가이드가 재미난 설명을 해준다. 벳사이다는 헤로데의 아들 헤로데 필립보가 다스렸고 막달라와 가파르나움은 헤로데 안티파스의 영지였기 때문에 벳사이다에서 잡은 고기를 막달라나 가파르나움으로 가서 팔면 이중으로 세금을 내게 된다. 이것을 피해 가파르나움으로 이사를 해서 세금을 절약한 게 아닐까? 해설해 주는데 상당한 근거가 있어 보인다. 또 필립비도 여기 출신이다.
우리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중심으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언제나 호수는 파란 민얼굴을 보여준다. 우리는 지극한 평화를 맛본다. 정말 갈릴래아 호수는 이렇게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이었을까? 예수님이 이 호수를 중심으로 복음을 선포하시러 발품을 파신 것은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사실 갈릴래아는 평화롭고 잔잔한 호수가 아니었다.
베드로 사도와 동료 어부들이 영차영차하며 그물을 건져 올리며 풍어를 자축하는 어부가를 소리 높여 불렀던 곳은 아니었단 말이다.
겨울이면 풍랑이 잦아서 조각배에 불과한 그들의 배가 난파될 위험에 처하고 여름이면 자욱한 안개와 갈대가 무성한 습지대가 그들을 괴롭혔다. 습한 공기 탓에 전염병이 돌았던 사람 살 곳이 못된 척박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호수 주위 곳곳에 무성했던 갈대와 모기, 몹쓸 전염병과 나병은 그들을 천형으로 몰아넣었다. 당시 말라리아가 창궐했다고 역사가들은 증언한다. 복음에는 늘 나병환자와 이름도 모르는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많지 않던가. 병자들은 계곡에 격리되어 가족들이 가져다주고는 황급히 도망가 버리는 음식에 의존해서 연명했다.(영화 벤허에 보면 병자들이 처한 참상을 생생히 볼 수 있다. 마을과 동떨어진 산 귀퉁이 동굴에 살면서 가족들이 가져다 주는 음식을 먹고 살아가는 병자들은 더이상 인간됨을 포기하는 삶을 영위해 가고 있잖은가.)
전염병은 호숫가 북쪽 헤브론 산에 흰눈이 내려 쌓이는 10월 중순에야 힘을 잃었지만, 그들이 예상한 대로 다음 불행이 들이닥친다. 가을이 끝날 무렵부터 장마가 계속되어 호수에는 하루 종일 안개가 끼고, 넘쳐 오른 물은 호숫가에 붙어 있던 밭뙈기를 쓸어버렸다.
갈릴래아 사람들은 불행은 항거하기보다 지나가 버릴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 비참함에서 구해 줄 사람이 남쪽에서 나타나리라는 말을 들어왔다. 누군가 그 사람이 오면 절름발이가 걷고 과부는 위로받으며, 하혈병에 걸린 여자는 치유되고 숨이 끊어진 아이는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부자들과 형편이 좋은 대도시 티베리아스를 두고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는 갈릴래아의 조그만 마을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그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복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후대의 순례자인 우리가 보는 갈릴래아처럼 평화와 풍요가 아니라 절망과 아픔을 품고 있는 곳이 바로 갈릴래아다.
예수님의 손길은 언제나 이런 곳이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 눈에 보이는 호수는 참으로 평화롭기 짝이 없다. 예수님께서 숱한 기적을 베푸시며 호숫가 마을을 돌아다니시다가 이 언덕에서 다리쉼을 하시면서 호수의 평화로운 경치를 바라보시지 않았을까? 가슴이 벅차오른다. 같은 하늘 아래 예수님과 날숨 들숨을 함께 하고 있다는 벅찬 기쁨을 그대에게 전하고 싶다.
제 묵상이랄 게 뭐 있나요. 신부님과 성서학자가 쓴 글을 따왔습니다. 도움이 되리라 믿고 한 짓입니다. 제가 쓰는 것보다 훨씬, 감동을 주리라 믿습니다.
사족) 1950년대 벤허가 다시 리메이크 되어 우리에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윌리암 와일러 감독이 이 영화를 찍고 나서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오~ 마이갓! 제가 이 영화를 만들었단 말입니까"
거장 와일러도 이 영화를 만든 것은 자기가 아니라 그 무엇이 시킨대로...... 성령께서 역사하신 게지요.
리메이크한 벤허를 기다리며.....찰튼 헤스턴의 묵직한 연기가 그리워 집니다. 기억하시나요? 벤허의첫 장면은 동방에서 뜬 별의인도를 따라 동방박사와 양치기 목자들이 베들래헴을 찾아가는 장면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