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통제사(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客主)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六月)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내렸다
<백석의 ‘통영’ 전문>
평안도 정주 출신의 시인인 백석은 <통영>이라는 제목의 시를 두 편 남겼다.
통영이 그만큼 시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도시라는 의미일 것이다.
친구의 결혼식에서 마주쳤던 여학생에게 첫눈에 반했던 시인은 그녀의 고향인 통영으로 향했다.
그러나 서울의 학교에 다니던 그녀는 방학이 끝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 만날 수 없었고, 그 아쉬움을 이 시에 담아냈다고 한다.
경상도 사투리로 처녀를 ‘처니’로 발음하는 것을 듣고, 짐짓 그 여학생과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을 ‘천희(千姬)’라고 지칭했다고 한다.
미역을 햇볕에 말리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듯 하고, 굴을 까고 남은 굴껍질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존재라 하겠다.
좋아하는 이를 찾아 멀리 통영에 찾아왔지만, 만날 수 없었던 자신의 처지가 마름 미역이나 굴껍질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아마도 시인은 뜻한 바 목적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하여, 어느 객줏집에 들러 생선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던 모양이다.
그곳에서 마음에 품었던 여인과 비슷한 나이의 ‘천희’를 보았고, 하루 묵었던 그 날 통영 항구의 쓸쓸한 풍경을 배경으로 비가 내렸을 것이다.
끝내 시인의 사랑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이 시를 통해서 통영이라는 도시가 백석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