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로 인해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저자 부부는 오히려 그 기간을 이용해서 이탈라이 순례길을 걸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들이 이탈리아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와중에 순례길을 걷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순례길은 일반적으로 기독교의 성인 중 하나인 야고보의 유해가 모셔진 스페인의 산티아고 대성당까지의 걷는 길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비아 프란치제나(Via Francigena)’라는 명칭으로 일컬어지는 이탈리아 로마로 향하는 순례길도 있으며, 영국에서 프랑스와 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의 로마로 향하는 약 2000킬로미터에 달하는 여정이라고 한다. 10세기 말 시제리코 대주교가 교황을 알현하기 위해 거쳤던 길을 순례길로 조성한 것인데, 전체가 79개 코스로 약 650개의 소도시와 마을을 경유하는 코스라고 한다.
저자 부부가 택한 코스는 니탈리아의 루카에서 로마의 바티칸으로 향하는 약 400킬로미터의 코스를 20일 일정으로 걷는 여정이었다. 처음에는 약 200킬로미터의 10일 일정으로 계획했지만, 로마까지 걷겠다는 일념으로 일정을 추가해 결국 완주했다고 한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챙겨먹고 하루 종일 걷고, 다시 새로운 장소에 도착해서 잠을 자고 다음날 다시 비슷한 일정이 반복되는 순례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더욱이 부부가 함께 걷다 보면 지치고 힘든 일정에 사소한 문제로 인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더욱 공고해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저자 스스로도 남편과 함께 했던 순례길의 여정을 이제는 ‘묵묵히 걸으면서 친구로서, 반려자로서, 그리고 스스로를 반추해보는 소중한 날들’로 기억하고 있다. 저자 부부는 이탈리아에 정착해서 여행가이드로 활동했던 남편의 일자리가 끊기고, 외부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코로나19의 상황에서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어 순례길을 걷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펜데믹을 겪으면서 피페해진 일상을 극복하기 위해, ‘내팽개쳐졌다가 다시 일어나 걷기를 반복하면서 길 위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 보겠다는 일념에서 택한 순례길이었다. 저자가 살고 있는 베네치아에서 기차로 출발지인 루카에 도착하는 일정부터 시작해서, 매일매일의 여정과 겪었던 일과 자신의 감정들을 그대로 소개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지속되고 있던 상황이라 순례길의 숙소와 가게들이 문을 닫는 경우가 적지 않았음을 언급하면서, 오르막길을 만나 체력적으로 힘들어 공연히 남편에게 감정을 쏟아내기도 했던 상황들도 소개하고 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만났던 이들과 저자 부부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던 현지 사람들과의 만남도 이제는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를 잡았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저자 부부가 걸었던 전체 일정을 하루씩 나누어 소개하면서, 책의 말미에는 자신들이 준비하고 겪었던 ‘로마로 가는 길’에 대한 정보가 여행가이드로 활동하는 남편의 입장에서 잘 정리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비아 프란치제나를 걷게 된 이유’와 준비물을 비롯하여 순례길에 관해 필요한 각종 정보, 그리고 자신들이 걸었던 일정에 따른 숙소와 가볼만한 곳 등을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만약 독자들이 나중에라도 이 길을 선택해서 걷게 된다면 정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저자는 여정의 말미에 ‘걷는 행위와 쓰는 행위가 놀랍도록 닮아 있’음을 발견하고 ‘걷는 동안 끼적인 메모에 생각나는 대로 감상을 덧붙이며 순례길에 관한 책을 쓰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나에게는 낯선 곳이지만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여정을 따라 걷는 듯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만간 근처에 조성된 둘레길을 아내와 함께 걷는 계획을 세워 보갰다는 다짐을 해보았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