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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설 <모비딕>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그 내용은 단지 고래를 쫓는 것일 뿐만 아니라 19세기 중반의 미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려낸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작품을 완역본이 아닌 요약본으로만 읽었던 터라, 줄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작품이 세세한 구절들에 대해서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읽었던 책의 제목은 <모비딕>이 아닌 흰 고래라는 뜻의 <백경>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다리를 잃게 한 고래 ‘모비딕’을 쫓는 늙은 선장의 집념이 도드라지는 내용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당대 미국 사회를 향한 비판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 책에 인용된 소설의 구절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모미딕>을 '사악한 책'이라 규정한 이유가 무얼까 하는 궁금증이 가장 앞섰다. 작가인 멜빌이 살아있을 때 이 책은 미국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던 작품이었고, 때로는 기피의 대상이기도 했다고 한다. 작품이 출간되고 작가인 멜빌이 죽을 때까지 40년 동안 팔린 책의 수는 3,715권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의 출간 100주년 행사가 전세계적으로 열렸을 즈음에는 ‘멜빌의 걸작이 문학적 충격을 넘어서 대중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가 죽은 후에 소설의 진가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 작품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이름이 <주홍 글자>의 저자인 너새니얼 호손을 좋아하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같은 이름을 가졌으며, <모비딕>의 작가인 멜빌이 호손의 영향을 받아 그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즉 저자 자신과 멜빌이 작가 너새니얼 호손으로 연결되어 있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역에 자신도 연고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멜빌이라는 작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나아가 <모비딕>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했음을 전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모비딕>의 창작 과정을 살펴보면서, 멜빌의 경험과 호손과의 대화를 통해 수정하고 완성될 수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본문이 시작되는 ‘1, 이 세기의 복음서’라는 제목의 서두를, “1850년 12월 16일 이른 오후, 허먼 멜빌은 시계를 봤다. 멜빌은 오늘 오리가 <모비딕>이라고 알고 있는 소설을 쓰는 중이었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책의 제목은 멜빌이 호손에게 보낸 편지 구절 가운데 <모비딕>을 가리키면서, "저는 사악한 책을 썼지만, 새끼 양처럼 무구한 기분입니다."란 내용에서 취했음을 알 수 있다. 즉 멜빌이 스스로 이 작품을 ‘사악한 책’이라 불렀고, 그것을 그대로 가져와 이 책의 제목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작품의 창작 과정을 추적하면서 멜빌의 생에와 결부시켜 설명하면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다양한 사건들이 지니는 의미를 소개하고 있다. 모두 28개의 주제어로 소제목을 구성하고, 그와 관련된 저자의 연구와 멜빌의 삶 그리고 작품의 분석을 통해 <모비딕>을 읽을 수 있는 풍부한 관점을 제공해주고 있다. 아직 <모비딕>의 완역본을 읽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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