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책 읽기, 천정환, 푸른역사, 2014.
이 책은 근대 이후 우리 사회의 책 읽기 문화의 양상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근대 문학사의 흐름 속에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피고자 하였다. 지배층이었던 사대부들의 한문 위주의 글쓰기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도 한글을 통한 작품 활동과 책 읽기는 꾸준히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한글마저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읽어주는 내용을 들으면서 문학 작품을 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른바 강독사(講讀師)나 강담사(講談師)로 지칭되는 이들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문학 작품이나 이야기를 실감나게 읽어주었다.
그 기점에 대해서 여전히 많은 논란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근대는 갑오개혁(1894)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상당 기간 동안 전근대의 습속이 지속되기도 했지만, 근대 이후 문학 작품의 창작과 출판 등에 있어서 급격한 변화가 수반되었다. 따라서 이전과는 다른 독자층이 형성되고, 이를 통해 문학 작품의 창작과 유통 환경이 빠른 속도로 변화했던 것이다. ‘독자의 탄생과 한국 근대문학’이라는 부제는 이 책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수정하고 보완해 펴낸 것이다. 일반 독자들을 위해 상당 부분을 보완해야 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꼼꼼한 자료의 분석과 독서 문화를 문학사와 연계시켜 논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이 책에서는 먼저 근대 이후 급속히 변화해가는 출판계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와 병행하여 진행된 라디오와 유성기 음반의 보급 등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이 대중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나로서는 무엇보다 근대 계몽기 이후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의 출판 현황에 대한 자료를 제시하고, 이를 통해 당대 독자들이 즐겨 찾았던 책과 문학 작품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1920년대 이후에도 독자들은 여전히 <춘향전>을 비롯한 고소설을 탐독하였으며, 그것들이 항상 당대 베스트셀러의 상위 목록에 올랐다고 한다. 아마도 대중음악에서 힙합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지금, 여전히 트로트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지금의 문화 현상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급격한 단절이 아닌, 지속과 변화를 수반하여 진행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일제 강점기에도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자들의 비율이 여전히 높았고, 또 전근대 시대의 한자와 한글이라는 이중 언어의 상황이 한글과 일본어로 대치되어 나타났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제의 신식 교육제도에 접속된 이들은 빠른 속도로 일본어 독자로 전신하였고, 한글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의 작품 활동과 출간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 예컨대 1930년대에 이르면, 전체 출간된 책 중에서 한글 서적은 10~20%에 불과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한글로 창작 활동을 고수했던 문인들 대다수는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자발적으로 일본어로 작품을 창작했다고 한다. 예컨대 몇몇 문인들은 당시에 ‘일본이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들의 일본어 창작 활동은 이런 측면에서 조명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10년대까지만 해도 소설을 계몽의 도구로 삼는 관점과 대중들의 취향에 영합하는 것으로 취급하는 관점이 양립하고 있었다고 한다. 후에는 소설을 고급문학과 대중문학으로 구분하여, 비판하는 논지가 이어졌던 것이다. 과거 학교에서 소설을 보다가 들키면, 대체로 교사들은 공부는 하지 않고 소설 따위나 읽어서 문제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대체로 부모들도 거의 유사하게 지니고 있던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소설을 읽는 것을 하나의 교양 활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출판문화가 보다 활발해지면서 사람들에게 ‘책은 한편으로 상품이자 매체이면서, 또한 일종의 도구’로 역할을 하였다. 문학 분야를 포함하여, 요리나 농업 등과 같은 분야의 실용서도 점차 증가하였다. 때로는 가문의 결속을 목적으로 한 비상업적 성격의 한문 문집이나 족보 등의 출간이 급증했는데, 이는 ‘양반’의 현실적?정신적 불안과 ‘상놈’의 불안한 신분 상승 욕망이 결합되어 나타난 현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저자가 특히 공을 기울였던 부분은 ‘4. 문학 독자층의 형성과 분화’에서 다뤄진 내용이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1920년대부터 30년대에 이르기까지 문학 작품의 창작과 유통 양상을 점검하면서, 특히 급격하게 늘어난 ‘여성의 책 읽기’라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의 부녀자들이 당시에 창작된 소설들을 주로 읽는데 비해, 경북 양반가 부녀자들은 여전히 <춘향전> 등의 고소설을 읽는 것이 현실이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신여성’으로 자처하면서 외국 잡지나 문학 작품을 읽는 여성들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관점에서 일제 강점기 시절의 독서와 출판, 그리고 문학 작품의 창작과 수용 현상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이밖에도 당시의 문인들을 양산하는 등단 제도와 비평가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었다.
저자는 ‘책을 매개로 한 대중적 앎과 지식의 지형이 어떻게 근대를 성취했는지를 다룬 논의’를 펼쳤다고 자평하고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의 독자들의 책 읽기 양상과 그것의 사회적 의미를 ‘대중 독자의 등장’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어찌 보면 당시에 산생된 문학 작품들을 위주로 그 흐름을 정리한 문학사들보다 훨씬 더 당시의 문화를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