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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 인터뷰에서 흔히 던져지는 질문이고, 그에 대한 대답은 또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 대답은 언제나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선택에서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지라도, 만약 당시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현재의 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시점에서는 명확하게 생각되는 상황이 당시로 돌아간다면, 그 시절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똑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그 이유의 하나로 꼽고 있다. 과거는 현재의 나를 이루는 삶의 과정이기에, 현재와 미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죽어서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의 주변을 떠도는 박자언을 환생시켜, 과거의 시점에서 그 비밀을 찾아내기 위해 그를 돕는 보살들의 활약이 그려지는 작품이 바로 <극락왕생>의 주요 내용이다. 귀신이 존재한다는 설정과 그들을 통해 인간 삶의 다양한 면모를 형상화하면서 다채로운 에피소드로 풀어가는 내용이 벌써 6권에 이르고 있다. 어쩌면 ‘귀신’이란 존재는 그것을 믿는 자에게는 확고한 실체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 세상에 인간의 지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현상을 그저 귀신 혹은 도깨비의 탓이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내용들이 소설이나 영화 혹은 만화 등으로 제시되어,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6권에서는 모두 3편의 에피소드가 제시되어 있으며, 귀신이 출현하기 좋은 조건인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내 이름은 보라’라는 첫 번째 에피소드는 ‘보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납치하여, 사람을 재료로 술을 만든다는 ‘술도깨비’들의 축제와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된다. 술 재료에 따라 그들이 빚은 술을 마시면, 재료와 같은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술도깨비들이 인간을 납치하려고 하는 것이다. 박자언과 그를 돕는 도명의 활약으로 인간들의 납치는 불가능하게 되고, 도깨비들은 박자언을 그들만의 축제에 초대한다.
이어지는 에피소드는 도깨비들의 축제에 초대를 받아, 그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그려낸 ‘어두운 밤의 축제’라는 제목으로 진행된다. 축제에서 어설픈 인간의 모습을 한 도깨비들이 자신들이 빚은 술을 마시며 즐기는 장면이 제시되는데, 사람들이 소홀히 버렸던 손톱이나 머리카락을 재료로 술을 빚어 도깨비들이 신체 일부만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설명한다. ‘깨끗한 안녕’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흔히 ‘학교 괴담’이라고 논해지는 내용을 토대로, 학교 미술실을 어지럽히는 귀신의 존재를 등장시키고 있다. 매일 밤마다 지저분하게 어지럽혀진 미술실을 찾아가, 그 원인을 찾는 박자언과 도명의 활약이 제시되고 있다. 언젠가 학생들이 밤에 몰래 미술실에 들어가 어지럽혔던 시점 이후로 그러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 말끔히 청소하는 것을 즐기는 ‘청소귀신’이 그때부터 청소하는 법을 까먹엇기 때문이라는 설정이다.
작품에서 박자언은 고등학교 3학년으로 환생을 하여, 1년 동안의 삶을 반복함으로써 ‘극락왕생’에 이르는 길을 찾는다는 설정이다. 그 자신이 귀신이기에 이승에 존재하는 다양한 귀신들을 만나 그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때로는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작품에서 다뤄지는 대상들이 귀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들의 사연을 통해서 우리 인간 사회의 다채로운 면모를 반영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작품의 결말이 가까워졌는지 이승에 대한 미련을 토로하는 박자언과 그를 극락왕생시키려는 보살들의 입장이 작품 곳곳에서 간간이 노출되고 있다. 어쩌면 환생 혹은 과거의 삶을 반복한다는 설정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기에, 독자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소재라고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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